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르노삼성 성추행 사건은 피해자가 징계를 받았다는 전언까지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사건의 전말은 알려진 것과 차이가 있다. 사진은 르노삼성 부산공장 본사. Ⓒ 르노삼성 |
[프라임경제] 활기찬 부활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이하 르노삼성)가 사내 성추행 사건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특히 상사의 여직원 성희롱 리스크와 더불어 문제를 제기한 피해자가 징계를 받았다는 전언까지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단순히 피해자 의견만으로 시비(是非)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이번 사건의 전말을 살펴봤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각 당사자 간 서술의 차이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흑백영화 '라쇼몽'에서 짚은 주제와 연관 지을 수 있다.
이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각 등장인물이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기억의 주관성'에 관한 이야기로,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왜 각 인물의 진술이 다른지에 집중했다. 진실은 하나일지라도 사람마다 해석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원리를 다룸과 동시에 사람의 이기심이 진실을 왜곡하게 한다고 꼬집는다.
이처럼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각자의 기억이 서로 다르면서도 그 각각이 모두 개연성을 갖게 되는 경우를 '라쇼몽 효과'라고 이른다.
이러한 라쇼몽 효과는 최근 불거진 '르노삼성 성추행'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내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지 않지만, 이후 사측에서 결정한 징계의 경우 서로 다른 주장이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안은 '여성 피해자' 개인과 '르노삼성'이라는 집단 사이의 갈등인 만큼 일단 여론과 정치권은 약자에 해당하는 피해자 측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양새다.
◆가해자 솜방망이 처분…피해자, 부당징계에 형사고소까지
르노삼성에 근무하는 피해자 A직원은 지난 2012년 4월부터 약 1년여에 걸쳐 같은 팀 팀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 팀장은 A직원에게 성적 발언이 담긴 문자를 보내거나 손을 잡는 등 상사의 권력을 이용해 성적 모욕감을 줬다고 한다.
이를 견디다 못한 A직원은 결국 회사 측에 수차례 이 사실을 알렸고 동료들의 증언도 이어졌지만, 회사는 입증이 어렵다며 가해자에게 '2주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렸다.
이것도 모자라 오히려 회사 측은 A직원에게 회사를 그만둘 것을 제안했다. 사내에서는 '꽃뱀이다' '별 일 아닌데 여자가 오버한다' 등의 소문만 퍼졌다. 아울러 회사는 "A직원이 부하 직원에게 협박성 발언을 해 진술서를 받아냈다"며 A직원에게 징계를 내려 현재 대기발령과 함께 직무정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나아가 A직원의 피해사실을 진술한 동료에게도 1주일간의 정직 처분을 했다. 이후 동료들은 회사의 보복이 두려워 A직원과 어울리기를 꺼렸고, 상사 역시 팀원들에게 피해자와 어울리지 말라고 말하는 등 조직적 따돌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작년 12월 지방노동위원회가 "A직원과 도움을 준 동료가 부당징계를 받았다"며 A직원의 손을 들어 준 후에도 회사의 압박은 계속됐다. 회사는 이들에게 직무정지와 대기발령 통보를 했고, 용역직원까지 동원해 회사 기밀문서를 빼낸 것처럼 꾸며 형사 고소하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사측 "보복 아닌 별개 사건에 대한 정당 징계"
르노삼성 측은 '피해자와 동료 징계'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문제에 대한 처분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법과 원칙에 근거해 철저한 조사를 거쳐 객관적으로 인정된 성희롱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가해자인 팀장에게 합당한 징계를 했다는 것이다.
르노삼성 측에 따르면 A직원으로부터 성희롱 사건 공식접수를 받은 사측은 사건 초기부터 여성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해당 팀장에게 '보직해임 및 정직 14일'이라는 징계 조치를 취하고 사무실 위치까지 이동 조정했다. 다만 A직원은 여기 만족하지 않고, 작년 6월 가해자와 회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며 현재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까지는 A직원과 사측의 진술이 거의 일치하지만 피해자 징계와 동료직원에 대한 부당징계에 대해서는 이견이 나오고 있다. '부당 징계'를 주장하는 A직원과 달리 사측은 별개 사건에 대한 적법 징계가 A직원과 연계되면서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이다.
동료 직원에 대한 징계는 48회에 걸친 근태불량과 구제신청 과정에서 관련 자료의 불법 취득에 대한 직무정지 및 대기발령 조치를 취한 것으로, 성희롱 사건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또한 해당 직원은 이후에도 다량의 회사 소유자료를 무단 반출하는 등 절취하는 불법행위를 그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지방노동위원회 역시 무관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A직원의 경우에는 부하 직원에게 강압적으로 진술서를 징구한 것 등 강요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와 함께 이로 말미암아 직장동료 간 위화감을 조성한 행위가 사측에 있어 문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A직원은 동료직원의 서류 무단 반출 및 절취과정에도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부연이다.
르노삼성 측은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한 징계 책임을 철회 혹은 모면하기 위해 언론과 정치계 등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며 "대내외적으로 어떠한 압력이 있더라도 사규위반에 대해 적법 정당한 징계 책임을 반드시 부담하게 함으로써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내질서를 실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현재 해당 문제는 A직원과 그 동료에 대한 징계가 정당했는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과연 단순 언론몰이가 아닌 사실 여부로 판단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내려질지 법원의 판단에 업계는 물론 세간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