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 글을 읽는 이가 여성이라면 좋겠다. 물론 남성이라도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여성 가운데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의 남편이나 이성이 완벽하게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번쯤 의심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만일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면 그 의구심은 정답이다.
남성의 언어가 따로 존재한다면 물론 여성의 언어도 다르게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다름'과 '틀림'에 대해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데 분명히 다를 뿐이다. 틀린 것이 아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가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로 분리돼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다름과 틀림을 오해하는데 그 원인의 8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난무하던 시대에 인류는 다름과 틀림을 혼동하지 않는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이데올로기는 하나로 통일돼야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발을 내딛고 생존하는 공간은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몰개성의 시대가 아니라 개성의 시대이다. 따라서 철저히 개인은 독자적 사유를 해야 하며 이기적이어야 한다.
이기적이라는 말에 오해가 있어선 곤란하다. 선입견이 들어간 철학적 사유는 논리를 개진하는데 불필요한 장애물일 뿐이니까. 이타적인 인간만이 사회에 있어 선이라는 생각은 논리적 모순이 강한 명제일 뿐이다. 우리 각각의 개인은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나를 지킬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를 조금 자세히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보면 뒤틀리고 삐뚤어진 나를 직시하기 보다는 남의 잘 못됨을 느긋하게 만족하며 바라보는 인간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기적인 것은 나쁜 것이고 이타적인 것은 좋은 것이라는 강압적 주입식 교육이 우리 사회를 이토록 망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선과 악을 이미 머릿속에 그려놓고 사회를 재단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세계에서 남자와 여자의 언어가 다르다는 매우 일차원적인 화두를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상기시키는 과정은 매우 의미가 있어 보인다.
영국의 인간관계 컨설턴트인 줄리앤 사피로는 최근 '남성만의 언어'가 존재하며 이를 이해해야 이성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사피로가 가장 먼저 지적한 내용은 남성이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자가 무언가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여성이 중요한 내용을 말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남성은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집중할 뿐 다른 일을 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두 번째 남성의 언어 문법은 30초 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성은 보통 남성에게 의견을 묻고 나서 곧바로 남성의 답을 듣길 원한다.(여성들은 멀티가 가능하니까) 그러나 남성은 여성의 말에 대한 뉘앙스나 정보를 모두 인지하고 있지만 동시에 표현하지 못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질문을 하고 답을 들으려면 30초 후에 답을 기대하라는 것이다. 30초 동안 기다리지 못하고 서두르거나 대답을 가로챈다면 감정적 불쾌감만 서로 가질 뿐이다.
남성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길 원한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여성은 보통 하루에 있었던 안 좋았던 것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남성에게 그냥 들어달라는 의미로 이야기 하지만 남자는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려 한다. 이럴 경우 여자는 보통 심각한 대화의 장벽을 느끼게 되며 남자가 눈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차라리 이야기를 꺼내기 전 미리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눈치 없는 남성을 길들이는 방법이다.
남자는 디테일에 약한 동물이다. 반면 여자는 디테일에 강하다. 남자는 보통 대화에 있어 사실에 집중하고 요지를 파악하는데 집중한다. 따라서 사실에 부가되는 잡다한 이야기는 흘려듣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여자는 하루에 있었던 일을 매우 자세히 말하면서 남자가 그걸 모두 들어주길 기대한다. 남자는 디테일을 배제하고 요점에 집중하다보니 여자의 말이 너무 길다고 느낀다. 여자의 디테일한 설명이 남성에게는 고문일 뿐이다.
여자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마치 마술처럼 남자가 알고 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가 필요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동물이다. 차라리 필요한 것이 있으면 솔직히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남자는 칭찬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 무언가를 했는데 칭찬을 받지 못하면 남자는 자신의 노력에 대해 허무감을 느끼고 불평을 하게 된다. 여성이여, 남자의 사소한 배려라도 칭찬하라 그리하면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이상이 사피로의 남성 언어 문법의 요지다. 한 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란 책이 한국 사회를 휩쓴 적이 있다. 태생이 다른 남성과 여성이 한 공간에서 거주하면서오는 모든 갈등은 결국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몰개성적으로 틀렸다고 지적만 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작금의 세대간, 지역간, 정치적 갈등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성간의 갈등의 외연을 확장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동소이하다. 달라도 너무 다른 개인적 주체들이 뒤엉켜 사는 사회에서 서로의 존재를 무시하고 얕잡아본다면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언어적 문법을 파악하려 노력하는데 있다. 지금의 '너는 틀렸고 나만 맞다'는 식의 삿대질적 사고는 한국의 고질적 사회갈등을 해결하는데 걸림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