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배 기자 기자 2013.12.11 12:36:32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몰락의 나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파악해보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두산그룹 3탄 후계구도에 대해 살펴본다.
두산그룹 본사. ⓒ 두산 |
당시 보고서는 "장남이라도 실력이 없으면 후계구도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국내기업의 가족경영승계 관행에 일침을 가했다.
현재 국내기업은 1960~1970년대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기업 경영자의 고령화로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다.
기업 총수가 경영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국내 기업문화의 특성상 안정적 지배구조 승계가 필수적이고 실제 대부분 국내기업은 직계가족 중심의 경영승계를 이어오고 있다.
◆공동소유・공동경영방침 '형제의 난'으로 휘청
국내 최고(最古) 대기업 두산그룹은 여타 대기업과 다른 경영방식으로 유명하다. 117년 전통을 자랑하는 동시에 위계질서가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고, 특히 창업 2세대 고 박두병 초대 회장은 유달리 결속을 강조했다.
통상 재벌들이 자녀 중 한 명에게 단일승계를 하거나 계열사별로 분할승계를 하는 것과 달리 6명의 아들(용곤·용오·용성·용현·용만·용욱)에게 두산그룹을 공동소유 및 경영하게 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다만, 박 초대회장의 6남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은 일찌감치 두산그룹과 별개의 사업을 운영해 두산그룹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고, 후계구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박 초대회장의 사후 유훈에 따라 '두산家' 5명의 아들들은 '공동소유, 공동경영' 원칙을 지켜 장남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첫 키를 잡았지만 선친의 뜻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박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잡은 지 10년이 넘어가도록 경영권을 내놓지 않았고, 이때부터 2남 故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은 내심 불만을 품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의 여파로 박 명예회장은 경영권에서 손을 뗐고, 1996년 故 박 전 회장은 고대하던 두산그룹 경영의 핵심에 올랐다. 그러나 박 전 회장은 외환위기에 그룹을 맡으면서 회장 지위에 오른 것을 기뻐할 틈도 없이 그룹 살리기에 매달렸다. 전형적 내수기업인 두산그룹을 중공업 바탕의 수출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이 바로 박 전 회장이다.
다만 박 전 회장 역시 회장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2005년 두산家는 회장직을 3남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넘기라고 박 전 회장에 요구했지만 그는 '침묵의 계율'을 어기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형제들의 비리를 검찰에 고발했다. 대한민국 재계에서 피 튀기는 '형제의 난'으로 기억되는 두산家 경영권 다툼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승직 창업주를 시작으로 현재 경영 일선에 있는 3~4세대 가계도. ⓒ 프라임경제 |
비리 고발로 형제들을 실추하고 자신의 업적을 내세워 일반 주주들로부터 지지를 얻으려는 것이 박 전 회장의 속내였지만 퇴출당한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다. 이후 박 전 회장은 성지건설을 인수해 재기를 기약했지만 실패했고, 지난 2009년 11월4일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업이미지 훼손은 물론 타 기업의 경영권 분쟁보다 훨씬 큰 상처를 남긴 두산家는 '형제의 난' 이후 창업 3세대의 경영체제가 다시 부활, 공동소유·공동경영 원칙을 지켜나가고 잇다.
지난해부터 5남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총수자리에 올랐고 3남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4남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에 이어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아직까지 두산그룹 경영 일선에 배치돼 있다.
◆4세대 경영권 승계 '박정원 vs 박진원' 빅매치?
현재 박용만 회장을 제외한 두산家 창업 3세대들이 고령인데다 박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겸하면서 4세대들의 역할과 경영권 승계시기에 대한 재계의 관심이 크다.
박 회장의 상공회의소 회장 겸직에 따라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두산건설 회장의 활동영역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고,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의 장남 박진원 두산 사장의 입지도 더욱 공고해지는 이유에서다.
박정원 회장은 지난해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두산 지주 부문 회장을 맡아 일찌감치 그룹 살림을 챙겨왔다. 특히, 두산家 4세대 가운데 유일한 두산 사내이사인 박정원 회장은 그룹 주요 경영현안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으며, 두산그룹 지분구조 핵심인 두산의 지분 6.40%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삼촌인 박용만 회장의 지분율 4.17%을 웃도는 것은 물론, 두산家 4세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박정원 회장의 동생인 박혜원 오리콤 매거진 사업 부문 전무와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각각 2.13%, 4.27%의 지분을 소유 중이다.
또 다른 4세대인 박진원 두산 사장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7월 두산은 지주사 사업 강화를 위해 두산산업차량과 엔셰이퍼의 인수 합병을 결정, 두산이 각 사업부분을 흡수하고 박진원 두산산업차량 대표를 지주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사촌형제지간인 두 사람이 각각 두산그룹 지주사인 두산 회장과 사장을 나란히 맡고 그룹 전반을 보살피고 있는 것.
두산그룹 3~4세대가 보유하고 있는 지주사 지분율. ⓒ 프라임경제 |
무엇보다 박 사장의 경우 그룹 안팎에서 경영능력을 인정받고 있어 그 행보에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실제 박 사장이 두산산업차량을 이끌기 전 비핵심사업으로 분류돼 그룹 차원에서 매각을 추진했지만 박 사장이 대표를 맡으면서 재무구조와 사업성이 개선되면서 지주사에서 편입을 결정했다.
3.64%인 박 사장의 두산 지분율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을 제외한 두산家 4세 중 세 번째로 높다. 그의 동생 박석원 두산엔진 상무의 지분율은 2.98%다.
그런가 하면 박 초대회장의 4남 박용현 연강재단이사장의 장남 박태원 두산건설 부사장은 2.69%의 두산 지분을 보유, 각각 1.99%의 지분을 가진 두 동생(박형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박인원 두산중공업 상무)을 앞섰다.
박정원 회장이 지분율 우위를 점하며, 아버지로부터 가장 많은 자산을 물려받아 경영권 승계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했지만 두산그룹 특유의 공동경영 관행에 따라 창업 4세대 사촌형제들 사이에서도 이 원칙이 지켜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두산 전체 지분율을 살펴봤을 때 박용곤 명예회장 일가가 확실한 우위를 보이는 상황도 아니다. 4세대 중 박정원 회장의 지분율이 가장 높지만 3세대에서 박용곤 명예회장의 지분이 가장 낮고, 다른 사촌형제들 역시 비교적 고르게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구조상으로는 4세대들이 두산그룹을 이미 장악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추정도 할 수 있지만 두산그룹의 경영방식이 지켜질지, 다른 방법을 택할지, 얼마나 빠른 속도로 4세대가 경영 전면에 나설지는 더 두고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