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사극을 볼 때마다 매번 타오는 게 고증의 부실함이라는 대목인데요. 비용 문제로 엑스트라를 적게 동원할 수밖에 없는 문제는 컴퓨터그래픽(CG) 등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됐으니 논란거리에서 당장은 비껴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건물 등의 세트장은 매번 돈을 들여 새로 입맛에 맞게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이왕 있는 걸 아쉬운 대로 사용하는 관행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고려시대 양식의 건물이 필요한데 조선시대 건물들이 사용된다든지, 고려 왕궁이 나와야 할 때 다른 사극에서 사용한 중국풍 궁궐 건물이 화면에 나온다든지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방송사들이 공동으로 의논해서 필요한 세트를 몇 가지 잘 지어놓고, 함께 쓰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이야기가 올라오기도 했는데요. 이를 테면 '공동구매'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시사점이 다른 영역에도 통한다는 생각에 다음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고객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곳은 거의 예상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최근 모 금융그룹 고위관계자의 말을 들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임원의 설명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정보를 관리하는 흐름에는 허점이 없다고 합니다. 다만 외부와 맞닿을 수밖에 없는 영역이 있는데(외주를 줘야 한다든지) 이 부분을 어떻게 관리할지가 관건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상당히 자신감 있는 설명으로 들립니다. 문제의 소재를 이미 선제적으로 확인하고 대응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되겠죠. 근래 문제가 됐던 여러 유명 카드사들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카드사와 전산위탁업무를 맡은 신용정보회사 쪽 직원에 원인이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얼핏 정확한 설명으로도 들립니다.
그러나 핵심을 짚은 설명이기는 했지만 하루 아침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상황을 인정하는 발언이기도 합니다. 금융회사가 모든 걸 처리하고 외주를 전혀 줄 수 없는 구조로 가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는 아는데 사고가 터지는 걸 모두 방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토로이기도 한 셈입니다.
그래서 어느 금융회사를 막론하고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돌아가면서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사고가 터지는 특성이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결국 거의 해마다 터지는 사고에 넌덜머리가 난 당국이 강력한 문책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는데요. 이쯤 되고 보면 기업들도 보안대책을 허술하게 관리하는 관행을 빨리 깨야 한다는 질책에서 자유롭기 어렵습니다. 정보보호기술과 관련법에 정통하고 책임있게 대응할 수 있는 임원진이 실질적으로 이 문제를 책임감 있게 관장하도록 하라는 주문도 나옵니다.
다만 특정 금융기관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공통으로 앓는 병이다 보니, 공동의 기구를 설립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옵니다. 물론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국민의 정보보호권 보장을 위한 IT정보보호법 기구를 마련하겠다고 움직인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러나 새로운 소송시장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는 게 아니라, 공익적 관점에서 전문가집단이 활동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이나 금융권과의 소통이 필수적이라는 우려섞인 시선도 따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예 금융권이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자금을 분담해서라도 독립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구에 힘을 몰아주는 것도 방법이라는 대목에 눈길을 갑니다. 방송사들 간에 공동으로 세트장을 짓자는 의견보다는 아마 넘어야 할 숙제가 많겠지만 유의할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