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소모전. 적의 각종 무기 시스템이나 병력과 대치, 충돌하지 않고 보급·병참을 모두 소진시키거나 사회 경제망을 잠식해 스스로 붕괴하도록 유도하는 것. 오늘날 환율 문제로 한국이 특히 미국이나 일본 등 주요국과의 대결에서 이 같은 소모전 형식의 공세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 같은 공세에 경쟁력을 이미 우려될 수준으로 좀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수 부양 중심의 경제 운용을 강조하는 등 원화 절상을 용인하는 듯한 견해를 내놓은 점이 우려를 사고 있다. 이런 어젠다는 실효환율과 실질실효환율 등 문제로 이미 우리가 보이지 않게 에너지와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가 있어 보인다.
◆부총리 내수 발언, 펀더멘털 관련 큰 구상? 물러설 곳 만들기?
현 부총리는 25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내년 경제는 내수 부양 중심으로 운영될 것이란 점을 확인했다. 현 부총리는 또 올해까지 정부의 정책은 회복이 더딘 내수 등으로 수출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면서 내년에는 내수의 기여도가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원래는 과도한 수출 위주 정책에서 탈피해 내수 부양을 통한 경제력 강화나 국가경제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은 큰 틀에서 나쁠 게 없는, 오히려 긍정적인 그랜드 플랜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 즉 테이퍼링 직면과 일본의 아베노믹스 등 글로벌 변동성 심화 구간에서 내수 부양과 경상흑자 축소의 당위성 등을 언급하는 것은 퇴로를 열어놓으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다.
또 이 같은 정책으로 흘러가면서 환율 관련 정책의 측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원화의 절상은 용인할 수 있다는 선택적 방임을 사실상 할 것으로 해석돼 큰 문제라는 지적이 가능하다. 우리의 화폐를 절상하는 것은 수입물가 하락 등을 통해 가계 등 경제주체의 소비 여력을 높이는 만큼 내수 활성화에 우호적이나, 현재 우리 경제는 틀이 망가져 이 같은 효과가 제대로 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면 수출 관련 부작용만 예측된다는 것이다.
◆실효환율과 실질실효환율, 한국에게서 미소 거둬
환율전쟁 논란 속에 원화의 절상 압력을 받는 우리 경제가 신음 중이다. 이미 실효환율과 실질실효환율을 살피면 더 이상 밀리기 어렵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 프라임경제 |
엔화 대비 원화 가치가 높아지면서 국내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 약화에 따른 수출 타격이 우려된다.
실질실효환율(주요 교역국의 물가를 감안한 실질환율을 교역 가중치에 따라 가중평균한 수치로 구매력 평가설에 의한 평가)도 무사하지 못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0월24일 '최근 원·달러 환율 급락의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올해 9월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실질실효환율지수가 한국은 111.4%, 미국은 101.7로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장기균형 대비 9.5% 고평가돼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아베노믹스를 펴고 있는 일본과의 문제는 어떨까? 현대경제연구원의 10월27일 '아베노믹스, 일본경제 살리고 있다' 보고서는 우리 경제는 아베 내각의 정책으로 다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했다. 무엇보다 일본 엔화의 실질실효환율과 대내외가격차가 하락해 한국의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지적이다.
◆환율전쟁식 공세나 압력발언에 에둘러 비판만 가능?
우리의 외관상 경제와 수출 그림은 얼핏 괜찮아 보인다.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엔저 타격도 직접적이지는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일 수출은 올 1월부터 9월까지 누적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1.1% 줄어든 256억3000만달러에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과 실효환율이나 실질실효환율 내막을 함께 보면 외관과 괴리가 불가피해 보인다. 엔화의 가치 하락으로 일본 기업들의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나면서 주식시장에서 일본 자금 유출이 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도 일각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의 수출산업 여력(대일 수출경쟁력)이 부분적이나마 약화된 것으로 파악됐고 이 산업경쟁력 약화가 추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 끌려가는 국면이 고착될 수 있다는 게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노믹스가 지속 내지 가속화된다면 어떨까? 일본은 내년에 '소비세 인상'이란 불안한 '빅뱅'을 맞이한다. 과거 소비세 인상에 따라 나락으로 떨어졌던 경험이 있어 이를 상쇄하고자 추가적인 양적·질적 완화가 있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 엔저에,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산업경쟁력 강화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우려감이 깊어지는 것도 이때문이다. 기업들은 경쟁력을 강화(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대규모 복합형 산업의 수출 촉진)할 길을 찾아 분주하게 노력 중이나 쉽지 않아 보인다.
종종 실질실효환율을 기준으로 국제수지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원화가치를 현재보다 훨씬 빨리 절하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수출계를 중심으로 그래서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논의는 현재 수준에서는 외국의 원화 절상론을 막기도 버겁다. 실효환율과 실질실효환율상으로 우리가 내부출혈을 이미 겪고 있음에도 그렇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4일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 뒤 기자들에게 "실질실효환율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실질실효환율과 시장환율간에) 괴리가 없다고 본다"고 말해 미 당국의 원화 절상론을 에둘러 비판했다.
하지만 우회적인 비판과 부총리의 내수론 같은 태도로는 환율전쟁 사정을 버티기 어렵다는 문제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