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도하개발어젠다(DDA) 중 조기수확 대상에 대한 협상이 타결돼 눈길을 끈다. 당초 DDA의 전향적인 내용에 비해서는 상당히 축소된 출발이나, 세계무역기구(WTO) 탄생 이후 실질적 성과가 크게 나오지 않았던 자유무역 이슈에 불이 붙은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가 통관 자율화로 '수출에 날개를 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경상수지 흑자 뉴스도 겹쳐 있다. 최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630억달러로 최고치를 경신하며 경상수지 흑자대국인 일본을 처음으로 따라잡을 전망이다.
세계 11위 규모의 경제대국인 한국을 둘러싼 외형적 여건은 이렇게 나쁘지 않다. 다만 이 같은 소식은 별달리 큰 호재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원화 절상 압박 부메랑 등도 그렇지만, 크게 보면 막상 '선진국형 경제'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가 다시 꿈틀대는 상황에서 우리만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 더 급하다는 지적이다.
◆일본 양적완화 유지 가능성 점증, 현대證 "2차 엔저 공습 가능"
로이터는 지난 7일 일본이 양적완화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에 대해 보도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정책 안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는 내용을 전하면서, 현재 시행 중인 양적 완화를 종료하는 작업이 2006년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는 점을 함께 언급한 것.
이에 앞서 이미 이상재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2차 엔저 공습' 여부에 대한 보고서를 내고 그 여파에 대해 예측한 바 있다. 이 연구위원은 "내년 4월 소비세 인상 이후 일본 경제의 향방에 달렸다"고 엔화 가치의 향배를 지적했다. 아울러 "경기 침체로 추가 양적완화가 시행된다면 내년 연말 달러·엔 환율이 110∼120엔대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내년 달러·엔 환율이 105∼110엔 수준의 온건한 상승세를 보인다면 한국 수출이 회복될 가능성이 있겠지만 급격한 상승세가 전개되면 수출 회복에 의한 경제 회복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 연구위원의 이 같은 예측은 독단적인 것은 아니다. 국제금융센터의 자료를 빌리면 현재 102∼103엔에 머물러 있는 엔·달러 환율에 대한 주요 외국계 투자은행(IB) 9개사의 1년 후 평균 전망치는 110엔선이다. 엔저는 내년에도 계속된다는 얘기다. 세계 곳곳에서 일본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에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할 필요성이 높지만, 환율을 관리하는 게 과거만큼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잔챙이로 일군 경상수지 흑자, 지적재산권 포함 고급 어장서 고전
미국이나 일본의 경제 이슈와 이로 인한 환율 변화 가능성에 일희일비해도 외환시장에서 이를 콘트롤할 수 있다는 가능성(효과)이 크지 않다면, 경제 펀더멘털 자체를 고급화하는 쪽으로 시선을 둬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근래 우리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늘어난 내막을 들여다 보면 이는 상품수지 흑자가 꾸준히 증가한 덕분에 나온 성적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수출이 큰 몫을 감당하면서 우리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DDA의 조기수확대상 등 일부 내용이 협상 타결돼 세계경제가 무한경쟁에 재시동을 거는 게 아니냐는 풀이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 과거의 수출 패턴을 업그레이드하지 못하면 모래성 같은 경제지표 호조만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컨테이너 하역 중인 광양항. ⓒ 프라임경제 |
1~10월 중 서비스수지 누적흑자는 62억6000만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는 20.1% 증가했다. 하디만 흑자를 낸 부문은 운송수지 68억7000억달러, 건설수지 124억7000만달러뿐이다.
여행수지가 62억2000만달러 적자인 것은 향후 절약을 하는 방향으로 유도하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리스크는 지적재산권사용료수지(-37억8000만달)러, 사업서비스수지(-49억8000달러) 등이다. 경상수지 흑자의 대부분이 상품수지에 국한돼 있는 구조를 바꿔 먹거리 창출을 서비스수지와 소득수지 등으로 다변화 내지 분산시킬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기업 해외법인의 활약 가능성을 더 독려하고 지적재산권 관련 역량을 강화해 수지 마이너스를 연착륙시켜야 하는데,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해 콘트롤타워 역할의 중요성이 더 절실하다.
◆무역 이슈 선점 못해…글로벌스탠다드 만들 '연구능력' 관건
이번에 DDA 조기수확 협상 타결에 당장의 수출 청신호와 경제적 파급효과 기대감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상황도 문제다. WTO에서 농산물과 서비스, 지식재산권까지 포괄하는 '무역 자유화'를 추구했지만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첨예한 대립으로 줄곧 난항을 겪다 이제 막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같은 성과를 낸 꼴이다.
더욱이 이번 협상이 본격적으로 서비스 등의 자유화에 속도를 높이는 결과를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 낸다고 해도 우리로서는 이로울 게 많지 않다. 지적재산권 등 서비스수지에서 강점을 갖지 못하는 우리의 상황은 향후 위태로운 경제 분위기에서 겉돌게 될 모습을 여실히 보여줄 게 뻔하다.
오히려 지금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비롯한 지역별 합종연횡에서 밀려나는 듯한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해결하는 게 더 급하다는 지적이다. 당분간은 TPP 등 지역 내 협력과 여러 나라와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각개격파로 맺는 현재 방식을 고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FTA 추진 과정에서 드러난 전문가나 문제 감지 능력의 한계(ISD, 투자자 국가소송에 대한 안일한 인식) 같은 점을 보충할 전문인력 양성도 급하다. FTA 등 현재의 협력망 강화 방법들을 구사하면서 지적재산권 등 한국경제의 아이템을 고급화하려는 노력의 청사진을 그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나 우리는 경제 규모가 크지 않아 각종 규제성 무역장벽을 선진국이 독점하는 데 속수무책으로 밀릴 여지가 높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최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통과를 둘러싸고 우리 기업들이 유럽식 기준(REACH)에 맞춰달라고 강하게 반발한 점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드는 일이 우리 위치의 국가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 기업들은 REACH 기준을 준수해야 유럽연합(EU)으로 수출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더 강한 국내 규제까지 받게 되면 경영이 힘들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 부수적으로는 우리가 외국 규제의 흐름보다 강한 장벽을 조성하면 글로벌 분쟁 등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조바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박지현 영산대 법대 교수는 '국제경제법 연구 제7권(2009) 1호'에 기고한 'EU 화학물질정책과 한-EU FTA' 논문에서 규제의 정당성이 있고, 이와 관련한 다른 제약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자유롭게 환경규제를 만들 수 있다고 봤다.
REACH만 해도 일반GATT 제3조와 WTO/TBT 협정 제2조 제1항에 저촉되는 '불필요한 장애의 초래'나 '필요 이상의 무역 규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논란에 부딪혔으나, 초기에 빈틈을 잘 공략하면서 존재 의의를 인정받아 지금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았다는 설명이다. 이제는 유럽국가들이 이를 은연 중에 유럽 수출의 가이드라인은 물론 다른 경제권을 압박하는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시장이 크지 않은 우리로서는 한국에 대한 수출 문제로 우리의 규제에 다른 국가들이 신경을 쓸 가능성을 무기화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우리 기업이 외국 규제에 맞추자는 주장을 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서가 아니라,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없는 영역의 규제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선도적 두뇌국가로 인정받는 경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환경규제 등 '새로운 형태의 무역표준 마련'에 발언권을 얻을 여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