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경쟁력의 기본 '글쓰기' 비법 마흔 가지를 깔끔하게 정리한 '대통령의 글쓰기'
미국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사람,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사람에게 듣자니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신입생들이 쓰는 에세이의 수준이 어지간한 논문을 능가할 정도라고 한다.
◆바야흐로 콘텐츠의 시대, 콘텐츠의 기본 '글쓰기'
한국의 사교육에 대해 말이 많은데 어려서부터 미국의 '글쓰기'에 대한 교육은 한국의 사교육 못지 않으며 매우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라고 한다.
1980년대 들어 시작됐던 '정보화 시대'가 불과 30년만에 완성된 정보화를 활용하는 '콘텐츠의 시대'로 변했다. 그런데 초고속 통신망을 타고 흐르는 모든 콘텐츠들의 밑바탕은 사실상 '글쓰기'에서 출발한다.
특목고 입학을 위한 학습계획서부터 명문대 입학을 위한 논술,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 대기업 사원의 프로젝트 기획안까지 어디 한 군데 '글쓰기'가 되지 않은데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활용 목적이 상업적이든 정치적이든 유희와 사람 사귀기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마저 글쓰기 실력을 요구한다.
◆장미다방 미스 킴과 고스톱의 상관관계
'장미다방 미스 킴'은 손님과의 고스톱에서 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녀의 머리가 좋아서일까? 아니다. 시간만 나면 화투장을 들고 노는, 부단한 시행착오로 쌓인 경험의 축적일 뿐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딱 써 본 만큼 느는 것이 글쓰기다.
그렇다고 무작정 써대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마른 수건 아무리 짜도 물이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 머리 속에 든 것이 있는 다음에 그것이 글로 써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선조들께서도 글쓰기의 조건으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들었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생각을 많이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했다. 땀으로 젖은 수건이라야 짜면 물이 나오는 법, 백 번 맞는 말이다.
◆글에는 정답이 없어도 글쓰기 훈련에 지름길은 있다
글에는 정답이 없다. 쓰는 이도 주관적, 읽는 독자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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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개발새발, 중언부언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깔끔하게 하면서 쉽고 필요할 때 가끔은 재미있기까지 하다면 더 잘 쓴 글이다.
글쓰기 훈련에서 '염두에 둬야 할 점'들이다. 사실 '염두에 둬야 할 점'을 하나 하나 깨달아 가는 과정이 글쓰기 훈련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미 그런 깨달음의 과정을 거친 '고수'들의 경험론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혼자서 맨 땅에 헤딩하는 것보다 훨씬 현명하게 지름길을 가는 것이다.
◆글쓰기 고수의 깨달음 전서 '대통령의 글쓰기'
글 좀 써본 사람들은 안다. 자신의 글이 아닌 타인의 글, 특히 높은 사람의 연설문을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고, 그 사람의 입 높이에서 독자의 귀 높이를 재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상대가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대통령의 글쓰기'를 펴낸 저자 강원국은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만 8년을 쓴 '고수'다. 두 대통령 모두 '말발과 글발' 에서 남에게 지면 서러울 사람들이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우 김우중 회장, 효성 조석래 회장 등 쟁쟁한 사람들도 그의 고객이었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청와대 8년의 '글쓰기 노하우'를 정리한 책이다. '예문, 잘된 점, 못된 점'을 도식적으로 늘어 놓은 책이라면 이 책 말고도 많다. 이 책은 누구나 가보고 싶고, 일해보고 싶지만 아무나 가볼 수 없는 청와대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리고 국민과 외교, 내치와 외치를 아우르는 대통령의 연설문이 생산되는 치열한 과정도 엿볼 수 있다. 물론 시트콤과도 같은 대통령과의 에피소드들 사이에 '마흔 가지의 글쓰기 핵심비법'들이 정확하게 등장한다.
청와대 이후 출판사의 주간이 돼 뒤늦게 SNS(페이스북)에 등장한 강원국 저자가 불과 6개월만에 독자들이 누르는 '좋아요' 숫자가 '400'을 기록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가 털어놓은 '글쓰기 비법'들을 여기에다 나열할 생각은 없다. 그건 '대통령의 글쓰기'를 사서 스스로 읽으며, 훈련할 일이다.
프라임경제 칼럼니스트 최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