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기자들 세계에는 '출입처'가 있는데요. 기자별로 기업이나 관공서, 정부기관 등을 맡아 각 기관의 행사나 일정 등을 체크하고 관련 기사를 생산합니다.
제 출입처 중 한 곳은 대한민국 국회입니다. 국회에 출입하려면 기자 출입증이 필요한데요. 일시취재, 단기취재, 장기취재 출입증으로 분류됩니다. 워낙 매체가 많이 생겨난 탓에 너도나도 출입 등록을 신청하다보니 출입증 발급도 과정이 복잡해졌습니다.
일시취재는 말 그대로 일주일 단위의 국회 취재 일정이 있을 때 발급받는 출입증입니다. 국정감사 기간에 가장 많이 발급되기도 하죠. 단기취재 출입증은 1, 3개월에 한 번씩 갱신을 해야 하는데요. 갱신이 필요 없는 장기취재 출입증을 받기위한 전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전 2012년도부터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데 3개월에 한 번씩 갱신을 해야 하는 단기취재 출입증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갱신 시기에 맞춰 국회 관련 기사를 몇 건이나 작성했는지 목록도 함께 제출하고 있는데요. 나름의 '심사'를 통해 갱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국회 측의 생각입니다.
당초 국회 출입증 발급이 이렇게 까다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크고 작은 매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통에 출입을 원하는 기자가 많아지면서 국회 측의 관리가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입증만 챙기고, 기사는 쓰지 않는 기자도 부지기수였죠. 그런 사정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과정이 조금 까다로워지긴 했지만 국회의 뜻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갱신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3일 국회 출입증 갱신을 위해 국회를 찾았는데요. 이날 오전 다른 일정으로 국회 헌정관에 갔다가 갱신할 출입증을 분실하고 말았습니다. 어차피 갱신할 출입증을 분실했으니 출입증 발급에는 별 문제 없을 것 같아 담당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출입증을 분실하면 재발급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어차피 갱신할 출입증이니 발급해주면 안되겠느냐는 저의 말에 담당자는 규정상 그럴 수 없고, 잃어버렸으니 재발급 신청서를 써야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또 언론사 대표 직인이 필요하니 다시 와야 한다는 말도 보탰습니다.
= 이보배 기자 |
일이 번거롭게 돼버렸지만 어쩔 수 없죠. 출입증을 분실한 제 책임도 있으니까요. 알겠다고 말하고 돌아서면서 '국회출입기자증 재발급 신청서'를 챙겨 나왔습니다. 그런데 재발급 신청서가 한 장이 아니었습니다. 스테이플러로 한 장을 덧붙여놨는데요. 바로 사진 속 '서약서'입니다.
"위 본인은 국회출입기자로서 국회 홍보기획관리실로부터 발급 받은 '기자증'을 분실함으로써 기자증 관리에 어려움을 초래하였는바, 재차 분실 시 발급이 제한될 수 있음을 양지하고, 이후에는 기자증을 성실히 관리하여 분실하지 않도록 주의를 다할 것을 서약합니다."
출입증 분실에 제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런 서약서를 써야할 정도로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규정상 필요한 문서고 출입증 재발급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 해봐도 문구가 마음에 걸립니다.
지나친 해석일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출입증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우리가 할일이 늘었으니 다음에 또 잃어버리면 출입증 안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아 서약서를 한참이나 들여다봤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다. 아마 내일이면 저는 서약서에 제 이름 석자를 적어 국회 담당자를 만나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