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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광장] 금융 정보유출, 강력한 처벌법 조속히 만들어야

소정선 논설위원 기자  2014.02.05 18: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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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교사가 21세기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점을 꼬집을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교육열은 높지만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전근대적 인식의 교사가 생각이 앞서있는 학생을 가르치는 모순적 상황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창의적 인재는 커녕 건전한 시민을 육성하기도 어렵다. 

최근 발생한 전대미문의 정보유출사태는 '19세기 사회시스템을 가진 20세기 한국에 21세기의 첨단기술'이 접목되면서 빚어진 모순이다. 이른바 정보화 사회의 도래로 우리사회의 물질적 기반은 세계 최첨단을 걷는데 이를 운용하는 사람과 제도는 전근대적인 수준이어서 일어난 해프닝이다.

정보사회의 총아인 컴퓨터, 온라인망과 유에스비등 대용량 저장기술이 없었던 30~40년 전만해도 수 백만건의 개인정보를 단시간에 빼돌리고 유통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예고된 재앙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현재까지 KB국민카드와 롯데카드, 농협카드에서 1억400만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고 시중은행 고객 정보도 대량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는 최소 수백만명에서 최대 1000여만명에 달할 전망이다. 이번 사태로 소비자들의 카드사 탈회가 60여만건, 해지 재발급만 500만건에 육박했다.

금융당국은 유출에 따른 2차피해가 없다지만 개인정보 유출 이후 소액결제 사기를 노린 스미싱 사기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발표된 지난 8일부터 21일까지 고객정보유출과 관련한 내용의 스미싱 문자가 무려 751건이나 발송됐다.

유출사고가 발표되기 전(1월1~7일)에는 이런 스미싱이 단 2건 밖에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375.5배 늘어난 수치다. 일부언론에 따르면 관련정보가 이미 시중에 유출돼 유통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전화번호 유출등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사장님 100만원 무료지급, 게임에 참여하세요' '동영상 100건 제공, 무료회원가입' 이틀이 멀다않고 보내온 문자의 발신지는 아무도 모른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2년 직장인 805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6.8회의 '스팸' 연락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과거에도 많았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규모와 질적인 측면에서 금융재앙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카드의 게좌번호는 물론 신용상태까지 거의 모든 신용정보가 노출됐다. 이번 사건을 국가기관의 정보유출에 대입하면 국가적 재앙이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우선 우리사회의 만연한 정보 불감증에 기인한다. 모든 국민들이 정보화 사회에 걸 맞는 인식과 자세를 갖추지 못한 탓이다.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개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회적 강자인 기업들의 정보요구가 과도하며 관리는 소홀하다.

수 천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온라인 유통업체는 물론 주요 대기업과 금융회사, 심지어 피자가게와 PC방까지 불필요할 만큼의 개인정보를 모으고 있다. 정보내용도 주민번호는 기본이며 자녀생일·주거형태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우리사회가 빛의 속도로 달아나는 정보유통 변화에 걸맞은 관리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가 발전을 주도할 국가기관과 정부관계자의 안이한 인식도 이번 사건을 초래한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사회변화에 맞는 법령과 제도를 갖추지 못한 원죄를 안고 있다.

사건 직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은 인재(人災)"라며 "과징금 형벌이 약해 경각심을 주지 못했다"고 사건을 개인의 일탈로 돌렸다. 인재와 시스템 한계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런 관료들이 있는 한 사건은 재발될 것이다.

시스템이란, 특히 범죄나 사회적 일탈을 방지하는 시스템은 개인의 일탈 행위를 발생 가능한 모든 요소의 하나로 감안하고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공직자가 방재예방시스템이란 개념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단순히 처벌이 약해 일어난 우연한 일탈일 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일탈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 살인자에게 사형을 내린다고 살인범죄가 없어진다는 말인가?

사실문제와 정치적 책임의 한계구분도 못하는 공직자도 있었다. 국민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경제부총리는  "소비자들도 정보제공에 다 동의해 줬지 않나"며 책임일부를 소비자들에게 떠넘겼다. 소비자들이 언제 유출에 동의해준 적이 있는가? 그는 현장 실태에도 어둡다.

당장 카드회원에 가입하려면 힘없는 개인은 카드사가 요구하는 모든 정보제공 요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필수사항이라고 표시한곳을 적지 않으면 가입이 불가능한 것을 부총리는 모르는 것이다. 

