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음에도 형집행정지의 미명 하에 병원에서 호화생활을 즐긴 윤모 여인 사건이 드러나 공분을 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 제도의 허용 폭을 줄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경계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인권의식이 향상되면서 재소자(수용자) 역시 인권의 주체로 강조되고 있다. 재소자에 대한 전통적인 '교정'의 문제 외에도 병이 든 경우의 치료 등 여러 '인권보호'가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문제 때문에 병이 든 재소자의 치료 등 인권보호의 제도를 섣불리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 역시 만만찮다.
이런 상황에서 형집행정지 등 치료 관련 제도의 개선을 논의하고 더 나아가 재소자의 건강권(치료받을 권리) 전반을 망라해 발전과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끈다.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재소자 치료 인권 보호 입법공청회'에는 법조계와 유관부처 관계자들은 물론 학계, 종교계 등이 참석, 관련 주제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재소자 치료받을 권리, 진정한 교정의 시작과 끝
이날 행사를 주최한 이주영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재소자도 기본적 인권을 가진 우리 이웃이지만 그동안 질병 치료와 관련해 제대로 보호받고 있는지에 의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이 문제를 신년에 논의하게 돼 매우 뜻깊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행사를 주최한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재소자 치료 인권보호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나원재 기자 |
아울러 "최근 10년간 교도소 내에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불허되거나 심사결정이 늦어져 사망에 이른 재소자가 무려 85명에 이른다고 한다"며 자칫 국민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왜곡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이런 문제점들의 개선을 촉구하면서 "이 자리가 재소자들의 치료인권 문제를 상기시키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관련 문제 개선에 대한 지속적 관심을 요청했다.
정갑윤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따뜻한 인간적 관점에서 진정한 갱생과 사회복귀의 준비를 유도할 수 있어야, 진정한 교정이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형집행정지 제도의 개선을 모색할 필요가 높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김영선 전 국회의원은 "이번 공청회를 통해 현행 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점들이 폭넓게 논의돼 소외 계층에 대한 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많은 관심이 모이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첫줄 왼쪽부터 김형성 한국입법학연구소장, 사회를 맡은 김영선 전 국회의원, 박민영 동국대 법대 교수.둘째 줄 왼쪽부터 나백주 건양대 의대 교수, 심상돈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교육국장, 박호균 변호사.셋째 줄 왼쪽부터 이소영 한중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조규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혜원 조계종 교정교화 전법단장. = 나원재 기자 |
김형성 한국입법학연구소 이사장(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형집행정지제도의 오남용과 관련해 드러난 외래진료의 역기능적 측면을 외래진료시스템의 통제 강화라는 협소한 방식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재소자의 건강권 보장체계의 효과적 운용이라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을 보탰다.
◆협소한 '치료' 시각 아닌 재소자 '건강권' 보장 넓은 시야 필요
주제발표에 나선 박민영 동국대학교 법대 교수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해 '형집행정지 심사위원회'를 설치하는 근거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현재 보호관찰제도가 도입된 만큼 경찰에 형집행정지자의 관리를 맡기는 현재 시스템은 제도 수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한 재소자 질환자의 중증도 측면에서 볼 때 전문 응급의료체계의 의존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면서 이른바 '긴급 형집행정지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역시 주제발표를 맡은 이소영 한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소자의 건강권과 관련해 "재소자의 건강 문제가 협소한 치료의 개념으로만 접근돼 왔는데 보편적인 건강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건강의 경우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고 전반적인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안녕을 말한다고 전제하고 △다른 나라에 비해 과밀수용 상황 △교정시설 의료인력의 부족 등을 문제로 꼽았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재소자 치료 인권 공청회는 각계 전문가들이 재소자 건강권 보장에 대한 발전적 논의를 나눈 뜻 깊은 자리였다. = 나원재 기자 |
이와 함께 "건강권 보장체계의 운용이라는 보다 넓은 시각에서 접근해야 교정의료의 쟁점들 및 관련 문제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형집행정지 제도 정비·요건 완화 바람직
토론자로 나선 박호균 대한변호사협회 의료인권위원(변호사)은 현재 형집행정지는 검사와 교정시설 근무자, 의사 등이 공정성을 잃고 제도 악용에 가담한 경우 제재 문제를 일반적인 형사 제재로 할 것이 아니라 형사소송법 등에 따로 규정을 만들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무게를 뒀다.
더 나아가 "형집행정지가 꼭 필요한 수형자였음에도 집행정지 결정이 되지 않은 사례와 같은 경우에 대해, 책임 자의 형사적인 제재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해 제도의 판단에 관여하는 이들의 공정하면서도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보였다.
심상돈 국가인권위원회 정책교육국장은 남용의 문제보다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문제라고 주장했다. "제도를 남용하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을 전제로, 지나치게 복잡한 형집행정지 절차를 단순화하고 허용 요건도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는 의견을 내놨다.
조규범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형집행정지의 기간·연장 여부·주요 절차·취소 등 관련 내용이 법률이 아닌 업무처리 지침·사무 규칙·예규 등에 규정돼 구속력이 없다"고 지적하고 "원칙적 기간 설정, 형집행정지 결정 및 연장에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필수화하도록 하는 절차 설정 등의 내용을 법률에 담자"고 제안했다.
◆재소자 보건의료 분야 재설계 필요
토론자들은 재소자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보건의료를 재설계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함께했다.
나백주 건양대학교 의대 교수는 일부 일선 교도소의 경우 치과 진료 때 넉달을 기다려야 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 있었다고 재소자 진료환경 관련 경험을 들려줬다. 또 교정시설 근무 의료인들이 적극적인 건강관리에 나서야 하지만 열악한 근무여건상 오는 환자의 진료에도 벅찬 면도 있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시대적 요구인 '건강증진'을 목표로 꾸준히 현재의 재소자 치료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현행 교도소 의료 인프라는 재소자 질병요구에 비춰 전문성 측면에서나 야간 및 휴일 등 시간대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도소와 지역사회 보건의료 연계사업이 더욱 활발하게 전개돼야 한다"고 정부에 당부했다.
혜원 스님(조계종 교정교화 전법단장)은 현재 재소자 교정시설의 소장과 검사가 치료인권의 현안들을 주도하는 상황에 대해 의사의 진단과 평가가 보다 중요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혜원 스님은 또한 의료전달체계(1·2·3차 병원 간 역할 분담)상 시설 내부 진료와 외부 진료, 형집행정지를 적절히 활용하고 연계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끝으로 실제 재소자 교정교화 활동 경험을 소개하면서 재소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일반시민들의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