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내년 6.4 지방선거에 순천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허석(50) 전 순천시민의신문사 대표가 자서전 '허석의 수오지심'을 출판한 가운데 책의 본문에서 주류 정치인들의 과거행적과 밀담이 적나라하게 공개돼 지역정가의 파장이 일고 있다.
오는 13일 출판기념회를 갖는 허석 전 대표는 대학입학 후 학생.노동운동과 노동자상담, 지역신문사 운영을 통한 지역여론을 선도하며 '차령산맥 이남 최고의 지략가', '정치이론가'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자서전은 크게 세부류로 분류했으며, 1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에서는 교육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많은 관심을 받았던 학창시절과 실수담 등을 솔직하게 적었다.
제2부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민선 1~3기 순천시장들과의 만남, 노관규.서갑원 정치인과 얽힌 이야기, 조충훈 전 시장과의 애증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3부 '순천, 이렇게 생각한다'는 신문사에 게재됐던 칼럼과 사설을 발췌해 실었다.
아직 책이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개별 정치인들의 반응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부분에서는 그간 순천시민들이 몰랐거나 풍문에만 의존해 왔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기술돼 주목을 끌고 있다.
허석 전 대표는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는 신문사를 운영하면서도 지역현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여러 정치인들을 만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훈수를 둔 점도 주목을 끄는 대목이다.
본지에서는 저자(허석)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해 써내려간 자서전이지만, 지역 여론주도층 선거판의 냉혹하고도 치열한 암투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권리 차원에서 몇 단락을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자서전은 총 256쪽짜리 분량이며 주로 2부를 중심으로 원문 그대로 실었다.
▲"노관규 시장은 시민의신문에 고맙다고 해야"(117쪽)
☞노관규 시장이 6년동안 시장을 하면서 구속되지 않은데 대해 오히려 우리 신문에 대해 고맙다고 해야한다. 우리가 견제와 감시를 제대로 했기에 그가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작 쓴소리는 귀에 거슬리 수 밖에 없는 모양이다. 고소와 고발이 난무했기 때문이다.
▲"서갑원에 누나 추천했다...이제 부채는 갚았다"(128쪽)
교직공무원이었던 집안 형편으로는 2명을 동시에 대학보내기 쉽지 않아 누나(허강숙)가 대학을 합격하고도 진학을 포기했다. 내가 서울대에서 계속 장학금을 탔더라면 누나도 대학에 다녔을텐데, 지금도 (누나에 대한)부채의식이 남아 있다. 2006년 지방선거 얼마전에 서갑원 당시 국회의원과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비례대표 이야기가 나왔다. 나하고 같이 노동운동을 했던 서동욱 후배(현 전남도의원)가 불쑥 제안을 했다. 그래서 내 누나라서가 아니라 시의원이 되면 정말 잘 할 것이라고 서 의원에 (비례대표로)추천했다.
그렇게 시의원이 된 누나는 생각 이상으로 잘 했다. 마치 정치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4년이 흘러 비례대표를 다시 할 수는 없는 처지이니 정치를 계속하려면 지역구 출마를 해야 했다. 이미 정치력을 대내외적으로 검증받은터라 출마를 강행하되 도의원에 도전하자고 했다.
서갑원 의원은 "순천에서 도의원을 5명 뽑는데, 그 가운데 2명이 '허석사람'(서동욱,허강숙)이면 말이 나오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두 사람이 어찌 내 사람이냐"고 반문했다. 이후 누나는 열세였던 판세를 뒤집고 결국 도의원이 됐다. 이제 누나에대한 부채의식은 거의 사라진 편이다.
