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 주말 고향 친구 내외가 어린 두 딸과 함께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날이 새도록 수다를 떨고 다음날 배웅에 나섰는데요.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아 들른 근처 마트 장난감매장에 발길이 멈췄습니다.
아이들에게 '뽀통령'으로 불리는 뽀로로 캐릭터 장난감이 진열대 바닥에 사슬로 묶여져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뽀통령의 인기와 아이들의 동심을 의식했는지 차가운 쇠사슬이 아닌 샛노란 플라스틱사슬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마트 내 장난감 매장 뽀로로 캐릭터 장난감이 진열대에 사슬로 묶여 있어 눈길이 쏠린다. 매장을 찾은 아이들이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샘플로 제공한 것이지만 왠지 처량해 보인다. = 이보배 기자 |
매장을 찾은 아이들에게 샘플을 보여주기 위해 몇 가지 제품을 꺼내 진열대와 연결한 것으로 보였는데요.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은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장난감을 살피더군요.
앞서 찾은 마트 인근 백화점에서는 장난감 매장 내 의자와 책상을 따로 설치해 아이들이 직접 장난감을 만지고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어 대조적인 두 장난감 매장의 모습에 조금 의아했습니다.
물론 마트는 백화점보다 공간의 제약이 있을 수 있고, 주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으로 혼잡해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더욱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사리 손으로 맨 바닥에 주저앉아 장난감을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왠지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입 장난감과 국산의 가격 차이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는데요. 미국 바텔사의 '바비' 인형은 국산 '미미' 인형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싸고, 최근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레고 '키마 시리즈'도 한 세트에 15만원에서 비싼 것은 수십만원을 호가합니다. 독일산 플레이모빌 '마법의 성'은 가격표에 36만원이 찍혀있었습니다.
수입 장난감이 이처럼 비싼 이유는 라이센스에 대한 로열티 때문인데요. 로열티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지만 해당 업체들은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제작에 막대한 투자비가 들어가는 만큼 과한 금액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과거 1970~80년대 우리나라는 도시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고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글로벌 완구 생산의 60%를 차지하는 장난감산업 왕국으로 발전했는데요. 주로 소꿉놀이 세트, 딱지, 종이인형, 구슬 등의 저렴한 장난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2002년도에 장난감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은 역전현상이 생기더니, 이제는 수입이 5억8000만달러로 수출보다 8배 이상 많아졌습니다. 한때 잘 나가던 장난감 왕국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본, 미국 등에서 만든 캐릭터 완구와 교육용 블록완구가 인기를 끌었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던 것이 주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또 완구회사가 자사 제품을 알리기 위해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하는 등 장난감과 콘텐츠산업이 융합하는 흐름에서도 뒤쳐지게 됐죠.
부실한 국내 애니메이션 관련법도 이유 중 하나입니다. 1980년대 둘리를 시작으로 2001년 마시마로, 2002년 뿌까에 이어 2003년 뽀로로까지 우리나라에서도 국내외 인기가 많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탄생했는데 국내에서조차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속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국내 애니메이션 주요 단체 7곳이 뭉친 '한국애니메이션발전연대'에 따르면 국내 애니메이션은 대개 지상파 방송 판매용으로 제작됩니다. 20분짜리 한 편당 평균 1억원 정도의 제작비가 쓰이는데 방송사의 구매 단가는 10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제작사들은 부가 수익을 모두 포함해도 제작비를 평균 20% 정도밖에 회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탓에 애니메이션에 투자가 이어지지 않고 어렵게 투자사들을 구해도 저작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지분으로 요구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업계는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의 자생력이 약화되면서, 극장용 국산 애니메이션마저 제작 기반을 잃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장난감에 이어 애니메이션시장까지 국산 캐릭터들이 설 곳을 잃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국내 애니메이션시장의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 오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뽀로로, 로보카 폴리, 라바, 빼꼼 등 40여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날 국회에서는 지난해 발의된 '애니메이션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관한 토론회가 열리는데요. 토론회에 앞서 한국애니메이션발전연대는 자신들이 창작한 애니메이션 주인공들과 함께 이 법의 필요성을 알리고, 2월 임시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촉구할 예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개봉한 애니메이션 '넛잡'은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우수한 기술로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후 넛잡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희망으로 불리며 한국 애니메이션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그러나 실제 한국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제작환경의 열악함, 투자와 지원 부족, 독창성 높은 콘텐츠 부재 등으로 침체에 빠져있습니다. 최근 1년간 극장에 걸린 애니메이션이 10편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세계 127개국에 수출되며 경제 효과는 5조7000억원, 브랜드 가치는 8000억원에 달한다는 '뽀로로'가 국내에서는 차디찬 마트 바닥에 사슬로 묶인 것처럼 해외시장에서 우수함을 인정받은 한국 애니메이션들의 발목을 정부가 나서서 옥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