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고유가 시대를 맞아 연비를 차량 선택의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치솟는 기름 값 탓에 자동차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요즘 소비자들은 세그먼트를 정한 뒤 주행성능이나 디자인보다 연비부터 따져보는 게 자동차 구매트렌드가 됐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디젤차가 가솔린차보다 더 많이 판매됐다. 상대적으로 경유가 휘발유에 비해 저렴하고 연비도 좋기 때문이다. 이런 만큼 자동차 브랜드들도 신차를 선보일 때 연비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기 쉽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연비 개선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현대차와 쌍용차를 위시해 번지고 있는 일명 '뻥 연비' 논란이 정부 부처 간 제각각 기준으로 인해 부풀려졌다는 불만이 업계에서 나와 소비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산업통산자원부의 적합도 조사를 통과했음에도 국토교통부가 다른 잣대를 들이대 부적합 판정을 내리면서 현대차와 쌍용차가 뻥연비 논란에 휩싸이는 등 소비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 현대자동차·쌍용자동차 |
현대차와 쌍용차가 밝힌 싼타페와 코란도 스포츠의 연비는 각각 14.4km/L, 11.2km/L지만 교통안전공단이 조사한 수치는 13.2km/L, 10.2km/L다. 이와 관련 현대차는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의 국제표준 조사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며 재조사를 요구해 추가 테스트에 들어갔으며, 쌍용차는 당분간 국토부 발표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국토부의 연비조사 결과와 달리, 앞서 산업부가 실시한 연비조사에서 해당 차종들은 측정된 실연비와 표시연비가 범위 이내로 들어와 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소비자들은 '국내 자동차들의 표시연비가 실제연비보다 높다'며 '뻥 연비' 의혹을 제기했지만 산업부는 지난 10년간 국내 자동차들의 표시연비의 적합성을 조사하면서 단 한 번도 부적합 판정을 내린 적이 없어 신뢰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정부부처의 각기 다른 해석이 기업의 입장을 애매하게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아울러 이번 조사에서 판정이 엇갈리면서 기준 일원화 여부를 놓고 두 부처 간 논쟁도 점차 심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2003년 제작자가 차량의 성능과 안전을 책임지는 자기인증제를 도입한 국토부는 이후 2012년까지 상용차의 연비만 조사했고 승용차 연비는 산업부가 맡는 식의 이원체제로 운영해왔다.
그러나 국토부는 미국에서 현대·기아차 연비 과장 문제가 발생하자 지난해부터 상용차에만 실시하던 연비 측정을 승용차까지 확대하면서 정부 부처 간 힘겨루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산업부 기준에 맞춰 연비를 신고했는데 국토부가 다른 기준으로 조사를 하면 연비 부적합 판정이 나올 확률이 높다"며 "각 부처가 향후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와중에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논란의 최고 피해자는 소비자라는 것이다. 표시 연비를 믿고 차를 구매한 사람들이 정부의 이중규제에 떠밀려 제조사에 대한 소비자 불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업체 입장에서는 재조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는다고 해도 이미 기업 이미지와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에 어떠한 판정을 받아도 난감한 상황이다.
현대차의 경우 재조사에서도 부적합 판정을 받을 경우 10억원의 과징금은 물론, 소비자들과의 소송에 결과에 따라 최대 1000억원대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계산까지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부처 간 의견 조율도 안 된 사안을 섣불리 발표한 것은 기업의 피해는 물론 소비자의 혼란도 야기하게 됐다"며 "정부가 나서서 업체들이 연비 측정을 허술하게 했는지 안했는지를 입증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