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 지난 11일,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한국전력 본사에서 열린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는 의견 청취와 조율이 아닌 갈등 폭발의 무대로 변질됐다. 이번 2차 공청회는 시작부터 시민단체와 반핵단체 회원들의 첨예한 대립으로 얼룩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0월 원전 비중을 29% 수준으로 유지하는 내용을 골자 삼은 2차 에너지계획을 국회 산업위에 보고한 바 있다.
#2. 경기도 고양시는 '뉴타운 출구전략'과 관련, 다양한 카드를 구사하겠다는 구상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고양시는 지난 3월11일 1차 보고에 이어 7월24일 2차 시민보고회를 통해 '고양시 도시재생 맞춤형 힐링전략'을 마련, 민간 전문가가 주도하는 '도시재생 힐링센터'를 설립해 갈등조정 등 힐링전략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처럼 사회 전반에 각종 갈등이 극심하게 터져 나온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와중에 행정과 정치를 둘러싸고도 각종 대립이 격화했다. 이런 점에서 공청회가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는 일종의 공감대가 형성된 점은 그나마 올해 우리 사회가 거둔 큰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공청회는 국회법이나 행정절차법, 또 여러 개별법 규정에 따라 국회·행정기관 등에서 중요정책 결정을 비롯한 법령 등의 제정 또는 개정 즈음해 이해관계자나 그 분야 권위자를 모아 놓고 공식석상에서 의견을 듣는 제도다.
그러나 막상 위의 첫 사례에서 보듯, 공청회는 그저 의견이 다른 이들 간에 충돌로 비화하는 게 당연하다시피 받아들여져 왔다. 또 실제 시민의 의견이 공청회를 통해 표출돼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냉소적 평가가 우리 사회에 오래 뿌리내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유연하고 유용한 창구로 공청회를 적극 활용하려는 '새 발견'이 진행되고 있다. 또 아직 잠자고 있지만 공청회와 관련한 새 법을 마련하자는 업그레이드 추진도 모색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수렴의견 반영, 실질적 구속 없어 빈틈, 관건은 행정청 의지?
공청회는 정책담당자와 지방자치단체장, 그리고 지방의회나 주민 의지에 따라 개최될 수도 있으나, 특정사안에 대해서는 개최가 의무로 규정돼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1년 개정된 도시계획법 제16조에서 처음 공청회 제도를 법제화함에 따라 제도화된 것으로 일려져 있다.
행정절차법 제23조에서는 다른 법령 등에서 규정하는 경우와 당해 처분의 영향이 광범위해 널리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행정청이 인정하는 때는 공청회를 개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 법은 제출된 의견의 성실한 반영도 요구한다.
공청회의 실질화를 통해 갈등을 미리 예방하자는 아이디어가 최근 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특정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공청회 장면. ⓒ 프라임경제 |
과거 경기도 성남시 일부에 신도시인 분당 개발을 추진하는 국면에서 이런 점이 드러났다. 입법이나 행정을 위한 법적 공청회가 아닌 경우에도 시민단체에서 시민공청회 등의 명칭을 쓰기도 하는데 당시 행정기관과 시민단체들이 공청회를 별도로 열었던 이 사례는 공청회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관 중심적 시각이 잘 나타난 해프닝이었다.
다만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이미 일찍부터 그 한계에 대한 경고음이 나오고 있었다. 2006년 12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내놓은 '공람·공청회 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공직 10년 이상 경력자 147명을 조사한 결과 현행 제도의 형식적 운영에 대한 답변을 꼽은 인원은 84명, 주민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43건이나 되는 등 문제를 피부로 인식하는 경우가 상당했다(복수응답). 적절하게 운영된다는 공직자는 9명에 불과했다.
◆공청회 기능 강화 필요성 주목 "모든 분쟁, 소송 해답 아냐"
힐링 등 새로운 간판을 걸고 의견의 수렴 활성화를 모색한 고양시 등 경기도 여러 도시들은 근래 뉴타운지구 지정 문제로 소송 몸살을 앓아왔다.
특히 고양시를 상대로 한 능곡 1·2 구역 뉴타운지정 관련 사건에서는 공청회를 제대로 열어 의견을 수렴하지 않아 '지정 행위가 무효선언돼야 할 사안'이라는 주장이 원고 측에 의해 2012년 1심 과정에서 제기됐다.
지난 5월에는 고양시의회가 뉴타운 전문가, 지역 주민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뉴타운-이것이 주민의 목소리다'를 주제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행사에서 기조발제에 나섰던 박시동 시의원은 "90% 가까운 시민들이 뉴타운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있고, 절반 가까운 시민들이 뉴타운 반대로 돌아섰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현 정비사업의 구조와 주거불안전성을 지적하고 출구전략 수립과 대안적 정비사업 모델 마련, 공공지원을 위한 우선순위를 정해 추진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고양시의 지난 여름 움직임은 이 같은 의견의 수렴 필요성에 본격적으로 '응답'한 경우로 풀이된다. 고양시 관계자는 '공청회의 새 틀'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데엔 다소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 관계자는 "고양시 힐링센터는 고양시 주민과 소통하는 작은 기구로, 여태까지 반대와 갈등이 많이 있었는데 이제는 합리적 자문을 하고 있다"며 공청회의 역할을 평가했다. 주민과 소통 공감이 중요하고 주민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내 자료를 통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충청남도에서는 10월 복지의 미래를 도민 참여와 협의로 결정한다는 취지로 실질적 공청회 모색에 시동을 걸었다.
◆프랑스식 독립 공청회 도우미로 공정성 개선 추진
특히 우리나라는 주무부처 공무원들이 공청회를 사실상 좌우하는 만큼 이런 권한을 내려놓고 제3의 기구에 공정하게 맡기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이 부분에서 토지수용법에 민의조사라는 절차를 둔 프랑스를 거론할 수 있다. 프랑스는 이 제도를 점차 활용해 다른 영역까지 확장하기에 이르렀다(1983년 프샤르드법 제정).
민의조사 절차는 제3자인 민의조사의원이 주민의 의견을 청취해 해당사업 실시에 대한 찬반의견을 기술하면, 이를 참고해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행정재판소장이 임명한 조사위원이 실시하며 수집된 의견을 보고서로 정리해 제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이유와 함께 제출한다.
한편 프랑스는 1992년 공개토론제도를 도입해, 민의조사 한계를 보완하고 있어 다른 나라에도 시사점이 크다는 지적이다.
공개토론전국위원회는 1995년 환경보호강화법 제정에 따라 윤곽이 나왔다. 환경부장관이 사무국장을 임명하고 민의조사 이전인 사업구상단계에서 토론을 실시하도록 규정했다. 이어 2002년에는 공개토론 전국위원회를 '독립법인화'해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 같은 프랑스식 제도는 한국에도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일명 '국가공론위원회' 설치 법안을 김동완 새누리당 의원이 제출함으로써 앞으로 제도화에 성공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같은 입법적 노력과 공청회의 실질적 역할 강화를 수용하려는 행정조직의 전향적 태도가 어우러질 경우 우리 공청회 문화는 한층 풍성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