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피겨여왕 김연아의 마지막 무대가 편파판정 논란으로 얼룩졌다.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열렸던 지난 21일(이하 한국시간) 우리 국민들은 경악했고, 한국의 언론은 물론 외신들도 석연치 않은 판정을 강력히 비판했다.
뉴욕타임즈로부터 분석을 의뢰받은 전 세계챔피언 커트 브라우닝은 "단순히 점프를 잘한 선수가 예술가를 이겼다. 이는 피겨스케이팅의 가치를 스스로 격하시킨 것"이라고 혹평했다.
또 이 신문은 프리스케이팅에서 큰 실수를 하며 넘어진 러시아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가 실수 없이 무난한 연기를 펼친 미국의 애슐리 와그너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을 지적하며 이번 편파판정의 희생양이 비단 김연아에 국한되지 않음을 강조했다.
한편, 미국의 유력 전국 일간지 USA투데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익명을 요구한 한 피겨스케이팅 고위 심판이 이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심판들의 국적 구성이 소트니코바에게 명백히 기울어져 있었다(was clearly slanted towards (Olympic gold medalist) Adelina Sotnikova)"며 "(러시아와 가까운) 그들이 이렇게 채점을 한 것"이라는 주장이 담긴 기사가 실렸다.
더욱이 당시 심판진 중 한 명이었던 러시아 심판 알라 셰브코프체바는 러시아 피겨연맹 회장인 발렌틴 피세프의 부인이며, 또 다른 심판인 우크라이나 심판 유리 발코프는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아이스 댄싱의 판정을 조작하려다 발각돼 자격정지의 징계를 받았던 인물이어서 심판진 구성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더하고 있다.
◆의연한 선수에 분노한 국민…연맹은 뒷북만
경기가 끝난 후 김연아는 인터뷰에서 "결과에 상관없이 실수 없이 연기한 것에 만족한다"며 쿨한 모습을 보였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피겨여왕다운 의연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김연아의 이러한 담담한 모습에 국민들은 더욱 마음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하기 힘든 판정에 분노하고 있던 국민들은 중계화면에 잡힌 러시아 피겨연맹 회장 부인인 러시아 심판과 소트니코바의 경기 후 포옹장면에는 황당함까지 느끼며 실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은 직접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온라인 인권청원 사이트인 '체인지(change.org)'에 개설된 소치올림픽 피겨 재심을 촉구하는 청원서명은 이미 200만을 돌파했다.
경기 후 손 놓고 있던 연맹은 이러한 국민적 공분에 직면하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한국선수단은 22일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21일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오타비오 친콴타 회장에게 피겨 여자 싱글 경기가 ISU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정당하게 치러졌는지 확인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다"고 발표했다. 선수단은 "이에 친콴타 회장도 '확인하겠다'고 답변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 그리고 빙상연맹은 이미 버스 놓친 꼴이 됐다. IOC 제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체육회 등 지금의 사후처리는 국민을 위한 면피용 항의가 된 모양새다. 준비된 이의신청이 아닌 항의는 설득력이 약하다. 경기 직후 정식 항의를 하고, 24시간 내에 조직적으로 ISU를 통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공식제소를 했어야 했다.
◆반복되는 올림픽 오심 악몽…협회 차원 대처시스템 필요
스포츠는 국력을 대변하기도 한다. 힘이 없으면 당한다. 올림픽 오심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멀게는 2002년 솔트레이크의 쇼트트랙 김동성 선수와 2004년 아테네의 기계체조 양태영 선수부터,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2012년 런던올림픽의 펜싱 신아람 선수의 눈물을 벌써 잊었는가.
2000년 이후 이렇게 큰 오심 및 편파판정 논란만 올림픽에서 네 번째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이라는 대회의 특성상, 직접적 피해자인 선수들이 받는 상처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피땀 흘려 준비한 선수들이 더 이상 힘의 논리에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국민이 분노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스포츠에서 승부는 공정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의 미학 중 하나가 아닌가. 우리 선수들이 국내와 세계무대에서 공정하게 실력을 겨루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체육회, 연맹 등 협회들이 할 일이며 의무다.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는 선수 및 코치들에게 편파판정 등 불이익에 대처하기 위한 매너교육을 실시한다. 그런데 정작 정부와 체육회, 연맹 등 관계자들은 편파판정 및 불이익을 대처할 교육을 받았는가? 유사시 대응 매뉴얼은 준비했는가? 과거 사례와 가상 시나리오를 통한 조직적인 대처 시뮬레이션 교육은 준비됐고 실시됐는가?
이번 동계올림픽만 해도 준비과정에서 정부 등을 통해 많은 예산이 준비, 지원됐다. 이러한 예산이 금메달만을 강조하며 경기력 상승에만 몰입될 것이 아니라, 각급 체육단체들의 효율적 의사결정시스템, 유사시 대처 매뉴얼 구축 등 구조적인 개선에도 일부 투입돼야 할 것이다.
나아가 스포츠정치, 스포츠외교, 스포츠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를 양성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를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선수들이 외부요인에 대한 우려 없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을 제공해 궁극적으로 스포츠 경기력 향상을 유도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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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스포츠칼럼니스트 / 체육학 박사 / 문화레저스포츠마케터 / 저서 <스포츠마케터를 꿈꾸며> <붉은악마 그 60년의 역사> 외 / 서강대·경기대·서울과학기술대 등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