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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 빛 발하는 CEO 능력…현대차그룹 선택은?

역사관 확립 바탕 국가·기업자부심 무장…국내 일감 경쟁입찰 통해 외부 공개

노병우 기자 기자  2013.11.15 10: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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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위기(危機)'라는 단어는 한자인 '위험(危險)'과 '기회(機會)'의 합성어다. 이는 기업에 있어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발생한 위기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며, 무엇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최고경영자(CEO)의 위기관리능력이 필요하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이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내수점유율은 70%대로 내려앉은 데다 국내에서 수입차시장은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또 끊임없이 '품질경영'을 강조하지만 오히려 '품질논란'만 지속 발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위기가 단기간에 그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현대차그룹에 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과연 어떤 조치로 위기관리능력을 발휘하는지 살펴봤다.

◆'역사공부' 글로벌경쟁서 브랜드 무기 될 것

최근 현대차그룹은 품질이나 기술력이 아닌 역사와 문화의식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지난달 말 열린 경영회의에서 정 회장은 "역사관이 뚜렷한 직원이 자신과 회사, 나아가 국가를 사랑할 수 있다"며 "뚜렷한 역사관을 갖고 차를 판다면 이는 곧 대한민국 문화도 같이 파는 것이고, 글로벌시장에서 우리의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특히 전세계 고객에게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직원들에게 역사 교육을 철저히 시행하라고 역설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브랜드의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창의적 영감을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는 문화예술과의 융합을 바탕으로 혁신적이고 감성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창의적 인프라를 활성화할 계획이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 현대자동차  
현대차는 문화예술과의 융합을 바탕으로 혁신적이고 감성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창의적 인프라를 활성화할 계획이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등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 현대자동차
또 지난 7일에는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오는 2023년까지 10년간 국내 미술 역사상 최대 규모인 120억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후원키로 했다.

이를 통해 차세대 예술가를 양성하는 것은 물론 대중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문화와 산업의 이종 교류를 통해 혁신적이고 감성적 제품개발을 위한 창의 인프라 활성화 등을 도모하겠다는 복안이 내재돼 있다.

문화 예술에서 영감을 얻고 스토리를 개발해 '기술' 차원을 넘어 자동차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구현하겠다는 혁신 의지를 담은 셈이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는 누수문제와 대량리콜 등 문제로 소비자 신뢰가 많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현대차그룹을 비난하는 소비자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이런 상황에서 때 아닌 역사와 문화를 거론하는 것은 자칫 소비자들과 관계가 더 틀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대차 관계자는 "품질과 기술력 문제는 자동차브랜드가 당연히 지속 관리해야하는 문제"라며 "역사와 문화를 강조한 것은 전체 중 일부분일 뿐 품질과 기술력을 등한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임직원 역사의식 함양을 강조한데 이어 문화예술지원에 나선 것은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서 품질 및 제품경쟁력뿐 아니라 이를 기반 삼아 새로운 가치를 고객에게 알리는 것 또한 브랜드에게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을 보탰다.

◆동반성장·상생 위한 '일감 나누기'로 대·중기 협력 생태계 조성

현대차그룹은 지난 4월 중소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계열사 간 거래를 대폭 줄이는 조치로 6000억원 규모 광고 및 물류 일감을 중소기업에 개방하기로 한 것. 이는 대기업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엄단키로 한 정부방침이 강화된 시점에서 나온 현대차그룹의 결정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광고 분야에서 올해 발주 예상 금액의 65%인 1200억원을, 물류 분야에서 45%인 4800억원, 모두 6000억원을 중소기업에 개방하거나 경쟁입찰 방식으로 전환했다.

   현대차그룹은 중소기업 등에 사업을 발주하는 것은 물론 물류와 광고 분야에서 축적한 노하우도 전수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현대차그룹은 중소기업 등에 사업을 발주하는 것은 물론 물류와 광고 분야에서 축적한 노하우도 전수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
그동안 현대차그룹은 광고계열사인 '이노션' 및 물류계열사 '현대글로비스'와 수의계약을 통해 사업을 발주해 왔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지난 6월 그룹 광고 때 완전 경쟁입찰을 시행해 '크리에이티브에어'를 새 광고대행사로 뽑았다. 집행금액이 80억원에 달하는 프로젝트였으며, 회사 규모 면에서는 어떤 자격제한도 없었다.

새롭게 선정된 크리에이티브에어는 지난해 광고 취급액 238억원의 업계 40위 소규모 광고회사지만, 2009년 한국광고대상 TV부문 금상을 받는 등 저력을 인정받고 있다.

다만 현대차그룹은 신차 및 개조차 광고제작 등 보안이 필수적인 일부 광고 분야와 운용시스템 전문성이 필요한 물류 분야 등은 현행 시스템 유지가 불가피해 내부 거래를 모두 외부에 개방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부연했다. 이를 둘러싼 광고업계의 불만도 당연히 존재한다.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는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지만 그간 대부분 대기업들은 자회사를 만들고, 일감을 자회사로 몰아주는 경향이 있었다"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독립광고대행사는 우후죽순 나가떨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또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지만 현대차그룹이 일감을 개방하는 것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여론을 의식한 행동처럼 보인다"며 "중요한 핵심은 굳이 본인들이 하지 않아도 되는 테두리의 일감들을 나눠주면서 마치 선심 쓰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독립 중소·중견기업 일감 나누기는 동반성장과 상생 등 우리 사회 창조적 성장잠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불만과 관련한 답변을 했다.

아울러 "글로벌 브랜드 관리나 완성차 운송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부분을 제외한,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는 중소기업의 사업기회 확대를 위해 경쟁입찰을 계속 늘릴 계획"이라며 "물류와 광고 분야에서 축적한 노하우도 함께 전수하는 등 대·중소기업의 협력 생태계 조성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