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기자 2013.12.22 17:43:01
[프라임경제] 근래 고난의 파고에 직면해 있는 두 해운 명가, 한진과 현대. 결국은 둘 다 사면초가인가, 그리고 그게 전부인 것일까? 현대그룹이 22일 금융계열사 매각 등 강도높은 구조개선을 선언하고 나선 가운데, 이미 대한항공에 지원 요청을 한 한진해운이 함께 시선을 모으고 있다. 해운이라는 특수한 업종에서도 그렇지만, 며느리가 전면에 나서게 된 여성경영인 체제라는 점에서도 현대와 한진은 해운업계 뿐만 아니라 재계 전반의 관심을 많이 받아왔다.
이번에 현대그룹은 금융업에서 손을 떼면서 실탄을 조달, 시장의 유동성 우려와 채권단의 압박을 진화하게 된다. 동부그룹과 한진그룹의 자구안이 3조원대였던 것을 참조했다는 시선도 나온다. 이번 현대그룹의 계획안도 약 3조선으로 계산되는 점에서 나오는 해석이다. 겉으로는 '고뇌에 찬 (자발적) 결단'이지만, 3조원대의 유동성을 확보해야 일단 안심할 수 있다는 금융권의 시각에 사실상 항복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따른다.
◆말뚝 부담에 업황 부진 겹쳐 타격 컸나…한진과 현대의 미묘한 차이?
현대그룹은 일명 경영권 문제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한 행보를 보여왔다. 우선 가깝게는 현대상선의 우선주 발행을 놓고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의 힘겨루기가 있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이 갈등은 현대그룹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이사진 보수한도와 우선주 발행한도에 대해 현대중공업이 난색을 표하면서 주주들의 표결로 갔는데, 이 문제가 현대그룹측의 아슬아슬한 승리로 끝난 바 있다. 이는 범현대가와의 경영권 분쟁 문제로 인식됐고, 이에 따라 대다수 일반 주주들이 현대그룹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해석됐다.
현대그룹이 범현대 일가와 갈등을 빚은 것이 이 사건만은 아니었다.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는 현대차그룹과 맞서 경쟁한 바 있는 등 현대그룹은 경영권 침탈 시도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고 강한 대응도 마다하지 않아 왔다. 즉 그간 현대그룹이 등장하는 여러 경제계 키워드는 모두 이 경영권 방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해독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06년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상선 주식 27%를 매입했다. KCC, 현대건설 등이 보유한 지분을 더하면 범현대가가 소유한 현대상선 지분이 적지 않았다. 현대그룹 계열사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우호지분을 50% 가량 유지했던 배경이다.
한진해운측도 이 같은 경영권 문제에 둔감하지 않다. 하지만 둘의 행보는 적잖이 다른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선 현대그룹은 경영권 침탈 우려에 덧붙여진 동정적인 시각을 잘 살려내지 못했다. 우선 현대엘리베이터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히' 동원되고 있다는 논리가 부각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 보자. 이는 '경영권 우려 논리'에 대한 염증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최근 신용평가업체 나이스신용평가는 현대엘리베이터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췄다.
현대증권 노조가 그간 드러낸 바 있는 불안감 역시 현 회장의 드라이브 실패에 기인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좌)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두 여성 경영인이 시선을 모으고 있다. 두 해운명가가 시험대에 직면할 때마다 비슷한듯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여 왔기 때문이다. ⓒ 프라임경제 |
한진해운의 경우는 대한항공의 도움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경영자적인 역할론을 잘 보여줬다는 평가다. 물론 계열분리-독립경영이 어려워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신디론을 지원받는 대가로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기로 했고, 최은영 회장도 보유한 한진해운홀딩스 지분과 자택까지 담보로 내놓기로 한 점 여기 더해 대한항공을 움직인 대목이 얻은 좋은 평가는 무형의 '긍정적 수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진해운이 유동성 확보를 위한 자산 매각 등의 자구계획안을 내놓고 대한항공도 강한 지원 의사를 밝히자 지원에 난색을 보이던 일부 금융권까지 뜻을 바꿀 정도로 긍정적으로 일이 풀린 것으로 알려졌다.
◆KAL 도움 끌어낸 한진해운과 대수술 현대, 속쓰린 '재무개선' 다른 해법 '데자뷰'?
한진과 현대의 위기 대응 전략 전반을 거칠게 나마 스케치해 보기 위해 사례를 좀 더 보충해 살펴 보자. 시계를 몇 년 앞으로 돌리면 2010년경 재무구조 개선약정 처리 국면이라는 키워드와 접하게 된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신한 지분 매각 추진 등 유사한 행보를 여럿 보여 왔으나 전반적으로 한진쪽이 안정적 전략 항해라면 현대상선은 거친 바다에 맞서는 저돌적 항해 같은 면모를 보여온 것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현대그룹측의 2010년 지분 매각 추진으로 화제를 모았던 부산신항. ⓒ 현대그룹 |
한진해운측은 '해운업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불만이 없지 않은 상황에도 약정을 받아들이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경영권의 키맨 격인 현대건설을 놓칠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현대상선에 대한 재무약정 체결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금융권 전반을 상대로 전쟁을 치렀다는 평가마저 나올 정도였다.
과거 한진해운의 행보 중에서 스터디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한 일이 하나 더 있다. 한진해운은 주가가 좋지 않을 때 홀딩스와의 분리를 통해 지배구조를 사실상 지주사 체제로 수술하는 모습도 보였다. 결국 이번에 KAL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계열분리는 수포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미 이렇게 그룹으로의 재편과 독립을 추진해 본 노하우는 어떤 형태로든 '최은영 체제 혹은 그 이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아울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자금을 긴급히 동원하기 위한 카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신항 지분 매각'이라는 방법을 구사했을 때에도 일을 추진하고 매조짐하는 상황에서 한진해운측이 상대적으로 정교하다는 평이 없지 않았다.
어떤 형식으로든 '현정은 체제'와 '최은영 체제' 모두 해운업황의 부진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면서 매순간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경영상 판단을 내려왔다는 자체는 차이가 없다. 두 오너 경영인 모두 나름대로의 전략을 구사하면서 여러 스킬을 구사해 왔고, 다만 사정의 부득이함으로 지금과 같은 전환기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같은 닮은 듯 다른 듯 미세하고도 미묘한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오너 체제의 수호라는 점에 강하게 집착하는 정도의 크기, 더 나아가서는 체제의 안정성 자체에 모든 걸 싣는가 혹은 이를 내려놓을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두 '해양그룹'이 조금 다른 철학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냐는 풀이가 나온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이들이 약간은 다른 그러나 모든 것을 건 위기의 파고 극복을 진행한다는 공통되는 상황을 겪고 있는 올해 연말은 그래서 미래 어느 시점에서는 많은 경영학적 영감을 남겨준 시대로 기억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평온한 바다는 결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 수 없다"는 속담에 빗대어 위로하고 정리하기엔 두 해운명가가 겪는 고통이 크다는 점이 시선을 모으고 있다. 둘 다 모두 안전하게 위기 극복이라는 목적한 항구에 계류하는 데 성공할지 혹은 어느 하나만 남을지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