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기자수첩] '신경 끌 수 없는' 개인정보 유출에도 '올레' '팔로미'

최민지 기자 기자  2014.03.18 09:52:37

기사프린트

[프라임경제] 얼마 전 KT 가입자라고 밝힌 독자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메일을 보낸 김모씨는 최근 KT 홈페이지 해킹으로 981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김양이 이번에 강탈당한 항목은 주민등록번호·은행정보 등 총 10가지다.

"2년 전부터 현재까지 매일 스팸전화와 문자를 받는 것은 일상이 됐고, 신고하는 것도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렇다고 소중한 제 개인정보를 이대로 둘 수는 없었기에 최소한의 보호막이라도 만들고자 통장과 카드번호를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KT 행태에 분통하고 억울한 마음을 못 이겨 이메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김씨는 2년 전에 이어 두 번이나 KT로 인해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주장한다.

김씨는 작년 11월29일 개설한 체크카드 정보를 변경키로 했다. 통장 및 버스카드 기능이 포함된 이 카드를 다시 신규 발급하려면 2000원을 지불해야 했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이 사태에 대해 KT가 최소한의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 김씨는 KT에 비용 청구 문의를 했다.

그러나 김씨는 KT 측이 "본인이 판단해 변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비용을 책임질 수 없다"는 답변만 늘어놨다고 밝혔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황당하다"며 "말로는 죄송하다고 했지만, 최소한의 피해보상 및 해결방안도 마련하지 않는 KT 행태에 너무 화가 난다"는 김씨는 결국 분통을 터뜨렸다.

KT는 2차 피해로 이어져 불법대출 등 금전적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정보유출 자체에 대한 피해보상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상태다.

김양을 포함한 피해자들은 정작 몇천 원 정도의 금전적 보상이 아닌, 이번 사태에 대해 황창규 회장이 직접 나서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던 만큼 KT가 고객 입장에서 진정 사죄하는 모습을 보이고 해결책을 강구하려 애쓰는 모습을 원했을 것이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 고객은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지난 11일 업계에 따르면 부산 남부경찰서는 개인정보 1230만여건을 유통한 혐의로 문모(44)씨를 구속하고, 권모(31)씨 등 1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 중 유출된 통신사 개인정보는 △LG유플러스 250만건 △SK브로드밴드 150만건 △KT 7만6000건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으로 SK텔레콤은 빈축을 사기도 했다. SK텔레콤은 최근 "SK텔레콤 고객이라면 신경 꺼두셔도 좋습니다. 뭐든 나쁜 게 생겨도 최대한 피하게 될 테니까요"라고 광고했는데, 이는 스팸과 스미싱 등으로부터 개인정보가 안전하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보유출 사건 이후 해당 광고는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고에 대해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의 사건일 뿐이라고 선긋기를 했지만, SK브로드밴드는 SK텔레콤이 50.6%의 지분을 소유한 자회사며, SK텔레콤 대리점과 판매점에서 SK브로드밴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같은 맥락이라면 SK텔레콤 광고 중단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기도 하다.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은 본사 또는 대리점이 아닌 판매점에서 임의로 가진 고객정보가 해킹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는 수사가 끝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본 후 추후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양사는 현재 사과문을 게재하지 않고 있으며, 사건이 종결된 후 문제되는 부분이 있다면 사과문을 공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정보유출 사태로 피해를 입은 고객 입장에서는 해당 통신사에 가장 큰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만큼 당장 대책을 강구할 수 없다면, 자숙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는 것이 책임 있는 회사의 태도다.

그러나 통신사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반성하려는 의지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단적으로 홈페이지와 고객 이메일을 통해서만 사과메시지를 전달한 KT의 경우, 여전히 TV만 틀면 '광대역 LTE 올레'를 외치는 광고를 쉽게 볼 수 있다. 언론을 통해 죄송하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도 고객에게는 정보유출과는 별개로 자사 광고에 여전히 집중하고 있는 셈이다.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도 마찬가지다. 양사는 사건 종결 후 결론을 살핀 후 광고 등에 대한 검토를 할 수는 있지만, 수사 중인 시점에서는 어떤 것도 정해진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보가 유출된 고객들은 해당 통신사 광고를 접했을 때 불편한 심기가 생기는 마음은 당연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곳은 KT다. 결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표면적으로 KT는 판매점이 아닌 홈페이지를 통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는 광고를 여전히 방영 중이다. 이는 앞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를 발생시킨 카드사와는 전혀 다른 행보이기도 하다. KB국민카드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 후 사태를 수습하고 자중하는 모습을 위해 TV광고를 포함한 전체 광고를 중단시켰다.

NH농협카드 또한 연간계획 수립 때 라디오·케이블TV·TV 광고를 집행하기로 했으나, 이번 사건으로 잠정 중단했다. 롯데카드는 이전부터 TV광고 물량은 없었지만, 그 외 다른 광고들을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만큼 카드사와 같이 TV 광고를 중단하거나 줄이는 등의 자숙하는 모습을 보일 예정이냐는 질문에 KT 관계자는 오히려 "TV광고와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무슨 관련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영업정지 조치를 받은 카드사들은 카드서비스가 메인이기 때문에 광고와 관련해 KT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금융업계는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대처하는 KT를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업계 관계자는 "카드사 경우에는 정보유출 사건으로 임원진들이 사의를 표명하고, 카드사 대표까지 교체됐다"고 설명을 보태기도 했다.

  이미지  
 
사회적으로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물의를 빚은 통신사들은 '고객 우선'이라는 기본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국내를 대표하는 통신사들인 만큼 책임 있는 기업의 자세를 보여야 할 때다.

어떤 이유에서든 소중한 고객정보가 흘러나갔다면 자숙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고객들도 분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쓸어내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