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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여수 기름유출 현장 가보니…"돈(錢)바다 였는데" 한숨

박대성 기자 기자  2014.02.02 18: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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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일펜스 부근에서 기름을 걷어내고 있는 신덕마을 어민들. =박대성기자
[프라임경제] 2일 오후 4시 전남 여수 삼일동 신덕마을 해변가. 이곳만큼은 설날이 사라졌다.

지난달 31일 아침 유조선이 낙포동 GS칼텍스 원유부두 송유관을 들이받으면서 난데없는 원유가 쏟아져 이 일대는 순식간에 검은바다로 변했다.

   
2일 여수 신덕마을 방파제 인근에 기름띠가 햇볕에 반사돼 빛을 내고 있다. =박대성기자
명절도 잠시, 어민들은 설연휴를 통째 반납해야 했다. 시커멓다 못해 '좌르르' 윤나는 해변가 여기저기에는 기름빛이 햇볕에 반사됐으며, 기름기를 빨아들이는 희멀건 흡착포 수백장이 여기저기 '둥둥' 떠다닐 뿐이다.

사고현장에 긴급투입된 민관 방제단은 기다란 대나무로 '전 부치듯' 흡착포를 위아래로 연신 뒤집어 들어올리기 바쁘다. 당장 생계를 위협 당한 양식어민들은 아예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방제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이 마을 김정식씨(72)는 "대기업이 돈은 돈대로 다 벌어가고 공해는 공해대로 다 뿌려대고 있다"며 "고기가 많이잡혀서 여기가 원래 돈(錢)바다로 이름났는데 기름유출로 다 못쓰게 됐다"고 한숨을 몰아 쉬었다.

   
2일 민관 합동방제단이 흡착포에 묻혀 걷어낸 기름범벅 폐기물. =박대성기자
이 마을과 기름유출 사고가 난 낙포동 GS칼텍스 원유부두와는 직선거리로 1.8km 정도. 하지만 유출된 기름은 신덕.석현마을과 해수욕장, 인근 광양만까지 광범위까지 확산됐다.

사고 해역으로부터 남쪽으로 4km, 폭 1km 범위까지 기름이 확산된 것으로 해경은 잠정 파악했다.

GS 측은 사고 이후 파손된 송유관 밸브를 급히 잠갔기때문에 유출량이 800ℓ에 불과하다고 애써 표현하지만, 방제작업에 투입된 해경과 어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소 1만ℓ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인력을 방제에 쏟다보니 유출량 산출분석마저 늦어지고 있다.

어민들은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고 구토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원유가 아닐거라고 잔뜩 의심하고 있다.

석현마을 조형가씨(70)는 "어느정도 방제가 끝나 오늘은 그나마 덜한 편이지만, 어제그제는 악취가 너무 심하고 머리가 아픈 사람이 한둘이 아니어서 마을사람들이 여러명이 병원에 입원할 정도"라고 증언했다. 

그는 또 "그럼에도 GS는 사고원인과 기름성분, 유출량에 대해서 똑부러지게 얘기하지 않아 어제오후 4시께 방제작업을 중단해버렸다"고 말했다.

GS측은 유출된 기름이 정제되지 않은 원유라고 밝히지만, 주민들은 벙커C유일거라며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여수해경과 자원봉사자 등이 3일째 기름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박대성기자.
이곳 신덕마을 일대는 23종의 어패류와 해초류가 양식되는 곳. 미역, 김, 파래, 우뭇가사리, 톳에서부터 개불, 새조개 종패까지 실로 다양하다.

게다가 한려해상국립공원 주변으로 해수욕장을 갖춘 경관도 뛰어난 곳이어서 어민들은 이번 기름유출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유.무형의 피해를 입었다고 하소연했다. 기름 유출 사고는 명절 분위기도 바꿔 놓았다.

설 쇠러 고향에 왔다가 역한 기름냄새를 못견뎌 서둘러 마을을 떠난 자녀들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기름 떠내느라 설쇨 기분을 망쳤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일부는 일손을 거들겠다며 방제복을 입은 '당찬' 여대생도 있었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는 안나래씨(22.여)는 "설쇠고 대구로 올라가야 하는데 설날 기름사고가 터져서 3일째 일손을 거들고 있다"며 "흡착포로 기름을 적신다음 배에 옮겨싣고 육지로 퍼나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3일간 방제작업이 대대적으로 실시돼 외견상으로는 80% 이상의 기름이 걷힌 것으로 보이지만, 바위틈과 방파제, 해안가 백사장에는 여전히 기름이 떠있었다.

다만, 태안 기름유출이나 1995년 7월 좌초된 여수 시프린스호 사건 때처럼 막대한 기름양은 아니라는 점은 그나마 위안거리다.

   
2일 여수 신덕마을 바다 뿐만 아니라 해안가 바위틈에도 조류를 타고 올라온 기름띠가 검출됐다. =박대성기자.
또 19년전 시프린스호 사고는 GS칼텍스가 유발했으나, 지금은 싱가포르 선적사라는 점은 다르다. GS 측은 "기름방제가 우선"이라며 보상문제는 차후로 미뤘다.

한편 기름유출 3일째를 맞아 시청공무원과 여수광양항만공사, 국립공원관리공단, 군부대(둔덕 1대대),해군 3함대 332편대 GS칼텍스와 자원봉사자 등 1000여명이 방제작업에 투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