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일선에서 대출을 주려고 해도 마지막 단계에서 심사역이 고개를 가로저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만큼 심사역의 역할은 막대하다. 하나은행에서 2010년 20대 여성 심사역이 나와 화제를 모은 적도 있지만 아직까지 심사역의 '중후한' 이미지가 깨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더욱이 불경기가 고착되면서 심사역의 할 일은 더욱 늘고 있다. 기업여신의 전문성을 통해 부실대출 자체를 예방할 필요가 높을 뿐만 아니라 가계대출의 관리면에서도 심사의 기능과 지식이 요긴하게 쓰인다는 점에 은행권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는 인원 심사역으로 이동, 활용도와 전문성 높이기 초점
일선 창구 줄이기에서 발생하는 인원을 심사역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해 온 우리은행의 구상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신 심사와 여신 관리 강화를 위해 전문 심사역 제도를 도입하고, 여신 심사역의 보직 이동을 최소화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TF에서 검토 중이다.
부실여신을 털고 갈 필요성이 높은 가운데 심사기능 강화에 주목하는 은행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심사역의 비중을 늘리고 업무에 힘을 실어주는 개혁이 곳곳에서 추진 중이다. ⓒ 프라임경제 |
이 같은 구상은 현재 영업 전반에 수술을 가하려는 구상에서 더 필요성이 높다. 우리은행은 지점 자체적으로 마케팅 부서를 신설해 각 지역 특색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은행 지점으로 내방하는 고객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데다 공단과 베드타운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이처럼 드라이브를 걸다 보면 때때로 나가지 말아야 할 대출을 영업해 올 위험성도 그만큼 커진다고 할 수 있다. 심사와 영업(마케팅) 구조 둘을 모두 고침으로써 서로 윈윈하는 필터링과 마케팅의 상생을 도모하는 셈이다.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심사역 인력의 강화로 기업여신에 한층 전문성을 쌓는다는 방침이다. 국민은행은 지점의 기업금융전담역(RM)과 본부의 여신 심사역, 감리역 등 기업 여신 업무와 관려된 유사 직무군에 대한 인력 풀을 보다 명확히 하고 그 안에서 이들의 경력관리를 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민병덕 전 행장 시절부터 이미 심사역의 중요성에 높은 관심을 기울여 온 국민은행은 이건호 행장 체제에서 안전성 관리에 심사를 앞세우는 한층 공격적인 운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없던 먹거리 만드는 '창조경제' 역할도 눈길
신한은행의 심사역 강화 구상의 경우는 없던 먹거리를 발굴하는 기능도 맡게 된다. 특히 그간 은행계에서 전인미답의 영역으로 오래 남아있었던 기술 관련 심사까지 들여다 볼 인력을 키운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신한은행은 기술력 우수기업 지원을 위한 중장기 계획으로 △기술평가 및 심사 전문성 확보 △대내외 협력 강화 △새로운 영업기회 발굴과 리스크 관리의 균형 이라는 3가지의 전략적 원칙을 정하고 오는 2016년까지 3단계에 걸쳐 기술금융 활성화를 진행할 계획이다.
금융그룹 계열사 저축은행과 손잡고 상품을 개발하는 데 은행계 심사역의 눈이 중요한 역할을 해 주는 사례도 나왔다.
KB저축은행은 KB착한대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기존 신용평가시스템을 개선했다. 국민은행 전문 심사역들이 저축은행 기존 심사역들과 함께 저신용층 고객 대상 별도의 평가시스템을 만들고, 리스크 관리를 위한 사후관리시스템도 마련했다.
◆과거에도 종종 강조됐지만 전체적인 인사운영 틀 안 바뀌면…
이 같은 상황에서 전문성 강화를 위해 인력풀의 효율적 관리와 다른 직역으로의 잦은 이동을 방지하는 등 당근 마련도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우리 은행계가 일정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는 미국식 은행업보다는 전분야의 제너럴리스트로 돌리는 것에 익숙한 일본식 은행업 구조에 아직 치중해 있는 상황에서 효율성이 없는 선언으로 그간 그쳐온 감이 있다. 이번에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심사역의 처우 개선이 인사 체계 전반을 바꾸는 촉매가 될지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