인식수준이 이러하니 사건직후 내놓은 대책도 부실하다. 사고회사에 대해 영업정지와 과징금 부과를 천명했으나 실효성이 의심된다. 영업정지는 신규 카드 모집이 중지되는 수준에 머무를 전망이며 현행법상 거액의 과징금도 물릴 수 없어 처벌의 실효는 없어 보인다.

정부가 내놓은 과징금 액수는 매출액의 1%. 하지만 '전체 매출액'이 아닌 '불법 정보와 관련된 영업매출액'이 과징금 산정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 부과액은 이보다 크게 줄어든다.

영업정지를 당해도 신규 모집 영업만 불가능하고 결제에 따른 수수료 및 대출 이자 징수 영업은 계속할 수 있기 때문에 징계의 효과는 제한적이다. 해지 즉시 고객정보 삭제나 금융지주 계열사 간 정보 공유 금지 등 유출예방에 핵심적인 내용을 빠졌다. 아직도 정부는 소비자보다 기업을 싸고 도는 느낌이다.

향후 대책과 관련,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하고 정보보호 의식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보 보호의식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처벌만 강화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사회시스템을 정보화 사회에 맞는 구조로 만들지 않는 한 이번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보화 사회에서 사회시스템 개선의 방향은 우리사회의 전근대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근대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근대성이란 근대 시민민주주의의 요체인 평등과 기회균등에 충실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구성원들의 역학관계의 평등을 의미한다. 국민과 소비자에 대해 기업이나 기관, 국가 등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반봉건적인 의식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래야 주어진 권리에 맞는 책임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선 만연화 된 감독기관 공직자의 낙하산 인사가 없어져야한다. 금융관련 공직자가 관련회사의 임직원으로 부임하면서 기업 잘못을 눈감는 것은 사회적 윤리의 실종 측면뿐만 아니라 우리사회가 아직도 봉건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민주사회의 공직을 과거 봉건시대 귀족들이 누린 계층적 권리로 착각하는 한 선진사회는 요원하다.

소비자와 기업, 개인과 기관과의 관계에서 평등성 확립과 역학관계의 불균형 시정을 위한 법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사건 발생이후 금융당국자는 "집단소송제 도입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징벌적 과징금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무슨 근거로 이런 얘기하는지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그는 아직도 이 사건의 시대적 의미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2002년 7월 시행된 제조물 책임법의 도입당시에도 기업은 물론 공직자들의 유보여론이 비등했다.

물품을 제조하거나 가공한 자에게 그 물품의 결함으로 발생하는 신체손상, 재산상의 손해를 제조자가 지게하는 제조물책임법은 우리나라 소비자의 권리 회복을 위한 첫 단추였다. 시행이후 반대론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이 법은 순항 중이다.  

이미 증권 관련 부문에서 적용되고 있는 '집단소송제'는 비슷한 피해를 당한 주주 중 한 사람이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기면 다른 주주들도 이긴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로 소비자와 기업간의 평등한 역학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 근대적 제도다.

이 제도가 충실한 내용으로 시행된다면 굳이 처벌을 강화할 필요도 없다. 만약의 사태 시 수백만 소비자에게 지불할 손해배상을 감안해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기업 스스로 철통같은 보안태세를 갖출 것이다. 더불어 사후 처벌적 속성을 지닌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블룸버그는 "한국이 세계 1위 혁신국가로 꼽혔다"는 뉴스를 전했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우울한 마음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제도와 인식은 제자리인데 기술만 앞서나가면 그 괴리는 더욱 확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번 금융사의 정보유출사건은 오히려 우리에게 보약과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이와 유사한 사건이 국가기관 등에서 발생했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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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하드4'나 '007' 등 액션영화에서 교통, 통신, 금융, 전기 등 모든 네트워크가 테러리스트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국가가 공황상태에 빠지는 상황이 재연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준비되지 않은 정보화기술은 그 사회를 송두리째 폭파시킬 시한폭탄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회시스템에 대한 개선과 함께 정보화 사회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다질 필요가 있다. 책임과 그에 걸맞는 도덕이 전제되지 않은 정보화 사회는 대재앙일 뿐이다.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저털 '말' 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