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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이미지메이킹] '촉각 실종'의 시대

이은주 이미지칼럼니스트 기자  2014.02.17 14: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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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며칠 전, 겨울비가 내렸다. 새벽에 난데없이 들리는 빗소리에 이끌려 베란다로 이동해 내리는 빗방울들을 한참 구경했다. 창문 너머로 손을 내밀어 쏟아지는 빗방울을 맞다보니 그 감촉이 새삼스레 참 좋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빗방울을 느껴본 지가 한참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빗방울뿐만 아니라 꽤 많은 것들을 만져보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시대를 규정짓는 말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런데 유심히 요즘의 세태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이 시대를 규정짓는 한 가지 말이 더 생각난다. 바로 '촉각 실종'의 시대다. 인간의 모든 감각이 과잉 충족되고 있는 이 시대에 촉각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촉각을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그 촉각이 터치스크린을 문지르는데 유독 많이 쓰인다는 것에 있다. 공들여 어디 나가지 않아도, 또한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스마트 기기 속 다양한 앱과 프로그램들을 이용하면 다양한 경험들을 할 수 있게 됐다.

공을 차는 것도, 음식을 만드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들을 손가락으로 슥슥 문지르면 경험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의 것과 스마트폰 앱으로 행하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요즘처럼 실제와 가상의 가치가 혼재돼 있는 상황에서 가짜가 주는 만족에 안주해 버리는 이들도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에가 하얗게 낀 유리창의 서늘함, 그리고 울퉁불퉁한 표면이 주는 짜릿함을 우린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와 더불어 이제 갓 세상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는 영유아들에게 터치 스마트 기기를 장난감으로 사용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데에 심각한 우려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손은 촉각을 인지하는 1순위 기관이다.

아이가 사물을 판단하기 위해 하는 가장 첫 번째 행동이 바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인데, 아이는 이러한 행동을 반복하면서 부드럽고, 거칠고, 딱딱하고, 물렁물렁하고 등의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그 느낌들을 통해 아이는 정서가 함양되고 인지 능력이 향상되기 마련인데, 실제가 아닌 가상의 평면 촉감만으로는 그들의 내적, 신체적 발달 사항에 큰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예전 미국의 한 코미디언이 스탠딩 쇼에 나와서 이런 유머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 학예회 때 모든 학부모가 아이들을 눈에 담지 않고 있었다.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 렌즈를 통해서만 아이들을 바라봤다. 눈앞에 있는 아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뒤로 한 채 우리는 왜 기계를 통해 아이를 바라봐야만 하는가"라는 게 쇼의 중요 대목이었다.

촉각이 아닌 시각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말하려는 의도에 비추어보면 촉각의 범주에서도 충분히 대입 가능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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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양한 만질 거리, 경험거리들을 두고 우리는 왜 화면을 통해서만 더듬으려 하는지 오래두고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이은주 이미지컨설턴트 / KT·아시아나항공·미래에셋·애경백화점 등 기업 이미지컨설팅 / 서강대·중앙대·한양대 등 특강 / KBS '세상의 아침' 등 프로그램 강연 / 더브엔터테인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