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온 국민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소치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어떤 행사든 말이 많게 마련이고 불미스런 사건도 생기는 것이 다반사다. 더구나 승부를 다투는 일이면 그 강도는 당연 세지고 비판과 불평불만이 나오기 마련이다. 소치올림픽도 예외는 아니었다.
매회 지적되는 홈그라운드의 텃세인 홈팀 봐주기와 오심사태 등은 이번에도 재연됐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은메달에 이르러 텃세는 정점으로 치달아, 과연 올림픽에서 객관적 판정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의문조차 생긴다. 특히 메달 따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수들이 스포츠인이라기보다 '메달제조기'로 전락한 느낌이다.
매회 거듭될 때마다 지적되는 순위경쟁 격화와 국가주의의 대두는 올림픽정신과 스포츠정신, 아마추어리즘의 쇠퇴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개선이 없는 한 차기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전망하는 것은 무리다.
통상 운동으로 이해되는 스포츠는 대강 두 가지 정도의 목적이 있다. 첫 번째는 신체단련이다. 온전한 육체에 올바른 정신이 깃드는 것처럼 단련을 통해 육체적인 발전과 균형을 추구함으로써 건전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목적은 육체적인 수련을 통해 끈기와 불굴의 인내심등 정신력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다. 자기완성의 수단이다.
그런데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공정한 규칙의 준수를 전제로 한다. 서양인 영국의 경우 젠틀맨십과 스포츠맨십을 동일시한다. 비겁하게 이기는 것은 비신사적 행위라는 것이다. 비겁한 방법으로 이길 바에야, 왜 스포츠를 하느냐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동양의 스포츠인 무술에서 과거 무인들은 무술수련을 자기완성의 수단으로 삼았다. 동양무술에서 겨루기와 승부는 자기완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지 상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근대 서양의 스포츠에서 유달리 강조되는 것도 아마추어리즘이다. 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한 프로페셔널과 달리 아마추어는 자기완성과 명예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러나 최근 올림픽은 이러한 스포츠의 정신을 벗어나 '능력'의 각축장, 국가 간 경쟁의 장이 되었다. 먼저 멀리, 빨리 달려 금메달을 따는 선수의 나라가 강국이 되는 게임장이 됐다. 여기서는 오직 메달을 따오는 선수만 애국자가 된다. 국가는 아마추어 스포츠인에게 물질적 혜택을 제공해 메달을 따도록 유도한다.
각종 연금은 물론 거액의 포상금, 병역혜택 등의 특권을 제공한다. 이러한 메달 지상주의는 선수를 승부기계로 만든다. 물질적 보상인 메달 성과금과 각종 혜택은, 올림픽 우승자만을 기억하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올림픽 순위는 국가 경쟁력 순위이며, 올림픽 경기장은 국가 전사들의 전쟁터로 변신한다.
당초 올림픽은 화합을 위해 만든 축제였다.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의 화합을 다지기 위한 장이었고 부문별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대가는 월계수 나뭇잎과 줄기를 엮어 만든 월계관이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의 올림픽은 오히려 강화되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로 단결보다는 분열조장의 무대가 된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에게 올림픽 참여가 큰 짐이 된다. 피겨 경기 직후 "짐을 내려놓아 홀가분하다"는 김연아와 "동메달 따서 미안하다"는 여고생 스케이트선수의 말은 이 내용을 웅변적으로 입증한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 국가에서도 이미 일반화된 추세가 되버렸다.
소치올림픽에서 우리나라와 관련, 화제의 초점인 이른바 '안현수 신드롬'에서도 변모하는 올림픽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일단 러시아는 금메달이 급했고 해외 우수선수를 수입했다. 한국에서 더 이상 국가대표가 될 수 없었던 안현수는 러시아를 선택했고 이번 올림픽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수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비난과 칭찬, 두 가지 시각이다.
우선 비난시각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입장에서 안현수를 배신자로 규정한다. 하지만 부상과 재활 그리고 또다시 3관왕에 오르면서 동계 올림픽 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 안 선수에 대한 칭찬 또한 공존한다.
안 선수가 러시아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오로지 운동만을 사랑한 그에게는 국가 간 순위 경쟁 보다 한 인간으로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한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이었다. 이런 선수의 플레이를 동시대에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빅토르안이든 안현수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이런 대단한 선수가 있다는 게 중요할 뿐.
소치올림픽은 우리나라 국민에게 두고 두고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 대회다. 이런 와중에서도 일부 선수들이 보여준 행동은 올림픽정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을 주게 한다.
수차례 올림픽에 도전했지만 메달획득에 실패한 이규혁은 현장 감회를 실은 '소치노트'에서 "내가 올림픽에서 더 배울 게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배운 것 같다. 나의 부족함을 일깨우고, 그 부족함을 채워가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가르쳐줬다. 응원의 격려 박수야말로 진정한 나의 메달이다"라고 참여와 과정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미국의 한 고교 피겨선수는 올림픽 시합장에서도 선생님이 내준 스페인어 인터뷰 숙제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를 두고 아마추어리즘의 표본이라고 하면 지나친 미화일까.
이제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과거 시대의 엘리트 스포츠, 국가주의적 스포츠를 내려놓아야 한다. 스포츠의 정치적 이용, 민족주의적 자세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차기 평창 올림픽을 세계적인 축제로 성공시킬 수 있다.
소치 동계올림픽은 이제 막을 내렸다. 관중들은 경기에 참여한 젊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지털 '말' 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