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주)코오롱 구미공장이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공장 곳곳에서는 원성이 커지고 있다. “대기업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측의 노동자에 대한 인격적 유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하소연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주)코오롱 구미공장에서 회사측이 노동조합의 임원선거 종료 뒤 ‘준비된 위원장’을 당선시키기 위해 전 부서에 걸쳐, 장단기적으로 노동조합 와해 공작을 시행했던 사실이 자세히 공개된 ‘Re-E’라는 제목의 문건이 폭로됐다. 그동안 노동계는 의혹만을 제기해왔는데 사실로 밝혀지자 충격에 휩싸인 분위기다.
이 문건에 따르면, (주)코오롱은 조합원을 3등급인 White(확실자) Gray(의심자) Black(반대자)으로 분류해 의심자로 분류된 조합원에 대해서는 회유, 협박, 설득 등의 공작을 진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대자들은 책임담당자를 지정해 ‘밀착감시’를 하면서 시정지시, 인사조치 등으로 압박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재벌기업’이라는 거대권력을 이용, 조합원들의 인간적 자존심을 비틀고 흔들었던 것이다.
이는 북한이 과거 주민들에 대해 ‘성분’이라는 일종의 신분제도를 만들어 반혁명분자를 감시 색출하고 전 주민을 개조, 개화시키는 과정을 반복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북한은 성분제도를 통해 주민들의 정치성향을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통제했는데 결국 주민들로 하여금 상층계급으로의 이동을 위한 ‘충성’과 ‘복종’을 유도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주)코오롱에서 회사를 위해 평생을 근무하다 어느날 갑자기 반대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은 스스로가 북한의 반혁명분자와 마찬가지인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불안에 빠졌을 것이다. 노동조합의 활동을 했다고 하지만, 블랙리스트라는 사실을 누가 좋아라할 것인가.
이 때문에 사측으로부터 ‘해고’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White’쪽으로의 신분상승(?)을 위해 ‘선후배의 정서와 동향을 파악하고 보고하는’ 피나는 노력을 했을 직원들도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은 문건을 통해 충분히 추측이 가능하다.
기업이 조합원들의 성분을 조사하고, 성분에 따라 분류하는 ‘계급정책’을 실시하는 것. 도대체 어떤 근거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능한 것일까?
(주)코오롱 구미공장에는 현재 “언젠가 진실은 밝혀 질 것”이라며 한발 뒤로 물러선 조합원들도 있지만, “죽음을 바라보며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과격한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어쨌든 노조 위원장 선거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장본인이 당초 사측의 부인과 달리, 누구인지는 문건을 통해 자세히 밝혀졌다.
(주)코오롱 구미공장은 지난 7월 노조 위원장 선거 직후부터 노사간의 충돌로 인해 을씨년스런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회사측이 고용한 용역경비원들로 인해 구미공장이 전쟁터인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앞장서는 공장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한 조합원은 “사측이 노동조합의 물품에 대한 반출증을 요구하고 용역경비원의 물리적힘을 동원해 노조 사무실 앞 현수막을 탈취하는 등 노동조합의 일상적 활동을 감시사찰하면서 인권유린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조합원들은 노동부, 시청, 경찰, 검찰 등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누구 하나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서질 않고 있다.
다만 정리해고와 관련해 지난 6월 구미지방노동위원회는 회사측의 손을 들어 줬고 노조는 이에 불복해 중노위에 제소해 노사 양측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코오롱그룹은 적자 발생의 요인이 코오롱 구미공장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조합원들에 대한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정리해고 과정에 ‘노조 전현직 간부 78명만’ 쏙 뽑아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회사측의 주장에 신뢰가 가질 않게 하는 대목이다.
경영정상화가 정말 필요하다면 노조 전현직 간부들만 정리해고할 것이 아니라, 부실경영, 자금횡령 등으로 그룹을 위기에 봉착하게 만든 경영진부터 정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아가 코오롱그룹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주)코오롱 구미공장이 정말 필요없는 천덕꾸러기라면 이번 기회에 구미공장의 문을 아예 닫는게 낫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사가 함께 더욱 노력하는 방안을 찾는게 당연하다. 왜 노조의 희생만 강요하는가?
노동계는 올초부터 코오롱그룹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직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아니라 부실계열사의 경영실패를 원인으로 지목하며 경영진의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언급은 없고 그러기는커녕 노조에 대한 탄압만 되풀이하고 있다.
(주)코오롱의 경영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레닌을 중심으로 한 급진 사회주의자들은 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을 이용해 음모적으로 ‘체제전복’을 시도했는데 혹시 코오롱도 조합원들을 급진 사회주의자로 규정, 이들이 회사 전복이라는 끔찍한 쿠테타라도 일으킬까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Re-E’라는 사측의 문건을 꼼꼼하게 읽은 기자의 느낌이다.
사측의 탄압으로 지금도 노조를 탈퇴하고 회사를 떠나려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