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새 봄이 찾아오거나 신학기 때, 또 연말연시가 되면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의 안부도 전해 듣게 된다. 연락처는 알고 있어도 어디에서 뭘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업데이트 되는 정보가 없는 사람들.
'아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름과 얼굴, 약간의 정보를 빼고는 그에 대해 정작 알고 있는 것이 없는데 나는 그들을 대략 '아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그렇게만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게 그나마 이런 때다. 전화번호가 바뀐 사람은 바뀐 연락처를 확인하고, 간단한 신상 변화는 오고가는 문자들 속에서 확인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얘기하지 않지만 한 해 동안의 안부를 전하고 덕담을 나누면서 인연의 끈을 또 하나 이어간다.
'메시지들의 홍수 속에서 형식적으로 안부를 전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나를 생각하며 한 글자씩 눌러준 문자인지 또는 인쇄된 연하장의 문구처럼 글씨는 있으나 내용은 없는 문구인지, 자세히 읽어보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을텐데 이렇게 형식적인 문자를 보내다니 생각하며 무시해버린 적도 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단체문자를 받으며 드는 생각은 그 사람에게도 내가 '알고만 있는 사람'으로 분류돼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나마 연락처에서 단체문자의 한 줄이라도 차지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받고 나면 감동보다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든다.
'성의 없어 보이게 왜 이런 문자를 보냈을까'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렇게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챙기는 그의 마음이 느껴지니 이 또한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정성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딱히 뭐라고 건넬 말이 없어 무난한 문구로 서로의 존재를 한번 '콕 찔러보는 것' 아니겠는가. 답장을 보낼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숙제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나 또한 그렇게 무난한 문구로 상대를 콕 찔러주면 되는 것이다.
전화기 속에 저장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보며 문자를 보내고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해본다. 만물이 소생하는 새 봄이 찾아 올 때 자주 챙기지 못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간단한 인사라도 건네려고 하는 사람, 그렇지만 뜸해진 연락에 갑자기 뭐라고 건넬 말도 없는 사람, 서먹서먹하지만 먼저 말을 건네준 그 사람을 생각한다.
'나 또한 어색하지만 그 사람이 건네준 말에 대답을 건네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고, 인연의 끈이 또 이어지는 것이겠지' 싶은 마음이 드니 내게 먼저 손 내밀어 준 그 사람이 고맙게 느껴진다. 내가 먼저 챙긴 적이 별로 없다는 것도 미안해진다. 의무방어전 치르듯 형식적인 답장을 날려버린 것도 반성하게 된다.
둘이 서 있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를 때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주면 얼마나 고마운가. 봄을 맞는 이 계절에 오가는 문자들은 그렇게 뜸해진, 그래서 인사 건네기 어색해진 사람들끼리 나누는 '정'이다.
장주희 CBS 아나운서 / CBS 기획조정실 홍보팀장 / 한국코치협회 KAC인증코치 / 원광대학교 대학원 미술치료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