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배 기자 기자 2014.03.04 17:32:20
[프라임경제]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투쟁한 지 벌써 10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만큼 긴 시간이 지났지만 코오롱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위원장 최일배, 이하 코오롱정투위)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 투쟁 초반 2년은 정말 치열하게 싸웠으나 이후 생계문제, 개인사유 등으로 동지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투쟁은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50명이던 코오롱정투위는 10년의 세월을 거치며 현재 14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아직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코오롱정투위의 생각이다. 과천 코오롱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2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최일배 코오롱정투위 위원장을 아직 찬바람이 남아있던 3일 오후 만났다.
코오롱정투위의 싸움은 지난 2005년 2월 구미 코오롱 공장에서 노조 활동가 중심의 78명에 대한 정리해고가 단행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해고자 50명이 모여 꾸린 코오롱정투위는 크고 작은 투쟁으로 10년을 버텼다.
오랜시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측의 반응에 코오롱정투위는 지난해 '코오롱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매개는 산이었다. 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을 상대로 코오롱 불매운동을 알리는 현수막을 펼치고 유인물과 삶은 계란을 나눠줬다.
과천 코오롱그룹 본사 앞 천막 농성을 2년째 이어오고 있는 최일배 코오롱정투위 위원장. 칠판에는 인근 주민들이 남겨준 응원 글이 가득했다. = 이보배 기자 |
최 위원장은 "코오롱 불매운동 문구가 적힌 조끼를 단체로 입고 등반하면 등산객들이 왜 불매운동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야기를 하며 등반하다보면 코오롱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불매선언을 하는 등산객도 있다"고 말했다.
코오롱스포츠를 대표하는 것이 아웃도어 제품이기 때문에 산을 떠올렸다는 설명이다. 길거리에서 유인물을 돌릴 때와는 반응이 확연히 달랐고 불매운동 시작 후 코오롱 측의 반응도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3월 코오롱불매원정대 시즌1이 시작되고 코오롱 측은 코오롱정투위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전국 242개 코오롱 매장과 설악산·북한산·지리산·한라산 등 국립공원 15곳, 무등산·칠갑산·태백산 등 도립공원 16곳, 명지산·천마산 등 군립공원 9곳 등 전국의 유명한 102곳을 지정했다.
이와 함께 코오롱정투위가 매장을 비롯해 전국의 유명산에서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피켓시위를 한다거나 유인물을 불특정 다수에 나눠주는 행위를 할 경우 하루 100만원을 법원에 내도록 청구하기도 했다.
불매운동으로 인해 기업 신용과 명예에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어 가처분신청이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불매운동은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 행사의 일환으로 이를 제한할 만한 피보전권리는 물론 보전의 필요성조차 인정되지 않는 부당한 가처분 신청"이라고 맞섰다.
당시 법원은 "산에서 불매운동을 하는 것에 사측이 관여하는 것은 너무 광범위하다"며 "산에서 아무 행위도 하지 말라고 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코오롱을 악질 기업으로 묘사하는 문구 17개에 대해서는 사용금지 조치를 내렸다.
결국 코오롱이 낸 가처분신청은 오히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코오롱정투위의 불매운동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재판 이후 지난해 10월부터 코오롱불매원정단 시즌2가 진행됐고, 오는 22일 '코오롱불매원정단 시즌3'가 시작된다.
지난해 시즌 1, 2에 걸쳐 진행된 코오롱불매원정단 불매등반 활동 모습. ⓒ 코오롱정투위 |
이와 관련 최 위원장은 "시즌2를 끝내고 1, 2월 두 달은 산행을 쉬었다. 겨울 산행이 위험하기도 하고 눈이 많이 내려 충전의 시간을 가졌다"며 "3월22일부터 5월까지 매주 토요일, 전국 불매 등반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해온 방식과 동일하게 진행될 예정인데 조류독감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 삶은계란 대신 뱃지를 나눠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코오롱정투위가 이번 불매 등반에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은 QR(Quick Response)코드 제작이다. 그동안 코오롱정투위의 투쟁 활동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QR코드에 담아 홍보할 예정이라는 것. 이번 시즌에 오를 산은 아직 확정이 안 된 상태지만 제주도 한라산이 코스에 들어가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10년의 투쟁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코오롱정투위의 투쟁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까?
최 위원장은 "전원 복직을 목표로 투쟁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속에서 작은 가능성과 희망이 보였다"며 "물론 절망적인 순간도 있었다. '그만하자'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결론은 늘 '조금만 더 해보자'였다"고 말했다.
투쟁 10년이 지나면서 코오롱정투위의 투쟁 목표에도 변화가 생겼다. '승리'를 위해 달려왔지만 전원복직이 승리인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마지막 순간을 스스로 마무리 하는 것이 승리인지 고민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생각의 끝에 코오롱정투위는 결론을 내렸다.
"싸움에서 결과가 중요하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과정들이 소중하고, 남은 동지들과 함께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은가. 결과에 대해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말자.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정리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고, 이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조그만 냇가를 건널 때도 돌다리가 필요한데 돌다리를 놓는 과정을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완공하면 좋겠지만 실력이 부족하면 돌다리 중 몇 개라도 놓는 게 우리 의무다. 다리의 최종 완성은 우리 뒤에 다른 누군가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시작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돌다리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젠가는 마지막 순간이 오겠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그 순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