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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눈치 본 스크린의 약속

이보배 기자 기자  2014.02.25 10: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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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누적관객수가 지난 23일 기준 44만2000명을 돌파했습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故 황유미씨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돼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습니다.

영화 내용상 거대 재벌인 삼성은 비판적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어 제작에 난항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제작후원을 통한 '클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제작됐고, 적은 제작비와 민감한 소재 탓에 배우들의 출연 섭외도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화 제목도 두 차례나 변경됐습니다. 김태윤 감독은 당초 시나리오를 완성한 뒤 '꿈의 공장'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요. 노동자 다큐멘터리 중 똑같은 제목이 있는 탓에 영화 제목은 '또 하나의 가족'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또 하나의 가족'은 삼성의 유명 광고 슬로건입니다. 영화를 보기도 전 선입견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영화 제목을 '또 하나의 약속'으로 최종 확정했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입니다.

이렇게 여러 고비를 넘겨 완성된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과 함께 또 다른 논란에 휩싸였는데요. 영화의 예매율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영관 수가 배정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삼성과 멀티플렉스의 외압설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

극장 측은 상영관을 배정하는 프로그래머의 판단이라며 외압설을 부인했지만 여론은 극장 스스로 삼성의 눈치를 보며 영화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와 관련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지난 20일 '또 하나의 약속'의 개봉일과 비슷한 시기인 2014년 1~2월 현재 개봉한 한국영화 8편의 스크린 수를 분석해 발표했는데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통합전산망 통계데이터베이스(DB)를 분석한 결과 '또 하나의 약속'은 올해 1월과 2월에 개봉된 상업영화 8편 중 스크린 수가 가장 적었습니다. 개봉 첫날 확보된 스크린 수는 159개, 누적 스크린 수는 그 보다 33개 증가한 192개로 집계됐습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가장 많은 관객이 관람한 '수상한 그녀'의 경우 개봉 첫날 스크린 수가 577개, 지난 13일 개봉한 '관능의 법칙'은 591개의 스크린 수가 확보됐습니다. '또 하나의 약속'과 비교했을 때 3~4배에 이르는 수치인데요.

더구나 '신이 보낸 사람'과 '살인자'는 '또 하나의 약속'과 비슷한 환경에서 제작됐습니다. 흥행이 보장되는 대형스타가 출연하지 않았고, 비교적 적은 예산이 투입됐지요. 그럼에도 두 영화의 개봉 첫날 스크린 수는 각각 221개, 161개, 누적 스크린 수는 각각 285개, 207개로 '또 하나의 약속'보다 많았습니다.

이와 관련 '또 하나의 약속' 측은 지난 21일 롯데시네마를 △상영관 배정 불이익 △단체관람 예매 및 대관 거절 △광고 거절 등의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는데요. 롯데시네마가 상영관 배정에서 가장 부당한 점이 많아 단독으로 제소하게 됐다는 설명입니다.

그런가 하면 영화를 둘러싼 논란과 루머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영화에 대한 삼성전자 측의 첫 반응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김모 부장은 지난 23일 자사 공식블로그 '삼성투모로우' 첫 화면에 '영화가 만들어 낸 오해가 안타깝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습니다. "영화가 일으킬 오해가 너무나 큰 것 같다"는 게  골자입니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 같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주장인데요. 김 부장은 "제가 근무하는 일터의 안전에 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영화 속의 가공된 장면들이 사실인 것처럼 인터넷에 유포될 때도 침묵을 유지하고, 심지어 근거 없는 '외압설'이 퍼지는 것도 묵묵히 지켜봐야만 했다"고 담담히 기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영화에 머물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술의 포장을 덧씌워 일방적으로 상대를 매도하고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정당하지 않다는 설명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가 다니는 회사는 최소한 영화가 그려 낸 그런 괴물은 절대로 아니다. 저는 제가 속한 이 회사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영화를 둘러썬 논란과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또 하나의 약속'은 장기 상영을 위한 개봉관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故 황유미씨의 기일인 오는 3월6일에는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영화, 다큐멘터리 '탐욕의 제국'이 개봉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