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갑오년(甲午年)을 맞아 모든 기업이 말하는 대로 다 이뤄지는 한해를 기원하지만, 그룹사들의 체감온도는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주머니에 숨은 손은 올해 성패를 결정지을 회심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만큼이나 여전히 조심스럽다. 이런 상황은 그룹사별 오너십이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과 이하 계열사들의 움직임 하나까지 놓칠 수 없는 이유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변화의 바람을 극복해야만 두둑한 곳간을 바탕으로 보다 안정적인 지속경영도 전개할 수 있다. 주요 그룹사들의 갑오년을 미리 좇았다.
이런 가운데 삼성그룹은 갑오년 벽두부터 분위기 전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신년 하례식 발언 이후 그룹은 14일 올해 50조원 안팎의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상훈 삼성전자(005930)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30대 그룹 기획총괄사장단 간담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에 따르면 투자 규모는 50조원 수준으로 지난해 대비 늘어날 가능성은 두고 볼 일이다.
◆그룹 50조원대 투자, 시스템 혁신에 주목
지난해 49조원대 투자계획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한 바 있는 그룹은 올해 경제가 녹록지 않지만, 삼성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해 지난해 수준의 고용 규모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2일 하례식에서 "산업 흐름을 선도하는 사업구조의 혁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기술혁신, 글로벌 경영체제를 완성하는 시스템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며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회장은 특히 이 자리에서 "20년간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걸음인 사업도 있다"며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5년 전과 10년 전 비즈니스 모델 및 전략, 하드웨어적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히 버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와 관행 역시 떨쳐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이 힘줘 강조한 대목이다.
이는 이 회장이 시스템 혁신을 강조한 이유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며,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불황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갑오년 삼성그룹의 행보에 이목이 쏠릴 전망이다. 그룹은 올해 50조원 안팎의 투자를 밝혔지만, 이건희 회장의 복안에 신수종 사업의 방향이 어떻게 틀어질지 예상하기 어려운 형국이 돼버렸다. ⓒ 프라임경제 |
이와 관련 그룹은 '2014년 사장단·임원인사'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를 우선 완성하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제일모직 패션사업 부문을 삼성에버랜드로 이전한 그룹에서, 이 부회장은 전자와 금융계열, 이부진 사장은 서비스와 중화학계열, 이서현 사장은 패션·광고 계열을 각각 담당하며 역할 분담을 확실히 했고 삼성전자의 위상은 보다 강화됐다.
◆자연스레 쏠린 신수종사업 '발등에 불'
자연스레 시선은 삼성 신수종사업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 돼버렸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이 예전 같지 않지만, 이 회장의 말마따나 불황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발등에 불'은 신수종사업이다.
그룹은 지난 2010년 5대 신수종사업으로 △태양전지 △자동차용 2차 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를 선정하며 향후 10년간 23조3000억원 투자와 함께 4만명 이상 고용창출 달성도 목표로 했다.
구체적으로 삼성은 △태양전지에 누적투자 6조원 △자동차용 2차 전지 5조4000억원 △LED 8조6000억원 △바이오제약 2조1000억원 △의료기기 1조2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바이오사업에 6000억원 추가 투자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상황은 이렇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어쩌면 본판에 올린 사업의 궤도 수정도 과감히 단행해야 할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
의료기기 사업의 경우, 삼성전자는 엑스레이 기술 확보를 위해 치과용 CT업체 '레이'와 의료기기사업 강화를 위해 글로벌 의료기기 전문기업 메디슨을 지난 2010년 인수했다.
이를 두고 지난해 11월 '애널리스트 데이'에서 권오현 부회장은 "의료기기 분야는 아직도 아날로그에 해상도가 낮은데, 삼성의 기술을 의료기기에 적용하면 아주 좋은 제품이 나올 것 같다"며 "자체적인 기술개발과 기업 인수 등을 통해 10년 내 의료기기 선두주자가 될 꿈이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종합 의료기기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단층촬영기(CT)와 자기공명영상기(MRI) 등 고부가가치사업에 보다 많은 투자가 요구되는 게 당연지사다. LED사업의 신수종사업화도 어느 정도 진척됐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향후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태양전지 부문은 일부 방향이 틀어지기도 했다. 담당 계열사인 삼성SDI에 따르면 태양광사업은 시장 상황이 어렵기도 하지만 중국의 견제 등 글로벌시장에서의 경쟁력은 떨어지고 말았다.
삼성SDI 관계자는 "당시 태양전지 사업을 삼성전자에서 인수했지만, 결정계 태양전지는 경쟁력이 떨어져 재작년부터 박막계 태양전지로 연구개발(R&D)을 집중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반면,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는 사업은 자동차 2차전지와 바이오사업 부문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사 제품이 채용된 자동차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보탰다.
이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현재까지 삼성 제품이 적용된 자동차는 BMW의 i3,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i8과 크라이슬러 F500e로, 당시 그룹이 투자 금액을 공표했지만 사업부 별로 투자금액을 밝히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바이오 사업도 일정대로 지난해 상반기부터 가동돼 관련 제품을 생산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젠 아이텍의 합작 이후 2013년 상반기부터 정상 가동되고 있다"며 "위탁생산업체이기 때문에 제품명은 못 밝히지만, 미국과 스위스 등과 수주계약을 맺고 진행 중"이라고 관련 답변을 했다.
그룹이 올해 50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가운데 주변 상황이 어떠한 변수로 떠오를지는 여전히 지켜봐야 할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