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4.02.15 11:51:01
[프라임경제] 한의학 발전을 선도해 온 명문 원광대학교 한의대가 결국 한방병원 통·폐합 논란으로 발전 원동력을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일부 한방병원을 닫고 양방병원과 합쳐 암센터를 만들겠다는 재단쪽 구상이 윤곽을 드러낸 가운데, 한의대 학생들은 '원광대학교 한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이 같은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는 결국 14일 동맹휴학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비대위는 15일 아침 언론사들을 상대로 한 서면 브리핑을 통해 "14일 한의대 멀티미디어실에서 전체 재학생 436명 중 352명이 참석하여 학생총회(이하 총회)가 개최됐다"고 소개했다. 이어 "동맹휴학의 투표결과 찬성 331명, 반대 19명, 기권 2명으로 참석자 중 94.03%의 찬성으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학생들이 동맹휴학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고 소개하면서, 이 같은 결집된 힘을 무기로 재단 측의 익산·산본 한방병원의 폐원 철회, 학생들의 교육권 보장과 한의과대학의 발전적 대안을 이끌어낼 것을 다짐했다.
◆자존심 생채기낸 처사에 공부벌레들 격노?
한의대에 있어 한방병원은 실습과 수련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일각에서는 대학의 주인이 학생이라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고 설명한다. 대학이 연구를 위한 조합에서 유래한다는 점을 극히 강조하는 주장이다. 따라서 이런 입장에 따르면, 학교의 중요 정책을 학생회 등과 상의해야 한다는 접근은 타당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한방병원 같은 중요한 시설의 운영 방침은 곧 학습권과 연계되므로 이런 학교의 주인 논쟁과는 결을 달리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방과 양방간에는 협진과 협력망을 구축하는 데 상당한 애로점이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컨설팅을 받고 '전격적'으로 이사회 결정이라는 형식을 통해 일부 한방병원을 닫기로 한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같은 추진 상황은 결국 양방 위주로의 구도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한의대가 그간 쌓아온 찬란한 학문적, 그리고 임상면에서의 금자탑을 무너뜨리는 결과 외에 얻을 게 없는 '하지하책'이 아니냐는 점도 지적된다.
원광대에서 일부 한방병원을 곧 닫는다. 대신 한방과 양방간 협력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지만, 이는 의대 중심의 틀에 한의대가 한 부분으로 참여하게 되는 게 아니냐는 불만과 우려가 나온다. ⓒ 원광대 한의대 재학생 제공 사진 |
◆실습환경 나빠질까 우려 무릅쓴 '후진'…가천대 한의대 갈등과 비교되는 처사
일부 한방병원이 합쳐지는 대신, 다른 쪽에 교육기능을 더 키워 실습과 수련 수요에 대응할 것으로 알려지고는 있지만, 이번 추진으로 학습(실습) 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는 한의대생들의 우려도 불식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집단인 전북한의사회 역시 12일 성명을 냈는데, 대체로 학생들의 우려와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의사회는 "원광학원의 양·한방 협진 전문 암병원 설립은 양방 주도로 추진돼, 한의사의 역할은 양방 진료를 보조하는 정도로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한의사회는 "원광대는 구조조정 이전에 한의대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충분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이처럼 원광대 한의대는 현재 있는 시설(병상)이 줄면서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겠느냐는 갈등에 휘말린 가운데, 지난 연말 시위에 나선 바 있는 가천대학교 한의대 상황과 대조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천대는 병상 부족으로 근 10년간 한의대 학생들의 불만을 사 왔다. 이에 따라 시설을 늘리고 제대로 된 실습교육이 될 때까지 본과 4학년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등 '당근'성 합의문이 학교 당국과 학생들 사이에 도출되기도 했다.
다른 학교에서는 한의대 발전 필요성과 시설 강화 등 문제 자체에 학생들의 의견 수렴이 추진되고 있는데, 현재 원광대 한의대를 둘러싼 컨설팅과 그에 따른 후속 조치 그림은 한의대의 독립적 입지를 흔드는 상황만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긴 전통과 나름대로의 성과를 가진 한의대 구성원들로서는 이를 사실상 의대의 한 부분으로 굽히고 들어가라는 신호가 아니냐는 의구심과 함께 서운함을 키울 수밖에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