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해 국내 완성차 브랜드들은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과 수입차업계의 공세 등으로 내수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한 것이다. 지난해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는 모두 15만6497대를 기록, 전년대비 19.6% 성장했으나 국내 완성차 5개사의 전체 판매량은 137만3902대로 전년대비 2.1% 줄어들었다.
물론 지난 2012년 내수시장 감소율인 4.2%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20%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보인 수입차에 국내 고객들을 고스란히 잠식당하는 것을 막기에는 다소 힘에 부친 모습이다.
이처럼 수치만 놓고 봤을 때 외형적으로 비춰지는 모습은 분명 내수시장이 여전히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시장지배력이 큰 현대·기아차의 부진이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국내 1·2위를 다투고 있는 현대·기아차의 경우 거의 모든 차급을 아우르고 있지만, 엔진과 플랫폼의 공유로 제원상 동일한 성능을 가지고 있어 양사 모델을 '외관 차이'로 판단하는 소비자들이 대다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굳이 두 개 브랜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기아차로써는 현대차 중심으로 된 그룹 구조에 있어 종속적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평가가 만만치 않다.
◆형님 현대차와 '라인업 차별'했지만 효과는…
국내 완성차 브랜드를 대표하는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 한 해 동안 각각 전년에 비해 4%, 5% 감소한 64만865대, 45만8000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와 관련해 기아차는 "지속된 내수 부진과 작년 한시적 개별소비세 인하 정책에 따른 기저효과와 작년보다 줄어든 조업일수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GM과 쌍용차, 르노삼성차는 각각 이 기간 3.7%, 34.1%, 0.2% 증가세를 나타냈다. 결과적으로 좋지 않은 경기 탓을 하며 짜 맞추기식 변명을 하는 기아차와 달리 시장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사실 현대차그룹은 양사의 유사성을 인지하고 나름대로 제품이나 마케팅 및 브랜드 전략에서 차별성을 기하는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다.
기아차는 현대차와 달리 수익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많은 물량을 보장해주는 모닝과 레이는 물론 카니발·쏘울 등 특정 소비층에 특화된 차량을 국내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 기아자동차 |
이러한 세그먼트 특화전략은 초반에는 적중한 것처럼 비춰졌지만 지난해 모닝, 레이, 프라이드의 누적판매는 각각 전년대비 0.6%, 37.5%, 32.6% 줄었다.
뿐만 아니라 기아차의 중심이자 허리라고 할 수 있는 K5 역시 전년대비 19.2% 판매고가 감소했다. 반면 K7은 같은 기간 25.6% 늘었지만 12월 판매만 놓고 보면 48.4% 후퇴했다. 여기에 기아차는 K3에 디젤을 추가했지만 12월 판매가 전년대비 31.4% 감소해 파괴력면에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특히 '대형시장에서 약하다'는 오명을 얻고 있는 K9의 지난해 판매량은 5029대로 전년대비 33.8% 급감한 만큼 판매량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 외에도 현대차와 겹치지 않는 특정 소비층에 특화한 차량인 카렌스와 쏘울도 기아차가 지난해 신형을 선보였지만 틈새 차종의 한계에서 고전하는 등 신차가 출시되면 기본은 할 줄 알았던 모델들이 경쟁사의 구형보다 오히려 덜 팔리는 수모까지 당했다.
◆'직선 미학' 내세운 디자인경영 정체
그렇다면 기아차가 연간 최고 기록을 쏟아내는 경쟁브랜드와 달리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과거 소비자들이 현대·기아차가 국내 자동차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기아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이 넓어졌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은 브랜드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소형에서 준대형시장까지는 공유했지만 경차와 플래그십 세단에는 진입 장벽을 두고 현대차는 고급 브랜드, 기아차는 젊은 브랜드의 느낌을 불어넣었다. 내수시장을 놓고 형님 격인 현대차와 혈투를 벌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출혈을 걱정한 탓에 그간 혈투를 피했지만 이는 결국 기아차에 독으로 돌아왔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국내에서 경차를 판매하지 않는 것은 기아차에 대한 일종의 배려"라며 "상대적으로 브랜드 파워가 떨어지는 기아차에 수익성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많은 물량을 보장해주는 경차시장을 내준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아차는 이마저도 수입차 공세에 밀려 입지가 줄고 있다. 최근 중·대형차급 위주의 라인업에서 벗어나 소형차급을 들여오는 수입차업체가 늘어난 이유에서다.
기아차는 'K 시리즈'를 차량 명칭의 핵심으로 두고 있으며, 지난 2009년 11월 준대형 세단인 K7을 비롯해 이후 K5(중형), K9(대형), K3(준중형)를 잇달아 출시하는 등 'K 시리즈'를 완성했다. ⓒ 기아자동차 |
부임 이후 직선의 미학을 강조한 그는 쏘울을 비롯해 △K3(준중형) △K5(중형) △K7(준대형 세단) △K9(대형)을 디자인하며, 현대차와는 차원이 다른 기아차만의 고유의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고 소비자들의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기아차는 K시리즈로 브랜드 전체를 대변하면서 전체 라인업을 정리한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다만 '디자인 기아' 슬로건을 이끈 피터 슈라이어 전(前) 기아차 부사장이 올 초 현대·기아차 총괄 디자인 사장이 되면서, 소비자들의 시선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최근 기아차의 신차를 접한 소비자들은 전향적이면서도 앞을 내다보던 과거와 다르게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이 차종에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결국 기아차는 고유브랜드로서의 정체성과 독립공간을 마련하고 현대차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최우선 과제로 대두됐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물론 현대차그룹 경영진 손에 달렸지만 이에 앞서 기아차는 같은 차종과 부류 구분 없이 서로 경쟁하고 치열해져야만 국내는 물론 해외 본마당에서 더욱 힘을 낼 수 있다는 최근의 진단과 맥을 함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