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현재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는 입시제도 혼란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소설이 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나치정권에 대항에 저항하다 장열하게 숨져간 독일 대학생들의 짧은 생애를 다룬 실화소설의 제목이다. 민주주의와 역사발전에 바친 이들의 장렬한 죽음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다.
최근 대입 혼란을 초래한 선택형 수능제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입시제도'였음에도 정부의 폭력적 강행으로, 피할 수 있었던 문제를 확대시킨 대표적 부실정책이다. 그리고 그 파행과 부작용은 현재 진행형이며 내년 2월말 입시 종료까지 65만 입시생과 학부모들의 가슴을 도려낼 것이다.
지난 2011년 도입 예고한 선택형 수능제란 수능시험을 난이도별로 이원화,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이다. 굳이 어려운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는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의도가 컸다. 우리에게 생소한 이 제도는 미국의 수능격인 SAT 이원화제도를 본뜬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1년 도입발표 직후 입시당사자인 대학과, 학생, 학부모 모두 반대했다. 애초 취지를 벗어나 학생들의 학습부담이 크고, 학교 현장의 혼란만 부추길 것이며 사교육비 절감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직 찬성한 측은 선택형 연구프로젝트 등 일거리를 받아낸 관련연구기관과 교육부, 그리고 제도가 복잡해야만 수익을 높일 수 있기에 남몰래 쾌재를 부른 사설교육업체였다. 선택수능제 도입시점에 사설업체의 로비가 작용했다는 설도 파다했다.
수능이 끝난 지금 그 우려는 한 치의 어김없이 현실화됐다. 학생들은 어떻게 대학을 지원해야할지, 학교는 어떻게 진학을 지도해야할지, 대학은 어떻게 뽑아야할지 아무도 그 해답을 모르는 난해한 퍼즐이 됐다.
애초부터 수능 이원화 자체가 넌센스란 것이 전문가들이 지적이었다. 미국과 우리는 교육조건과 입시 현실이 다르다. 미국처럼 일부 상위 사립 아이비리그와 공립 주립대 등으로 이원화돼 있다면 의미가 있지만 우리처럼 단순화된 체계에서는 분리, 이원화가 오히려 복잡성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SAT II는 상위 10%의 학생만이 응시하며, 대부분의 대학은 성적을 요구하지 않는 특별한 영역으로 하버드, 예일 같은 명문대학이나 의예과 같은 특수 프로그램에서 요구한다.
올 연초부터 부작용을 감지한 당사자들의 시행 유보 요구는 높게 일었다. 지난 1월 경희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한국외국어대·한양대 등 9개 대학 입학처장들은 A·B형 선택형 수능시험 유보를 당국에 건의했다.
주요대학의 공식기구들이 함께 성명서를 내기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고교 학교당국과 학부모회들도 시행유보를 건의했지만 정부의 강행의지로 무산됐다. 수업이나 모의평가 등에서도 혼란은 감지됐다. 교사들의 수준별수업의 어려움은 물론 모의시험에서 영역별로 다른 시험을 원한 학생들이 해당시험을 보지 못하거나 교사들도 속수무책 방치하는 부작용이 속출했다.
주체별로는 우선 고등학교는 A·B형 각각 다른 지도안을 마련해야하는 이중 부담, 진로지도 어려움, 행정적 부담이 가중됐다. 대학도 수시 논술전형의 최저등급기준 책정의 어려움, 각 학과별 지원 기준마련은 물론 A·B형 교차지원 시 가중치 기준설정 문제와 행정 부담이 더욱 늘었다. 학생들은 A·B형 선택 부담과 함께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그 자체가 문제였다.
그래서 공부부담이 더 늘더라도 전형이 간단한 논술이 차라리 간단하다는 결론에 올 중반기이후 중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논술바람이 일기도 했다.
수능직후 수시전형에서 곧바로 문제가 터져 나왔다. 논술전형에서 대학들이 수시최저등급 조정에 실패해 특목고 등 최상위권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논술성적 외 최저기준으로 설정되는 수능등급을 올해에는 국어와 영어가 이원화되는 것을 감안해 대학들이 최소한 2등급 정도는 낮춰야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은 1등급정도를 낮추는데 그쳐 난이도가 높은 B형 시험을 보는 학생들은 우선선발기준은 물론 일반선발기준도 맞추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한 것이다. 지난해와 동일한 상황이었다면 최저기준을 충족할 능력자가 배제된 셈이다.
이에 따라 수시 논술전형의 실질 경쟁률이 사상최저수준으로 낮아지고 당락이 논술능력보다는 수능에 의해 좌우되는 기이한 현상이 빚어질 전망이다. 예년의 인문계 학과 우선선발 경쟁률이 최저 3대1~최고 10대1 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자칫 미달학과가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논술성적보다는 수능성적이 수시당락을 좌우한다면 과고, 외고, 자사고등 특목고생이 유리하게 된다. "줄세우기 수능은 안된다"던 교육당국이 수능 이원화로 '더욱 정밀한 줄세우기'를 실현한 셈이 됐다. 관련통계에 따르면 언수 외 모의평가 1등급 비율이 외고의 경우 27%을 넘어서나 일반계고는 1.8%선에 그치고 있다.
