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상식 아닌 상식으로 통용되는 상황에서는 사회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근래 윤모 여인의 형집행정지 악용 사건은 법무 교정 행정을 우롱했다는 이상의 문제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재소자들은 얻기 어려운 형집행정지를 통해 무기징역을 받은 살인교사범이 병원의 고급병실에서 사실상 호화생활을 했다는 점은 교정 행정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의 기본구조를 지탱하는 신뢰마저 뒤흔든 사건이었다.
부작용은 만만찮다. 우선 이런 상황에서는 수사와 재판이 아무리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교정단계에서 사실상 이전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문제를 우선 거론할 수 있다. 둘째로는 기본적으로 인권보호를 위해 마련된 이후 지속 발전한 각종 제도의 문턱이 정상범주를 벗어나 엄격하게 높아질 수 있다.
22일 열린 ' 재소자 치료 인권 보호 입법 공청회'는 이 같은 문제적 상황에서 일부 문제점을 이유로 재소자들의 전체적 권익보호 수단이 후퇴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을 '국민적 이성'에 호소하고 관련 논의를 오히려 발전시키도록 해 눈길을 끈다.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물길의 방향을 건전한 토론으로 돌리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번지고 있다.
◆2005년 지침 부작용 타산지석 삼아 '입법공청회로'
재소자가 치료받을 권리는 사회와 정치적 수준이 발전했음에도 상대적으로 뒤쳐진 영역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옛 제도의 맹점을 짚어내거나 이런 사고가 터져도 제대로 교훈을 추출해 발전적 변화의 동력으로 전환하기가 어렵다.
실제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K씨 사례 등 이미 형집행정지 악용 논란 이슈는 과거에도 있었다. 법무부의 관련 지침이 검찰 일선에 하달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러나 형집행정지 허가의 전체적인 건수가 줄었을 뿐, 이후 10년도 못 돼 윤모 여인의 제도 악용이 터진 것을 보면 실제 발전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이 지침 하달 때부터 전체적인 형집행정지의 건수가 줄어들면서 제때 치료를 받으러 형집행정지를 통해 감옥을 나섰어야 했던 많은 이들이 혜택 범위에서 밀려난 게 아니냐는 반성도 최근 나오고 있다.
이번 재소자 치료 인권 보호 공청회는 형집행정지 악용 논란 속에서 인권의 보장 필요라는 논의방향의 대전제를 확인한 행사인 만큼 의미가 있다. 사진 왼쪽부터 혜원 스님, 박민영 동국대 법대 교수, 김영선 전 의원. ⓒ 프라임경제 |
최근 10년간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불허되거나 심사가 늦어져 도중에 사망한 경우가 85건에 이른다고 하는 통계는 전체 허가 규모와 제도의 엄정한 운용 간 직접적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학계나 법률 전문가는 물론 종교계 등 각계의 의견을 모으는 동시에 입법 공청회 형식을 자처함으로써 관련 논의를 지속 발전시켜 입법 형식으로 개선을 끌어내겠다는 포부를 함께 밝혀 주목된다.
이 점은 행사를 주최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에서 소장으로 제 역할을 하는 것과 맞물려 더 설득력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즉 문제해결 의지를 내외에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교정병원 추진 힘든 상황서 '재소자 치료 인권' 중요성 각인 계기
특히 이번 공청회는 형집행정지를 손보려는 많은 형사소송법 등 개정안이 윤곽을 드러내는 상황에서도 독특한 위상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윤모 여인 사건을 시발점 삼아 관심이 환기되자 적잖은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손질할 법안 마련에 나섰다. 다만 요건을 강화하는 등 형집행정지의 제도 문턱을 높이는 방식만으로는 근원을 모두 해소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전체적인 재소자 관련 인권 이슈들을 조망하는 문제는 따로 존재하는 숙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청회가 형집행정지 등 현행 제도의 손질과 발전적 방향 제시라는 토론을 한 축으로 하면서도, 치료를 받을 권리, 즉 재소자 치료 인권이라는 거대한 담론에서 여러 문제를 한꺼번에 포괄해 내려가는 톱다운 방식을 고수한 점은 이런 맥락에서 관심을 모은다.
박민영 동국대 법대 교수의 주제 발표 등 법조와 행정 실무에서 일하는 많은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형집행정지 제도 등의 개선방안을 검토하면서도, 이소영 한중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와 나백주 건양대 의대 교수 등에게 치료권이라는 비법학적 접근을 따로 또 크게 묶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종교계에서 재소자 교정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실제 참여경험을 쌓은 혜원 스님을 초빙함으로써 제도를 분석적, 공학적으로 바라본 후 이를 해부해 발전시키는 개선 대신 인간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두 주제를 연결한 결과를 이끌었다.
이는 많은 전문가들을 초청한 행사 주최 측의 능력을 방증하는 한 징표인 동시에, 그동안 님비현상으로 설치가 많이 지체된 교정병원(재소자 전문병원) 문제가 왜 거론돼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일반시민들에게 알리게 돼 향후 이 같은 반복적 공청회나 토론회를 통한 사회적 효과도 기대된다.
또 이런 시설 및 재소자들의 지역사회와 상호협력 교류가 절실한 상황에서 재소자들이 언젠가 우리 사회로 돌아와야 하는 또다른 이웃이라는 점을 시민들에게 이해시킨 것에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재소자 치료 인권처럼 그간 그늘에 가려졌던 이슈에 왜 정책적 개선과 많은 지출이 이뤄져야 하는지 공감대를 얻어내기도 쉬워질 것이라는 시사점도 던져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