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제 지인들 사이에서 '용감한 여자'라고 불리는 이가 있는데요. 그 이유는 3년 동안 다니던 안전한 직장을 스스로 박차고 나왔기 때문이죠. 이 같은 놀라운 소식에 저를 포함한 지인들은 '우려'보다는 '경의'를 먼저 표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한 용기에 대한 찬사라고 할까요.
어쨌든 잠깐의 휴식기를 맞은 지인은 꽃꽂이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꽃꽂이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먼저 건넨 말은 '결혼하느냐'였습니다. 꽃꽂이는 요리수업과 함께 전형적인 신부수업의 일환으로 생각해왔던 이유에서죠.
하지만, 지인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보니 생각이 바뀌더군요. 꽃꽂이는 3년 동안의 직장생활 속에서 멍든 정신을 힐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던 것이죠. 제 지인에 따르면 꽃꽂이를 시작하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고 집중도도 훨씬 높아졌다고 합니다. 새로운 도약을 맞이하기 전, 심신을 다잡기에 좋은 활동으로도 보이더군요.
꽃꽂이는 과거 오랜 세월 동안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아름다움을 기리는 행위로 계승돼 왔다. 사진은 지인이 직접 만든 꽃꽂이 작품. = 최민지 기자 |
꽃꽂이 역사는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측하고 있는데요. 중국 당나라 6대 현종 때의 '개원유사'에는 "사비빈배쟁삽염화(使妃嬪輩爭揷艶花)"이라 기록돼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 비빈들이 '아름다운 꽃꽂이를 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꽃꽂이를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동양꽃꽂이의 핵심국가가 됐는데요. 15세기경 일본 가옥 도코노마라는 방 안쪽에 다른 곳보다는 조금 높게 만든 독특한 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꽃꽂이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 공간에 그림족자를 걸고 꽃꽂이를 장식했다고 하죠. 또한, 부처에 꽃을 바친다는 '공화'를 바탕으로도 일본 꽃꽂이 역사를 가늠할 수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에서도 꽃꽂이와 관련한 역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까지는 궁중에서 '가화'를 사용했는데요. 가화란 생화가 아닌 '가짜 꽃'을 뜻합니다. 가화는 주요 왕실행사에서 빠지지 않았다고 하죠.
가화 중에서 비단과 명주실로 만든 꽃을 채화라고 하는데요. 채화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가치 있는 기술이자 문화입니다. 조선시대 궁중채화는 '화장(花匠)'이라는 궁궐 소속 전문인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또 궁중의식이 있을 때 꽃을 꽂고 관리하는 임시관직인 '분화관(分花官)'도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생화를 꺾어 장식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기 때문에 가화를 사용했던 것인데요. 여기서 일본과 한국의 꽃의 아름다움을 기리는 방식 차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존경하며 관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꽃을 꺾지 않았던 것인데요. 일본의 경우는 살아있는 꽃을 꺾어 장식함으로써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탈바꿈시킨 것이죠.
양 국가의 꽃을 대하는 방법은 이토록 다릅니다만,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마음은 같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아름다움을 너무 잊고 살지는 않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받기 싫은 선물 중 하나로 꽃이 꼽혔다고 합니다.
실용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너무 물질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가끔은 꽃 한송이에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정서적 충만함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