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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이미지메이킹] 혈액형과 어느 12월의 '인간관계론'

이은주 이미지칼럼니스트 기자  2013.12.16 17: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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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아나운서 아카데미 수강생들. 아직 팔팔한 청춘의 시절을 보내고 있는 그들의 수다를 가만히 듣다보면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간간이 그들의 대화 속에서 애석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것은 지금의 청춘들에게서도 혈액형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온다는 사실이다. 소개팅을 했던 남자의 혈액형, 연예인들의 혈액형, 그리고 기르는 반려동물의 혈액형이 어떨 것 같다는 얘기까지. 2000년대를 강타했던 혈액형 신드롬은 2013년 마지막 달에도 여전히 그 위상을 당당히 떨치고 있었다. 

혈액형 성격학은 백인의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한 우생학이 그 출발이라고 한다. 유럽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A형과 0형의 인간은 우수하고, 아시아인들이 주로 많이 가지고 있는 B형의 인간은 열등하다고 말하기 위한 증거로써 만들어진 이론이었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저급한 사상의 이론이 일본으로 넘어오면서, 초점이 '종족의 우열'에서 '개체의 성격'으로 바뀌어졌다고 한다. 혈액형 성격학의 이론적 형태를 갖춘 사람은 후루카와 타케지라는 사람인데, 그가 '혈액형에 의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에서 혈액형별 성격을 진단한 시기가 1927년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렇듯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공론화되고 있던 혈액형 성격학은 2000년대 들어 그 세력을 확장하더니 점차 맹신자를 늘려나갔다.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정체불명의 혈액형 성격 자료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눈에 읽히고 또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전래동화처럼 출처가 명확하진 않지만 파급력만큼은 그 어떤 전래동화보다 빠르고 중독성이 강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다보면 유독 혈액형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친해져보려는 그 사람 나름대로의 방법이라 생각하고 넘어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혈액형과 연관 짓는 것이 아닌가. 상대는 친해지자는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그의 행동으로 인해 그는 나와 점점 이별을 해야 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꺼내는 가벼운 농담거리로서의 혈액형 성격학은 꽤나 괜찮은 얘깃거리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상대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잣대로 이용하는 것을 나는 지양하고 경계하자는 말을 하고 싶다.

생각에도 버릇이 들기 마련이다. 처음엔 반신반의로 그 자료들을 접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반복해서 접하다보면 어느새 뇌리에 강하게 인식되기 마련이다. 이 말인즉슨 사람을 A, B, O, AB의 네 가지 형틀에 끼어 맞춘 편협한 사고를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더욱이 사람을 겪어보기도 전에 미리 그 사람을 가늠하는 행위, 이를 건방지고 무례한 일이라 단언한다면 그것 역시 오만과 편견일까?

혈액형 성격 분석에 사람들이 이끌리는 이유, 아마도 불확실성이 만연한 우리네 인생사에서 확실성을 보장하는 몇 안 되는 콘텐츠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사람한테 받은 상처에 대해 우리의 자기보호본능이 발휘된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상처를 다시는 받지 않기 위해 상대를 분석하고 대비하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사회는 더욱 다변화할 것이고 또 그에 따라 복잡하게 얽히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그럴수록 단순화한 것들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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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성격학이 규정해놓은 4가지의 인간개론. 하지만 단순해져야 할 목록에 인간에 대한 항목은 절대 없음을 우린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은주 이미지컨설턴트 / KT·아시아나항공·미래에셋·애경백화점 등 기업 이미지컨설팅 / 서강대·중앙대·한양대 등 특강 / KBS '세상의 아침' 등 프로그램 강연 / 더브엔터테인먼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