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13년 10월12일은 필자가 다니는 회사의 스무 살 생일이었다. 이날 회사의 창립 2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나니, 문득 스무 살 생일 때가 생각났다. 그날 나는 단지 살아남은 게 기뻤다.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쯤 한 역술가를 만날 일이 있어서 우연찮게 점을 보셨는데, 그 역술가는 내가 스무 살 전에 죽을 거라며 어머니께 굿을 하라고 권했다 한다.
어머니는 고민 끝에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쓸 데 없는 일"이라며 들은 척도 안 하셨고, 결국 굿은 없던 일이 됐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 역술가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해서라도 스무 살 넘어서까지는 꼭 살아야겠다는 웃지 못 할 다짐을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무 살은 꼭 넘기자. 그 때까지만 잘 살아 남자. 나는 꼭 할 수 있다.' 고등학생의 다짐 치고는 상당히 별난 것이었다.
그런 사연이 있던 터라 나는 스무 살 생일에 혼자 살아남은 것을 자축했다. 나의 스무 살 생일은 그 역술가의 거짓 예언 해프닝 때문에 지금도 이렇게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 말고는 그다지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회사의 스무 살 생일은 의미가 남달랐다. 1992년 '민주주의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공익 활동을 많이 하던 세 명의 변호사가 모여서 '해마루'라는 이름으로 법률사무소를 만들었고, 여기에 네 명의 변호사가 더 합류, 1993년 10월12일 '법무법인 해마루'가 탄생했다.
문민정부가 막 태동하였던 20년 전 그때만 해도 시국사건이 많았고, 선배 변호사들은 서로 각자의 관심 영역에서 다양한 공익활동을 하면서 법무법인을 운영해 왔다. 회사 선배 변호사들은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노동 관련 사건들, 국가보안법위반 사건들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갔던 수지김 간첩 조작 국가배상사건, 인혁당 재심 및 국가배상사건, 일제 강제동원 손해배상사건이나, 호주제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등 우리사회의 주요 법률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늘 헌신해왔다.
지금은 '공감', '동천' 등 공익적인 활동만을 표방하는 변호사 사무실들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없던 20년 전 그 시절부터 선배 변호사들은 변호사로서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는 공익활동을 하면서도, 회사가 20년 동안 영리법인으로서 살아남게 했다.
20년 전 7명의 변호사가 함께 시작했던 법무법인이 그 동안 많은 구성원들의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초기 구성원들이 대부분 그대로 함께 하면서 지금은 25명의 변호사들 및 27명의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단순히 살아남은 것을 넘어 부침(浮沈)이 유난히도 많은 법조 분야에서 여전히 구성원들의 다양한 공익활동을 용인하고 장려하는 법무법인으로 굳건히 존속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오늘 죽어도 내일 세상은 큰 변화 없이 굴러가듯, 내 회사의 소멸 또한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는 것보다 내 회사가 더 오래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내 회사는 내게 작은 꿈을 실현시켜 준 곳이다. 생업과 공익활동을 같이 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꿈. 어떤 형태의 회사에서 근무하든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신입변호사들에게는 돈벌이로서의 일을 하면서, 여가시간을 이용해서 공익사건에 시간을 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 회사에서는 공익활동을 장려해서 내가 입사했을 때도 월 10만원의 민변 회비를 내주고, 선배들도 내게 처음부터 바쁜 중에도 공익활동을 하는 습관을 만들지 못하면 덜 바빠진 언젠가로 미루어 두고서는 평생 못할 수도 있다고 조언해줬다.
1년차 신입변호사 때부터, 내게 회사 일만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국가보안법위반 등 무료변론 사건을 하는 것도 흔쾌히 지지해줬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회사는 후배 변호사들의 민변 회비를 내주고, 후배 변호사들이 자신의 관심 분야에 맞는 공익활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있다.
비록 나는 선배들처럼 더 헌신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들에 뛰어들지는 못했지만, 회사 덕분에 내 부족한 모습대로 생업과 공익활동을 같이 하는 변호사라는 내 꿈을 이루며 살 수 있었다. 여전히 내 후배들 역시 회사의 그러한 배려로 각자의 관심과 영역대로 변호사로서의 생업과 공익활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며 생활하고 있다.
이런 구성원의 작은 프로보노 실천을 장려하고 격려하는 회사, 내 꿈을 이루게 해 주었던 회사가 우리 사회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회사가 지난 10년 동안 나에게 생업과 공익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던 시간을 지나, 어느덧 나도 파트너변호사가 되어 회사를 같이 경영하는 공동경영자가 되었다.
회사의 스무 살 생일 밤, 앞으로 나의 할 일은 나와 같은 꿈을 가지고 있는 후배들이 내 회사를 통해, 나보다 더 멋지게 자신들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장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무 해를 멋지게 살아낸 내 회사가, 자신의 바람처럼 친절, 신뢰, 협력, 정의의 가치로 200년을 품는 회사로 성장해갔으면 좋겠다. 그것을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앞으로 더 고민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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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 한국코치협회 KAC 전문코치 /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 위원 / 고려대 법대 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