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얼마 전 노인복지관에 노인들을 위한 독서지도 수업을 하러 간 적이 있다. 필자가 가져간 책은 간단한 그림책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노인들이 두꺼운 책을 읽는 게 부담이 될 거라는 선입견이 작용했다.
하지만 그분들은 학식이 꽤 높으셨으며, 그 중에는 수필가로 활동하고 계신 분도 계셨고, 안경 없이도 책을 거뜬히 읽을 만큼 시력도 좋았다. 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라는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자신의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자신의 인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나무들을 심어놓았다.
어린 시절 인상 깊게 읽었던 동화 책 속 병정모양의 나무에서부터, 세계대전에 출전했을 당시 전쟁 장면을 상징화한 나무, 그리고 사랑에 빠졌던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나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인생의 세세한 기억들이 모두 거기에 담겨 있었다.
그 책을 읽은 후 각자 자신의 인생의 흔적을 간직한 대상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나눴다. 한 분은 첫 사랑의 여인이 준 목걸이와 러브레터를 아직도 간직한다며 흐뭇해했고, 또 한 분은 지금도 꾸준히 일기장을 쓴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분은 틈틈이 쓴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까지 냈다며 자랑스러워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의 흔적들을 여러 가지 유형으로 남기며 살아간다.
그 중 한 분은 결혼 후에 이혼의 고비가 숱하게 많았는데 백 번 참고 참아서 나이가 드니, 현재는 성공한 자식 덕 보며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어떤 분은 35년간의 공직생활 끝에 국가로부터 표창장까지 받았다며 뿌듯해 했다. 그리고 어떤 한 분은 남편이 자신에게 피아노를 선물하고 좋은 선생님까지 붙여줘서 피아노를 잘 치게 됐다고 행복해 했다.
그렇게 그 분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계셨다. 인생의 황혼녘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감히 독서지도를 해 드린다는 명분으로 그분들을 만났지만, 오히려 그분들을 통해 내 마음이 힐링 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60대, 70대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봤다. 나는 그 때 어떠한 행복을 말할 수 있을까?
물론 행복을 느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이며, 그것은 다소 변덕스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노년기에 행복의 감정을 붙잡고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처럼 수백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결혼 생활을 인내하고 살아내고, 한눈팔지 않고 외길을 30년 이상 묵묵히 걸어간 후에 얻은 행복이라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점차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들의 인구는 점차 늘고 있다. 이들이 그저 무료하고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이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져야 한다. 사회에서 혹은 가정에서 중심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변인으로 물러나 있는 이들이 다시 주인공으로 설 수 있는 영역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더욱 계발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어차피 한 가지 직업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는 시대가 됐고, 젊었을 때 하던 일을 늙어서까지 유지할 수 있는 일은 많지가 않다. 그렇다면 이들이 끝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사회적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2040년이면 국민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인 초고령화 사회가 될 전망이다. 구성원의 30%가 넘는 노인들의 삶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그 국가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방희조 독서칼럼리스트 /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연구원·전문강사 / 전 KBS·MBC 방송작가 / '일하는 학교' 체험적 글쓰기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