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현 기자 기자 2014.01.07 17:25:41
[프라임경제] "사회적기업은 '비효율적인 것이 효율적인 것'이라 하더군요. 장애인사업장이 정상인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게 당연하단 의미죠. 장부상이라도 이익과 손해에 연연하기보다는 일자리와 기회 창출을 제공함이 우리 같은 기업의 가장 큰 생존 이유입니다. 그러나 동정에 기반 한 경쟁보다는 시장에서 품질과 가격으로 정면 승부하는 것, 도와주는 것이 아닌 시장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우리의 최대 목표입니다." -김완수 관리팀장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낡은 건물 속 3층의 한 작업실. 43명의 손길이 각자 맡은 업무로 분주하다. 그 누구도 우두커니 앉아 있는 사람이 없다.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외치며 존재를 알리니 그제야 한 두 명 정도 눈을 찡긋거린다. 그러나 이내 앞에 놓인 종이 가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틀에는 영하를 넘나드는 한파에 서리가 가득 꼈지만 실내는 43명의 열기로 온도를 계속 높여가고 있었다.
비누꽃 제작 및 인쇄사업을 하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행복을 파는 장사꾼'. 마치 한편의 동화 같은 상호 명에 이끌려 방문한 이곳은 지역의 취약계층, 특히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나눠줌으로써 '함께 일하는 지역 공동체'를 실현하는 사회적기업이다.
행복을 파는 장사꾼 작업장에는 영하를 넘나드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43명의 작업자들이 모여 종이가방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 정수지 기자 |
정명옥 행복을 파는 장사꾼 센터장은 "다양한 장애유형을 가진 장애인들이 모여 교육, 제조, 판매활동을 공동 작업함으로써 서로의 장애를 보완하고 능력과 능률을 극대화해 장애인에게는 자립, 가정에는 희망을 주고자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름만큼 시작도 아름다웠다"
2014년 1월6일 현재 행복을 파는 장사꾼에는 장애인 25명과 사회적기업 여타 지원 인력 등 총 43명이 근무한다. 초창기 2평 남짓했던 작업실은 어느덧 150여평이 넘는 중소기업으로 커졌고, 5명이었던 인원은 43명으로 늘었다.
행복을 파는 장사꾼 정명옥 센터장(사진 좌)과 김완수 시설팀장. = 정수지 기자 |
이는 롯데홈쇼핑의 우수사례로 선정, 여러 차례 소개될 정도였다.
학부시절 사회학을 전공한 정명옥 센터장은 특수교육 업무에 두루 종사하며 사회복지학 석사까지 마친 사회복지학 전문가.
내친김에 사회복지학과 1급자격도 땄다. 하지만 사실상 김완수 센터장과 모자관계다.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중무장돼 장사꾼에 합류했을 것이란 예상이 빗나갔다. 아들이 벌인 일을 잠시 도와주려던 것에 발목 잡혀 지난 2007년부터 지금까지 행복을 파는 장사꾼 일원으로 남게 됐다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여장부다.
◆시작은 꽃으로 아름답게…지금은 인쇄업 '박차'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그의 아들이자 시설팀장인 김완기(38)씨가 2006년 장애인고용촉진공단과 옥션이 주최한 인터넷 쇼핑몰 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인터넷 쇼핑몰 사업으로 탄생했다. 어린 시절 갑작스런 소뇌축증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김완기 행복을 파는 장사꾼 시설팀장은 이 기업을 장애인 재활시설로 개설했다.
이후 전자상거래와 종합유통업을 진행하며 생화 꽃배달 서비스와 다양한 비누꽃 개발로 업계의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곳은 현재 사업모델과 연계한 판촉물 생산 등 인쇄 작업으로도 사업을 넓혔다.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비누꽃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 행복을 파는 장사꾼 |
정명옥 센터장은 "우리 식구들은 일이 없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안 해도 될 걱정까지 하며 불안해하기 때문에 경기를 타지 않는 사업 병행이 중요했다"며 "꽃 사업은 5월과 연말연시를 제외하곤 매출이 높지 않아 부가가치가 높은 직접생산 아이템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현재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일반소비시장을 대상으로 오는 15일부터 내달 15일까지 비누꽃 전품목 최대 40% 할인이라는 이벤트 등을 진행하며 꽃 사업을 꾸준히 펼치는 한편 경기를 타지 않는 사업으로 관공서 등을 대상으로 쇼핑백이나 수첩 등을 제작하는 인쇄업에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SK그룹 계열사 쇼핑백도 생산하며 제품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으로 한 가족 계속되길"
그러나 현재 40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안착한 유렵의 사회적기업 시스템과 달리 국내의 경우 금융위기 시절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탄생한 짧은 역사로 인해 현재 사회적기업이 과도기를 겪고 있다는 게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김완수 시설팀장은 "사회적기업이 챙겨야할 서류가 많다"며 "복지부와 고용노동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기업 시각차가 있어 이를 조율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꼬집었다. 김 팀장은 "(정부의) 지도 감독이 많다 보니 작업자들 훈련도 잘됐고, 직업재활 시설적인 면에서도 체계가 잘 잡혔으나 여전히 지켜야할 규제조건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비누꽃 및 꽃 사업 외에도 현재 인쇄업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 정수지 기자 |
내년 정년퇴직을 앞둔 정 센터장은 "인력 지원이 끝난 후 필요한 사람만 남아야 하는데 사실상 모두가 필요한 사람"이라며 "이익이 안 난다고 해서 구조조정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일자리 제공이라도 필요한 사람만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무조건적인 비관만하지 않는다. 꽃사업 이외에도 간접주문 외 직접주문을 늘리는 방식으로 부족분을 메워 나갈 계획"이라며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을 지속 추진해 지금의 인원 모두 식구들이 한 가족처럼 유지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완수 시설팀장 역시 "세계에서 안 망할 것 같은 회사 2위로 꼽혔던 자바를 만든 선마이크로시스템스 역시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시장이 변한다지만 어느 한도 내에서 방향의 무게추가 어디에 놓이느냐의 문제일 뿐 시장 트렌드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며 "10년 전에도 비누꽃 사업은 있었고 지금도 있다. 접근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 가와 어떻게 적응하는가에 대한 문제"라며 리더다운 경영자의 혜안을 제시했다.
연속기업 7년만의 연매출 10억원. 행복을 파는 장사꾼은 현재 사회적기업으로 순항중이지만 머지않은 날, 그들 앞에 놓일 미래는 대기업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