[프라임경제] 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하지만 여의도 증권가는 여전히 한겨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기울기 시작한 국내 자본시장이 증권사들의 장기 불황으로 이어진 탓이다. 2013 회계연도(4~12월) 기준 국내 62개 증권사가 총 109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해 11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불과 2~3년 사이 증권사들은 경쟁하듯 생존을 위한 몸집 줄이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구조조정의 매서운 칼바람에도 '무풍지대'는 있었다. 바로 고액 연봉을 받는 비상근 이사진과 임원들이다.
상당수 증권사들이 인력감축 최우선 순위에 일반직원, 계약직을 앞세울 뿐 비용절감 효과가 큰 임원진 축소에는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한 '비정상의 정상화'와는 분명히 다른 노선이다.
◆2년간 임원 퇴직은 '달랑 3명'
최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 임직원 수는 2013년 기준 4만243명으로 2011년 말 4만4055명에 비해 3812명(8.7%) 감소했다. 그러나 경영이사와 임원은 2011년 말 172명에서 지난해 169명으로 단 3명 줄어드는 데 그쳤다. 고위직은 살아남고 평직원들만 팽개쳐진 셈이다.
같은 기간 비등기 임원은 767명에서 122명(15.9%) 줄어든 645명이었고 정규직은 3만4338명에서 3만32248명, 계약직은 8112명에서 6483명으로 각각 2090명(8.4%), 1629명(20%) 급감했다.
핵심요원인 리서치 연구원도 2011년 말 1423명에서 지난해 1322명까지 감소했다. 증권사별로는 KTB투자증권이 지난해 10월 리테일, IT 인력 중심으로 첫 구조조정을 실시해 전체 500여명 중 100여명을 정리했다. NH농협증권은 리서치센터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인원감축에 나섰다.
한화투자증권도 같은 해 12월 350명의 희망퇴직자를 전원 퇴직 조치했고 전 직원 연봉 10% 삭감을 단행했다. 같은 달 SK증권 200여명, 유진투자증권도 50여명의 직원을 내보냈고 상당수의 증권사들은 희망퇴직 대상을 대리~부장급으로 제한했다.
하나대투증권도 올해 113개이던 지점을 80여개까지 줄이는 등 구조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부국증권 역시 최근 정규직 130명 중 35%에 달하는 45명에 대해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인력감축을 통한 비용절감 효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손미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구조조정을 통한 고정비용 절감 효과는 대량 연간 3000억원 수준"이라며 "지난 2년간 업계 전체 판관비(변동비 포함) 절감 규모는 7650억원 정도"라고 분석했다.
이어 "절감된 고정비 3000억원은 일평균거래대금 1조3000억원에서 벌어들이는 연간 수탁수수료와 맞먹는다"며 "2년간의 구조조정은 증권사들의 손익분기점(BEP)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어 앞으로 증권사 임직원 수는 3만명대로 더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조조정, 평직원의 일방적 희생
문제가 되는 것은 사측의 일방적 구조조정이 평직원 또는 계약직 등 상대적 약자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각 증권사들은 노조를 중심으로 사측과 직원들 간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한 삼성증권과 KDB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은 일반직원들의 인건비는 줄었지만 임원 보상금은 오히려 늘려 구설수에 올랐다. 삼성증권의 경우 일반 직원들의 인건비(퇴직금·복리후생비 제외)는 22% 줄었지만 경영진 급여는 오히려 24% 늘었다.
KDB대우증권도 인건비는 12% 줄이고서도 경영진 급여는 무려 44.2%나 늘렸다. 미래에셋증권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16%의 인건비 절감에 성공했지만 경영진 급여는 13%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지점 통폐합을 놓고 교보증권은 내홍에 휩싸였다. 이사회가 지난해에 이어 전국 43개 지점 가운데 지방 4곳, 서울 2곳을 통폐합하는 방침을 밝히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 이은순 교보증권 노동조합 지부장은 "회사가 직원들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하고 통폐합에 따른 직원 재배치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나 계획도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교보증권에 경우 당장 구조조정을 단행할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교보증권의 2013년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426% 증가한 100억원을 기록했고 당기순이익도 6.5% 늘어난 113억원이었다.
민경윤 현대증권 노동조합 지부장은 "회사와 노조 모두 감당하기 힘든 것이 구조조정이지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경영진의 자업자득"이라며 "증권사들이 치열한 수수료 경쟁을 벌이면서 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다보니 회사 실적이 악화돼 화를 자초한 것"이라고 말했다.
민 지부장은 덧붙여 "구조조정은 사측 이기주의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통보가 아니라 노사가 서로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