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권선주 기업은행 부행장이 차기 은행장 후보로 지명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내부승진자 출신인 조준희 행장의 뒤를 이어 그간 외부에서 수장이 오는 게 당연시 돼 오던 연쇄 고리를 깬 데다 여성 은행장이라는 새 역사를 쓰게 됐기 때문인데요.
은행권은 업황 특수성으로 인해 다른 금융권에 비해서도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곳으로 회자됩니다. 더욱이 기업은행은 은행 중에서도 일찍이 민영화된 다른 곳들에 비해서도 '기관'의 분위기가 강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국에서 처음 여성 은행장이 나온 것이 이채롭다는 말도 나옵니다.
여성 은행원은 우리 은행업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왔지만 고위직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재풀이 두텁지 않다는 것인데요.
1997년 외환위기 전만 해도 여행원 하면 대개 고졸 직원을 떠올렸습니다. 이후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면서 행원들은 남녀 모두 으레 100% 대졸자의 몫으로 생각되게 되었지요.
하지만 인사의 시스템 흔적이 오래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은행들은 1993년 남녀 행원을 분리 모집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이라는 노동부의 유권해석을 받고서야 이후 '종합직'과 '일반직'으로 나눠 행원을 채용하는 걸로 제도를 변경했습니다. 이런 시대부터 고학력 여성이 많이 들어오는 시대로 넘어오기까지, 결혼 등 여러 이유로 중간퇴직을 한 여행원이 상당하기 때문에 인재풀 부족 문제가 임원 등 배출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이미 언급했지만 외환위기 무렵의 흔적은 다른 방향으로도 상처를 남긴 게 사실입니다. 부부 행원의 경우 한 명이 선택적으로 그만 두면 남은 쪽은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등 보이지 않는 압력이 일부 은행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공공기관적 성격의 기업은행에서는 이런 상황들이 그나마 '최악으로까지는' 작용해 오지 않았던 셈입니다. 여성 인력이 실력을 인정받는다면 남을 수 있는 구조가 오히려 더 보장되는 반사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또 공공적 속성을 아직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여성 은행장 배출 같은 '결단'이 필요한 부분에 오히려 과감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인선에서 권 내정자가 후보군에 추가된 것이 알려지자 여성에 대한 배려가 일말은 있지 않았느냐는 소리가 나온 바 있었고, 결국 최종 낙점이 됐는데요. 비단 여성이라는 점 하나에서 뿐만 아니라 실력+내부 출신이라는 점에서 가장 적당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낙하산 인사를 쓰지 않고도 창조경제의 정책금융 파트너를 고를 수 있었던 셈인데, 그래서 이번 여성 은행장 배출이 더 뜻깊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욱이 이번 인사로 당국이 여러 은행들에 창조경제에서의 금융 역할론에 모종의 '개혁 촉구' 신호를 보내고자 한 것이 아니냐는 풀이도 더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당국이 기업은행을 통해 고졸 채용 르네상스나 시간제 일자리 활성화 등을 모색해 온 점을 생각해 보면 더 빠른 이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고졸 채용을 선도했던 기업은행은 창구 텔러의 경우, 고졸자와 대졸자의 처우와 복리후생을 같게 해 놓는 등 조치로 눈길을 끌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