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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특수금융 '비전문적 은행원의 심사'…이것이 문제

[KT ENS사건 그 이후] 복잡한 거래형태 '합리적 의심' 요구돼

임혜현 기자 기자  2014.02.14 16: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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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엎치락 뒤치락, 복잡한 음모가 곳곳에 숨어있는 복마전이 따로 없다. KT ENS 납품대금 사기대출을 둘러싸고 복잡한 금융거래에 수반되는 여러 허점을 악용한 기법이 점차 알려지면서 어느 당사자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치열한 공방전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에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의 근거 서류를 위조하는 방식이 등장한 가운데, '심사'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나날이 복잡해지고 거래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권에 너무 큰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 또한 제기된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외담대 대출 등에 있어 심사 강화 바람이 불 것이고 이것이 기업금융 경색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금융의 갈래가 발전하고 심사 의무가 외형적으로 커지는 것 같더라도 가장 중요한 기본틀 위에 변주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과 그 이후의 파장을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채권을 유동화해 돈 끌어쓰는 금융구조, 3000억원대 폭탄으로

이번 사기대출 구조는 KT ENS 협력업체가 KT ENS가 발행한 매출채권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즉 외상채권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돈을 빌려쓴 뒤, 나중에 KT ENS가 대출금을 상환해야 하는 게 외담대의 기본적 구조다. 그런데 이 외담대는 어디까지나 대출이므로, 상환이 KT ENS를 통해서 이뤄지지 않는 경우 협력업체로 다시 상환 의무 부담이 가게 된다. 문제는 이 사건이 고의로 빚어진 사기성 대출이어서 둘 중 어느 쪽을 압박해도 상환이 사실상 쉽지 않고 금융기관들이 현재 3000억원대로 파악되는 규모의 상당 부분을 떠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상업용) 인감의 진실성 문제 △우리은행 쪽에서 불거진 거래내역서 위조 혹은 변조시의 책임 문제 등이 조명될 것으로 보인다. 즉 이 같은 여러 거래의 조건 등을 신뢰했다고 주장하는 은행들과 해당업체(혹은 다른 은행)의 책임 분배 문제를 판가름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번 사건을 통해 금융의 전체적인 심사 책임 문제에 이정표를 정립하는 것으로까지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인감을 믿었다(+거래내역 확인서 위조 등)" vs "불충분한 심사는 원죄다"

우선 인감을 신뢰한 은행들의 책임 경감 문제를 짚어야 한다는 주장부터 살펴 보자. 대출 사기에 이용된 법인인감이 '진짜'로 확인되면서 KT ENS의 책임 비중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인감관리를 잘 못한 회사 측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매출채권을 유동화하는 과정에서의 심사라는 책임은 은행들에 있으며, 인감의 문제로 모든 게 면책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은행에서 시스템상의 허점으로 거래내역 확인서를 임의로 조작해 만들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대출 사기 문제를 벌이는 데 악용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도 은행의 모든 심사 책임이 없어지지(면책되지) 않는다고 해석된다.

◆신용장과 가짜 공정증서 판례 보면 '전문성 없는 은행원' 문제 이미 터치?

'외담대', 즉 채권을 유동화시키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이번 사건 말고도 이미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은행원의 심사 범위와 책임 문제에 대해 다룬 바 있다. 

'공정증서'의 진실성 여부와 검토 책임은 이미 '증거의 입증책임'이라는 영역에서 다뤄지기는 했지만 '심사의 책임과 은행원'이라는 근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는 새 이슈에서도 충분히 곱씹어 볼 만 하다. 흔히 생각하는 공증이 공정증서의 대표적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은행의 담보 등으로 활용되는 경우나 소송에서 배당 순위 등을 결정하는 중요 자료가 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공정증서는 증명력에 있어서 일반 문서보다  월등한 증거력을 인정받지만, 이를 악용하기 위해 서로 짜고 가장채권증서를 공정증서로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그대로 믿기 어려운 경우에는 허위채권인지 여부를 고려함에 있어서 그러한 사정을 고려함이 상당하다"는 판례가 2008년 나온 바 있다(대판 2008.7.24,2007다27998 사건).

국제적 거래에서 타국과의 큰 액수 분쟁이 불거질 수 있는 무역의 영역에서도 합리적으로(경험칙상) 믿기 어려운 경우에 대한 심사 문제가 논의됐었다(대판 2008다88337 사건).

이 사건은 특히 은행과 은행간의 분쟁이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끈다.

분할 환어음의 발행이 허용된 신용장 거래라고 하더라도, 수익자가 이 신용장 한도금액을 초과하는 분할 환어음을 발행하고 '선적서류 중 일부를 위조'해 서로 다른 은행에 이를 매도한 것이 이 사건의 핵심 구조다.

위조된 선적서류를 매입한 선행 매입은행의 신용장대금 청구에 대해 신용장 개설은행이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놓쳐' 대금을 상환했다는 점에 대법원은 주목했다. 특히 그 상당한 주의의 판단 기준으로 대법원은 '상품거래에 특별한 지식이 없는' 은행원으로서의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주의'라고 밝혔다.

이런 여러 정황을 이번 사건에 대입하면, 아무리 판단의 근거로 삼을 여러 위조 혹은 변조된 문서 혹은 진짜 인감의 사용 등이 터져 나온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출이 반복된다든지 하는 점은 결국 심사의 부실로 인정돼 은행에서 책임을 질 부분이 상당히 존재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