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모그룹의 부도와 상품 불완전판매 의혹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던 동양증권이 대만 업계서열 1위 유안타증권(Uanta Securities Asia Financial Services Limited·YSAF) 품에 안겼다. 바닥으로 떨어진 고객 신뢰와 영업력을 되찾기 위해 공식간담회를 필두로 본격적인 여론몰이에 나섰지만 과정은 험난해 보인다. 한때 리테일(지점영업)과 IB(Investment Bank·투자은행)부문에서 업계 강자로 꼽혔던 동양증권은 새로운 대주주를 앞세워 '환골탈태'를 꿈꾸고 있다.
동양증권은 18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서명석 대표와 임원진이 참석한 가운데 60여명의 출입기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진행했다.
◆'30년 일한 동양' 울먹인 서명석 대표
서 대표는 지난해 11월 전임 정진석 사장이 취임 5개월 만에 낙마한 뒤 곧바로 신임대표에 내정됐다. 그러나 별도 취임행사 없이 회사 매각을 진두지휘하며 언론과의 접촉을 자제해왔다. 그는 애널리스트로 동양증권에서만 30여년간 근무한 정통 '동양맨'이다. 직접 '리스타트(Restart)'라고 이름 붙인 프레젠테이션 내내 서 대표는 앞으로의 각오와 그간의 뒷얘기를 토로하며 울먹였다.
그는 "이번 유안타증권과 인수 계약을 체결한 것을 발판 삼아 시장의 신뢰와 영업력을 조기에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하루 빨리 회사를 정상화해 과거 리테일, IB(투자은행), 채권영업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명성을 다시 찾겠다"고 강조했다.
서명석 동양증권 대표가 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회사 매각 과정과 앞으로의 비전과 관련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동양증권 |
서 대표는 "동양그룹이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태의 피해자가 우리 소중한 단골 고객들이라는 사실"이라며 "전직원이 죄인의 마음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료들과 막대한 손해를 입은 고객들께 죄송한 마음 잃지 않겠다"고 호소했다.
이와 관련해 동양증권은 모그룹 계열사들의 연이은 법정관리 신청에 대응해 전담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피해 민원 접수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조직통폐합과 대규모 인원감축으로 규모를 기존 대비 절반 수준까지 줄이고 급여와 수당을 직급별 최고 50% 삭감했다. 접대비도 70% 줄였으며 일반관리비 예산도 30~50% 절감하는 등 자구노력에 힘썼다.
그러나 불완전판매 논란 이후 동양증권의 신뢰는 먼지처럼 산화했다. 고객 예탁자금이 급격히 이탈했고 신용등급이 급락, 기관투자자 단절, 대규모 영업적자 등을 겪으며 금융사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오는 6월 돌아오는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만기는 부도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 서 대표는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 일단 6월 돌아오는 만기사채를 막아야 했고 유일한 결론은 빠른 매각과 자본 확충이었다"고 매각 배경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마침 2004년 LG투자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다가 손을 뗐던 유안타증권이 나섰다. 서 대표는 1주일간 밤을 새며 준비한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들고 대만으로 건너가 세일즈를 도맡았고 협상과 결렬을 거듭한 끝에 인수 확답을 얻어냈다.
유안타증권은 이번 동양증권 인수를 통해 '아시아 골드만삭스'로 가는 교두보로 삼을 것이라는 게 동양증권 측의 설명이다. 불완전판매와 관련된 피해보상과 집단소송 가능성 등 위험(Risk)부담이 상당하지만 과거 명성과 싼 가격에 마음을 굳혔다는 것.
인수가격은 12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최대주주 지분 27.06%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감안됐다. 현대증권이 5000억원 이상, 패키지 매각을 선택한 우리투자증권이 1조원대, 이트레이드증권이 3300억원대의 매각 가격을 제시한 것에 비하면 '헐값' 지적이 나올 만큼 저렴하다.
이에 대해 서 대표는 "나도 우리 회사의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가슴이 아프다"면서도 "하지만 주가 상황이 좋지 않고 다른 매물들이 30% 정도의 프리미엄을 붙인데 비해 우리는 60%가량의 프리미엄을 얹은 셈"이라며 논란에 선을 그었다.
◆기사회생, 험난한 만큼 불확실
6개월 만에 속전속결 매각이 성사됐지만 동양증권의 앞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먼저 유안타증권이 이미 매물로 나와 있는 여러 국내 증권사 가운데 굳이 수천억원대 집단소송 가능성이 있는 동양증권을 골랐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동양사태 관련 금융감독원 검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관련 서류와 직원들의 소명을 대조할 경우 증권사의 불완전판매가 인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현재현 회장 등 그룹 경영진이 사기성 발행 혐의로 구속돼 피해자들이 금감원 조정보다 집단소송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소송에서 패할 때 보상금액은 최대 7000억~8000억원 규모로 최악의 경우 유안타증권은 매각금액보다 5배 이상 많은 배상책임에 휘말릴 수도 있다. 만약 소송을 통해 책임에서 벗어난다 해도 '단골 고객에 법정 싸움까지 한 판매사'라는 낙인은 더욱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오 함께 유안타증권은 대만 내 브로커리지 점유율 13%로 현지 80여개 증권사 중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세울만한 전문분야는 딱히 꼽기 어렵다. 이미 한국시장은 거래량 가뭄 속에 브로커리지 경쟁이 무의미하다. 그러나 이날 간담회에서 침체된 국내 자본시장을 공략할 명확한 해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한 임원은 유안타증권의 인수로 동양증권이 얻을 수 있는 최대 시너지는 '자금'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그는 "유안타증권은 대만의 대표적인 대형사로 자금력이 상당하다"며 "동양증권이 일류 대형사는 아니지만 직원 개개인의 '맨파워'는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만큼 유안타의 든든한 자금력만 뒷받침된다면 분명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양증권 역시 그동안 강점으로 내세웠던 리테일, IB, 채권 등 다양한 분야를 치우침 없이 키우겠다는 각오다. 물론 모든 것은 동양증권이 정상화 궤도에 안착한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