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세상에 가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 내가 맡은 일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치열하게 뛰었습니다. 이제 돌아보니 이것이 제가 경험한 '성공 방정식'이었습니다."
김창수 삼성화재 사장은 4일 저녁 육·해·공군 사관학교 생도들 1200여명이 자리한 해군사관학교 '열정樂서'에서 삼성과 함께 한 지난 30여년의 경험을 이렇게 풀었다.
'열정樂서'는 삼성이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열정을 나누자는 취지에서 열고 있는 콘서트 형식의 강연행사다. 김 사장은 삼성물산에 입사해 삼성그룹 비서실 인사팀, 삼성물산, 에스원 등을 거쳐 2011년 말부터 삼성화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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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수 삼성화재 사장이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열정樂서'에서 강연하고 있다. ⓒ 삼성화재 | ||
그의 첫 번째 앵커는 어머니였다. 한 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물러서지 말 것을 가르친 어머니 덕분에 김 사장은 고교시절부터 복싱을 시작하고 추운 겨울에도 새벽마다 달리기를 빼먹지 않았다. 덕분에 전문경영인이 되겠다는 바람대로 고려대 경영학과에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앵커는 '해군 생활'이었다. 기마전이든 배구든 어떤 승부에서도 해병중대가 순식간에 이기는 것을 경험하며 인간의 정신력이 얼마나 크고 강한지 깨닫게 됐다. 단체생활의 경험과 리더십, 해군으로서의 자긍심도 김 사장에게 큰 자원이 됐다.
김 사장이 꼽은 세 번째 앵커는 바로 '삼성'이다. 삼성물산에 근무하면서 1년에 100일 이상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오지를 다니면서 해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삼성물산에서 에스원, 삼성화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이동할 때마다 남들을 따라잡기 위해 2배 이상 노력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바로 '제3의 앵커'였다고 전했다.
특히 김 사장은 '일에 자신만의 가치를 부여하고 성취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인사팀에서 일할 때는 '그룹 내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되자'는 목표로 일했고, 삼성물산에서 영업할 때는 '5000년 역사에서 50년만에 이룬 한국 경제의 기적을 잇겠다'는 사명감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삼성화재 사장인 지금은 "국내 1위 기업을 글로벌기업으로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끝으로 김 사장은 "매순간 나의 능력과 인성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는 인연을 만들고자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것이 나에게 우연이 아닌 필연이 돼 성공의 기회로 돌아온다"며 모든 인연에 최선을 다하라는 부탁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