현행 우선선발제도가 지나치게 높은 등급기준으로 특목고 우대책이란 비판이 비등했다. 그런데 이번 선택형 수능으로 그 강도가 더 높아진 것이다. 벌써부터 고3 교실에서는 재수의향을 비친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정시전형이다. 수능 선발기준이 크게 달라져 입시 대혼란이 예상된다. 성적비교, 정원별 경쟁률, 대학별 입시성적 등 모두 새롭게 짜야하나 A·B형의 난이도 비교수준, 가중치 등이 오리무중이다. 대학별로 등급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대학도 학생들의 학생이동을 가늠하지 못해 행정적으로 엄청난 어려움이 예상된다.
더구나 교차지원이 허용되는 일부 학과나 중위권대학은 객관적 평가자료가 전무한 가운데 A·B 점수의 가중치를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정시는 '점수'가 아니라 '배짱'이라는 말이 나돈다.
백년대계라는 교육, 대학입시가 '능력'보다는 '운수'에 의해 좌우되는 ‘로또 판’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가장 호황이 예상되는 곳은 사설교육업체들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학생들의 심정을 이용해 돈 벌기가 가장 좋게 된 것이다. 벌써부터 입시 점술가(?)들의 활약이 점쳐진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입시제도, 선택형 수능제도는 국민들의 염원을 철저히 외면한 제도적 폭력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예견된 결론, 막을 수 있었던 피해였기에 아쉬움과 분노는 더욱 높다. 파국이 뻔히 눈앞이 보이는데도 정책 일관성이란 명분 아래 강행한 교육당국의 태도는 흡사 죽음의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양떼무리을 연상케 한다.
MB정권의 최대 실패작이라는 4대강 개발사업은 그러나 돈줄의 흐름 따라 건설사 등 일부 이익 보는 곳(?)도 있는 제로섬 게임이라는 위안이라도 가능하다. 건설사가 번 돈이 돌고 돌아 유통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택형 수능제는 65만 수험생과 그 가족, 입시관련 모든 이에게 피해만을 주고 공중으로 증발되는 정책이다.
오직혜택을 본 곳은 이를 도입하면서 상당한 프로젝트를 따낸 교육과정평가원 등 일부 정책당국과 그 주변부 기관, 사설 입시업체들이다. 결국 65만 수험생이 그들의 알량한 제도 연구를 위해 3년간 봉사해온 꼴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는 교육제도의 혁신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우선 정책실명제의 실제적 도입과 실천이 선행돼야한다. 시행되거나 도입되는 정책의 입안자를 대외적으로 널리 알려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실명대상은 입안자 및 최종결재자는 물론 외부인을 포함한 사업에 참여한 주요인사들 모두를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야 선택형 수능과 같은 어설픈 정책이 죄 없는 학생들을 울리는 폐해가 사라진다.
또한 내년부터 수능제도를 전면 환원해야 한다. 올 중반 교육부는 내년부터 영어과목은 종래대로 환원하고 국어는 당분간 선택제로 두기로 했다. 그러나 국어과목이 등급제로 존치돼야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국어는 문이과생을 막론하고 태어날 때 부터 사용해온 언어이다. 만약 학생들의 능력평가가 그 이유라면 차라리 외국어인 영어를 등급제로 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은가. 국어를 선택제로 그대로 둔다면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혼란이 계속될 것이다.
또 하나 근본적 교육제도개혁으로, 수월성을 명분으로 내세운 특목고제도의 폐지다. 올해 선택형수능제에서도 입증된 것처럼 과고, 외고, 자사고 등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받는 특목고는 설립취지를 벗어나 스카이 등 이른바 '상위권 대학 전문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일반계 고등학교에는 정부 규제가 존치되는 가운데 특목고는 학생선발권, 시설 및 자금 지원, 학비 자율화 등 각종 지원을 등에 업고 무장 해제된 일반계 고등학교를 상대로 우월한 경쟁을 벌여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강자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약자의 힘을 빼앗는 이른바 '형식적 기회균등의 원칙'마저 저버리는 정책 오류이다. 최소한 동일한 조건하에 능력으로 경쟁하는 것이 자유방임주의 원칙에도 걸맞지 않은가.
최근 특목고의 횡포에 과거 60~70년대의 1류, 2류, 3류 고등학교 시대를 그리워(?)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과거 고등학교의 부류별 분류는 모두 동일한 조건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일군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 시대 모든 1류 고등학교가 재정지원이 사립에 비해 열악한 공립고등학교인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일부 교육 전문가들은 '다수 일반계 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신의 세금으로 자기자식들 경쟁상대에게 지원을 퍼부어주는 이적행위'라며 현행 제도를 비꼰다.
아무튼 선택형 수능제도가 시행되는 한 내년도에서 입시혼란은 일정부분 재현될 전망이다. 따라서 교육당국은 이번 입시를 거울삼아, 정책의 일관성 운운하기 이전에 현실을 제대로 읽고 국민들의 바람을 담은 정책을 실시해주기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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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제도 변화에 따른 수험생들의 고통은 기성세대가 초래한 결과이지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저털 '말' 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