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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들어는 봤나?" 강간신화 깨드리기

이보배 기자 기자  2013.12.03 10: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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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강간신화'. 다소 생소한 용어에 놀라신 분들이 많으실텐데요. 저도 처음 이 용어를 접하고는 무슨 말인지 의아했습니다. 강간신화란 강간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과 같은 잘못된 신념을 말합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쉽게 성인물을 접할 수 있는 때에는 미디어 매체에 묘사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행동을 통해 강간신화가 강화되고 지속될 수 있습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성범죄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 성인 남성과 청소년들까지도 이런 강간신화를 믿고 있다는 것이지요.

보편화된 강간신화 중 하나는 바로 "여성의 '아니오'는 '예'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범죄자들은 피해 여성이 자신을 유혹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강간신화는 피해여성이 신체적 상해를 입은 경우에도 피해여성이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믿게 하지요. '여성들은 강간당하기를 바란다?'는 말도 안되는 망상은 이제 그만 해야 겠지요.

두번째 강간신화는 "정숙한 여자는 강간당하지 않는다"입니다. 강간 피해여성을 비난하는 것은 남성들의 성범죄를 고무시키고, 성범죄자들이 강간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좋은 탈출구 역할을 합니다.

"강간의 가해자는 안면이 없는 남성이다?" 아닙니다. 대부분은 안면이 있는 자에 의해 성폭력이 발생합니다. 여성가족부의 2010년 성폭력 실태조사 통계자료에 따르면 안면이 있는 자에 의한 성범죄가 무려 81%입니다. 여기에는 동네사람이나 그냥 아는 사람, 친구, 선후배, 애인, 전배우자, 부모, 형제자매, 친척 등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범죄가 단순히 제어되지 않는 성적인 욕망과 충동에 의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요. 하지만 오직 순간적인 성적 충동에 의한 강간은 흔하지 않습니다. 성적인 충동을 해소하기 위함과 성적인 욕구는 성범죄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빈번하게 일어나는 유형의 강간은 폭력적인 행동과 함께 발생하는데 이런 행동을 나타내는 동기는 가해자마다 다릅니다. 강간의 유형은 크게 5가지로 나뉘는데요. △남성성 확인형 △기회주의형 △권력형 △가학형 △분노치환형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남성성 확인형은 강간범들의 가장 흔한 유형으로, 여성에게 자신이 남성임을 과시하기 위해 강간하는 자들입니다. 권력형은 성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성행위를 하는 자들로 이들은 클럽이나 술집 같은 곳에서 피해자를 물색한 후 좋은 매너로 환심을 산 후 범행을 저지른다고 합니다. '데이트 강간'의 흔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노치환형의 성범죄자들은 피해자로 자신이 증오하는 사람과 비슷한 외모나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선택해 강간합니다. 가학형은 성범죄 중에서 가장 드물고, 가장 난폭한 유형인데요. 가학적인 공격행동 자체에 흥분을 일으켜 피해자가 고통 받는 모습에서 쾌락과 만족감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기회주의형 가해자들은 처음부터 성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범죄, 예를 들어 강도를 저지르는 중간에 생긴 성적 충동으로 성범죄를 저지릅니다.

강간신화를 믿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신념입니다. 강간신화를 수용하는 순간, 가해자는 피해자의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실제보다 미미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고, 강간 자체의 범죄성조차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잔인한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실제 지난 2004년 전국을 발칵 뒤집었던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 이후 발표된 한 설문조사 결과 밀양시민의 64%가 밀양 성폭행 사건의 책임은 '여자에게 있다'고 답변했습니다. 평소 가정교율이 올바르지 않거나 건전하지 못한 여자의 행실이 성폭행의 구실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41명의 가해 청소년들도 "같이 좋아서 성관계 한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다면 왜 처음부터 신고하지 않았나?"라는 태도를 보였다는 군요. 전형적인 '강간신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과 무관심이 피해자들을 두번 죽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