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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B의 '64'는 무엇입니까?

임혜현 기자 기자  2014.03.06 17:5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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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일본 소설가가 있다. '64'는 그가 10년간 다듬어 내놓은 추리소설로, 제목이기도 한 이 64라는 코드는 쇼와 64년에 일어나 14년째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장기미제사건을 가리킨다. 특히 어린이 유괴 살해 사건이라 소설 속의 담당 경찰서는 물론 일본 경찰 전체의 위신마저 걸린 문제로 설정돼 있다.

'쇼와'는 히로히토 일왕의 연호로, 쇼와 64년이란 그가 세상을 떠난 해다. 즉 쇼와 64년이라고 하면 일본인들에게 전쟁과 재건 등 파란만장한 많은 일들을 겪은 '한 시대가 끝난 해'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굳이 새 연호인 '헤이세이' 대신 마지막해라는 뜻의 64를 사건명에 붙여 부르는 이유가 있다.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고선 새 시대를 바라볼 수 없다는 면목없음을 되새기는 기호이자, 새 시대에서 활개치는 범인을 반드시 쇼와 시대로 잡아와 무릎을 꿇리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숭고한 정신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면서 허상에 가깝게 변질된다. 범인의 전화를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경찰측이 저지른 실수를 은폐하면서, 사건이 미해결된 14년 동안 이런 경찰측 실수 역시 지역 경찰본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숨기고 그도 모자라 '대를 물려가면서' 비밀로까지 승격된다.

해결이 절대로 쉽지 않은 문제. 14년만에 진범의 실체에 접근하지만, 지역 경찰에는 찬사 대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새삼스럽게 강한 비판의 쓰나미가 닥칠 일만 남았다.

다만 다행인 점은, 자기 보신을 위해 꼼수를 써온 선배 간부들의 태도를 답습하는 구태를 후배 경찰들이 거부할 각오를 다진다는 점이다. 파장을 줄이거나 어떻게든 피하려 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사실대로 밝히고 잘못한 만큼 시민들의 질타를 맞겠다는 올곧은 경찰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서 소설은 끝난다.

KB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비자금 논란이 계속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2명 이상의 지점장이 연루된 것 같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쯤 되면 아무래도 일탈 행보로는 보기 어렵고,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문제로 이어져 왔다는 해석을 낳게 된다. 사건을 해결하고서도 비판밖에 받을 게 없는 지경, 그 여파만 떠안아야 하는 문제가 KB 앞에 닥친 셈이다.

하지만 이를 의연히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과거와 단절할 수 없다. 리딩뱅크로 자리매김했던 국민은행 그리고 KB금융에서 근자에 자꾸 여러 문제가 터지고 급기야 우리사주조합 문제로 경영진이 고소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오늘날의 상황에는 과거부터 누적돼 온 많은 실수와 이 위에 덧씌워져 온 세월의 흔적과 무게가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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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거와 어떻게 선을 그을지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발뺌을 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입을 많은 타격에 의연히 대처하는 의연함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높다.  이런 태도를 KB가 모두 갖췄는지를 보여줄 시금석이 바로 도쿄지점의 부정과 그 처리라는 사안일 것이다. KB가 소설 속 일본 경찰관들처럼 자신의 '64'와 잘 이별하는 길을 찾을지 시선을 모으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