▲"김선동 의원이 시장출마 권유...서갑원도 깜짝"(131쪽)
2011년 11월15일 종합학원을 오픈했다. 노관규 시장이 중도사퇴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니 정말 사퇴를 했다. 바로 다음날 조충훈 전 시장(현 순천시장)이 학원으로 찾아왔다. 시장출마를 할 생각이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에는 허정인 전 부의장이 불쑥 찾아왔다. 시장출마를 고민중이라는 것이었다.(중략)
며칠 후 서동욱 도의원이 전화를 걸어와 김선동 국회의원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김선동 의원은 나하고 같이 노동운동을 했던 후배인데 보궐선거를 통해 야권연대 후보로 국회의원이 돼 있었다. 그는 "총선과 순천시장 보궐선거가 동시에 치러지는데 나는 야권연대가 되더라도 무소속 노관규 후보를 이길 자신이 없다"고 했다.
야권연대가 된다면 국회의원은 민노당 후보로 자신이 나서고, 시장 후보는 민주당에서 내가 나서는 모양새가 좋겠다고 했다. 나는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일주일 후에 김선동의원이 또 찾아왔다. 출마를 99% 결정했으나, 지역 원로들을 만나본 뒤에 최종 결정하겠다고 했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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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석 전 순천시민의신문 대표가 지난해 1월 시의회에서 순천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허석 후보 뒤에 눈감은 사람은 임종기 시의원, 맨오른쪽 여성은 허 후보의 친누나 허강숙 전남도의원. = 박대성기자 |
당시에는 최종만 광양만권경제구역청장이 물망에 올랐고, 나 역시 그분이 나온다면 인품이나 경륜으로 보나 적극 지지할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최 청장은 무소속 출마를 한다는 입장이었다. 김선동 의원이 최 청장을 먼저 접촉했는데 무소속 출마를 고집하니까 나에게 온 것 같았다. 당시 야권연대가 기정사실화 돼 있었고 노 시장이 무소속 출마를 할 것처럼 보였기에 일부 후보가 무소속 출마를 한다는 것은 노관규 시장과 교감이 있는 것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출마를 결심할때 배석한 시도의원들이 서갑원 의원 친위세력으로 분류되기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서동욱 도의원은 서갑원의원보다 먼저 노동문제연구소에서 활동했으며, 내가 정치를 시킨 장본인이다. 허강숙 의원이야 친누나니 말할 필요가 없고, 임종기 시의원은 해룡(고향)을 연고로 밀접한 관계이다. 이종철 시의원은 시민의신문 기자 출신이고, 남정옥 시의원은 친구 관계이다.
내가 출마를 결정하자 베이징에 있던 서갑원 의원이 전화를 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는 "(시장출마)뜻이 있었다면 지난번 선거에 나왔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방성룡 시장에 희생양 조언...그의 별명은 방순진"(146쪽)
80년대 상경해 공장활동을 하던 나는 1991년 순천에 내려와 노동문제연구소를 차렸다. 시민다리 옆에 조그만 사무실을 임대해 후배들과 노동상담을 했는데 라면을 끓여먹으며 노동상담을 하는 후배들이 인상적이었던지 이후 방성용 당시 허경만의원 보좌관을 알게됐다.
노동조합 상담을 통해 어느정도 기반을 다진 1995년 민선1기 순천시장 선거가 있었다. 방성용 보좌관이 출마한다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수락조건으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한가지 부탁을 했다. 그래서인지 당선 이후 방성용 시장은 재임기간 노동행사에는 꼭 참석해 격려해주었다. 임기 막바지 방 시장이 불미스런 일에 연루됐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외국 나갈때 봉투를 받아서 같이 간 일행들에게 나눠준 적이 있는데, 그것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당시 1997년 DJP연합을 깨려는 김영삼 정권 측의 사정작업의 일환으로 파악됐다. 그래서 희생양 작전을 이야기했다. 잘잘못을 떠나 위기를 돌파하려면 비서실장을 희생양으로 삼아야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그랬더니 방 시장이 "어찌 근다냐"(전라도 사투리로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는 뜻) 그 한마디가 방성용 전 시장과 지금까지 관계를 있게 했다. 검찰조차 방성용 시장더러 "방순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안세찬 캠프 음해, 홧김에 신준식 도와"(147쪽)
199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준식 후보가 찾아왔다. 방성용 전 시장과는 한식구나 마찬가지인데 경선에서 이긴 신준식 후보를 도울수 없었다. 어느날 무소속 안세찬, 윤병철 후보가 찾아왔다. 안세찬 후보는 "원로들을 만나봤는데, 다들 출마를 권유했다. 하지만 동생(허석)이 나오지 말라면 안나오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나오지 말랜다고 안나올 것도 아니고, 나오는 것은 상관않지만 도울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데 들리는 얘기로는 안세찬 캠프에서 자신을 출마하라고 부추겨놓고 캠프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는다는 말이 들려 너무 화가났다.
