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2월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가 발표한 스포츠산업 중장기 발전 계획 및 법령, 제도개선 사안에는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을 통해 선수에이전트 제도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현재 프로축구에만 존재하는 선수에이전트 제도를 모든 프로스포츠에서 허용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것이다.
문화부에 따르면, 이는 에이전트 제도를 활성화함으로써 스포츠산업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이 제도의 도입을 전부터 원해오던 선수들은 이 발표를 반기는 반면, 구단들 특히 프로야구구단들은 조심스러운 눈치다. 자칫 선수들과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잃고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야구 종주국인 미국과 이웃나라 일본 프로야구는 선수에이전트 제도를 일찌감치 도입해서 실행 중이다. 미국은 최소한 한 명의 메이저리그 풀타임 선수와 계약을 맺고 있어야 하며 선수와 구단과의 계약부터 방송출연 등도 주선한다. 일본의 경우 1명의 변호사만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있고 대리인의 업무는 연봉협상으로 제한된다.
한편, 한국프로축구의 경우 선수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됐는데, 그 자격은 FIFA에서 실시하는 공인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통과한 자, 변호사 또는 선수의 가족이다.
사실 우리나라 프로야구에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야구규약 제5장 선수계약에 관한 조항 제 30조에는 '선수가 대리인을 통해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변호사법 소정의 변호사만을 대리인으로 하여야 하며… (후략)'라는 내용의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는 지난 200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약내용을 소상히 숙지하기 어려운 선수들에게 대리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불리한 거래조건을 설정하는 등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라며 내린 시정명령에 의해 만들어진 조항이다.
그러나, 이 조항 마지막에 '(전략) 대리인제도의 시행일은 부칙에 따로 정한다'라는 문장을 삽입하고 '제반 사항을 고려해 프로야구 구단, 야구위원회 및 선수협의회의 전체 합의에 따라 그 시행시기를 정하도록 한다'라는 부칙을 달아 조항이 개정된 후 12년이 지나도록 제도의 시행을 미뤄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그 동안 선수들의 권익이 침해되어 왔던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과거 20회의 연봉조정 신청이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선수 측의 패소로 끝났다는 사실은 선수와 구단 간의 협상에서 힘의 균형이 구단 측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그동안 외국인 선수들의 계약에 있어서 구단들이 선수에이전트들과 협상을 해왔다는 점은 한국선수들이 계약에 있어서 외국인 선수들에 비해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수에이전트 제도의 전면도입이 이러한 불평등을 상당부분 해소할 것으로 믿는다. 계약과 협상의 전문가인 선수에이전트가 선수의 권익을 위해 일함으로 인하여, 선수가 계약이나 협상 같은 운동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경기력 향상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단과의 협상에서 불거질 수 있는 감정적인 대립도 대리인을 내세움으로써 선수 본인이 직면하지 않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공인된 자격의 에이전트를 통해 계약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공연한 뒷거래도 줄 일 수 있다. 부동산 거래의 예만 봐도 그렇다. 공인중개사를 거래에 참여시킴으로써 계약의 투명성이 증가하지 않는가.
물론 일각에는 선수에이전트 제도의 도입으로 선수와 구단 간의 계약에 에이전트 수수료가 더해져 비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에이전트 수수료를 5% 정도로 가정한다고 해도 선수가 만족할 연봉인상을 감안하면 약 15~20% 정도의 비용 상승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선수에이전트를 단순히 연봉협상 등의 계약을 대리하는 사람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미국의 예에서 보듯 선수에이전트는 선수의 연봉협상부터 TV출연, 광고계약을 이끌어내고 팬 서비스, 다양한 스폰서십 프로그램을 이끌어내는 종합매니지먼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프로축구 선수 에이전트들도 선수들에게 다양한 매니지먼트를 포함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우리나라 프로배구구단 해외선수의 수입부터 프로축구 선수 에이전트로 활동할 당시 단순히 계약의 대리활동뿐만이 아닌 광고, TV 출연, 행사 출연 등 선수가 자신의 가치를 이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열어주는데 힘썼다.
이러한 에이전트의 활동은 곧 선수가 에이전트를 고용함으로써 수익의 다각화를 이룰 수 있고, 수입의 연봉의존도를 낮출 수 있기 때문에 연봉협상에 있어서 기존처럼 팽팽하게 대립하는 대신 오히려 협상의 여지를 넓히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어떠한 제도이든 불균형을 해소하는 목적으로 도입하는 것이라면 긍정적이라고 본다. 스포츠 에이전트 제도는 그 동안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만연하였던 구단과 선수의 힘의 불균형을 해소해 그간 침해돼왔던 선수들의 권익을 회복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조류라고 본다.
더군다나 선수에이전트 제도는 그 동안 활용이 제한됐던 선수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치창출의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선수에이전트 업무를 포함한 스포츠 선수 매니지먼트산업의 활성화를 통해 고용과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창조경제'의 일환이기도 하다.
스포츠에서 있어서 선수에이전트 제도의 도입은 정부와 각급 협회는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공신력 있는 선수에이전트 자격을 줄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하는데 부족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김재현 스포츠칼럼니스트 / 체육학 박사 / 문화레저스포츠마케터 / 저서 <스포츠마케터를 꿈꾸는 당신에게> <붉은악마 그 60년의 역사> 외 / 서강대·경기대·서울과학기술대 등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