그래서 홧김에 서방질 한다는 말처럼 신준식 후보를 보자고 했다. 신 후보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며 좋아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분인데, 측근들을 잘못 두는 바람에 노년이 불행하다.
▲"신택호 버리기로 했다...조충훈은 금뱃지 달고 싶어해"(149쪽)
1999년 총선을 앞두고 신택호 판사가 찾아왔다. 대뜸 나에게 "내년 총선에 출마하냐"고 물어왔다. 내가 부인했더니 "항간에 소문이 퍼져있다"며 안나올거면 나를 도와달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고교.대학 후배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해 이번엔 힘들 것이라고 얘기해줬다.
그랬더니 며칠 후엔 대전에 있는 이모 판사를 데리고 와서 거절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해 왔다. 나는 신택호 판사에게 조건부로 돕는 조건으로 △돈쓰지 말것 △흑색선전 말 것 △소신발언 할 것 △운동권 행세를 하지말 것을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이행되지 않았다. 심지어 기자회견에서 신택호 후보는 자신이 서울대 학생운동을 주도한 것처럼 발언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후배를 버리기로 했다.(중략)
이번엔 조충훈 후보(현 순천시장)가 연락을 해 왔으나 모두 거절했으나 지인의 부탁으로 조 후보와 첫 만남을 가졌다. 그는 집안의 숙원사업이나 마찬가지인 금뱃지(국회의원)를 50세 이전에 달고 싶어했다. 나더러 신택호 후보를 사퇴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조충훈에 시장출마 부추겨...조보훈은 비밀봉투 내밀어"(151쪽)
전임 신준식 시장이 구속 수감된 이후 시장직무대행 체제였는데 적당한 후보가 없었다. 그래서 조충훈씨를 보자고 했다. "국회의원보다는 시장부터 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번에 시장이 되면 재선까지는 무난하다. 그 다음에 국회의원까지 도와줄테니 시장에 출마하라고 부추겼다. 대신 절대 돈을 먹지 말라는 것이 전제조건이었다.
민주당 공천을 받은 상태여서 본선은 의미가 없었다. 한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측근 가운데 1명을 지목해 최소한 1년 정도는 순천에 발을 못붙이게 하라고 했다. 조 시장은 내 말대로 했으나, 그 측근은 석달 만에 내려와 각종 인사와 이권에 개입해 비극이 시작됐다. 조 시장이 측근관리를 못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그 즈음(2001.12.31)에 조충훈 시장과 경쟁했던 조보훈 전 정무부지사가 찾아왔다. 그는 "조 시장을 당선무효 시킬만한 내용이 있다"며 봉투를 내밀었다. 나는 꺼내보지도 않은채 "서로 득될게 없다"며 만류했다. 그후 선거사범 시효만료로 유야무야됐다.
▲"서갑원 정.관계 인맥 대단...선대위원장 조보훈에 자리부탁"(152쪽)
2002 대선 이후 2003년말 서갑원 후보가 연락을 해왔다. 노무현대통령과 함께 지방자치연구소를 할 때 인사를 나눈 인연은 있지만, 서로 잘 모르는 관계였다. 그런데 청와대에 있는 친구가 순천에 가면 허석을 꼭 만나라고 했다며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신택호 변호사는 나에게 사과하고 좋게 지내는 사이였다. 더구나 김경재 의원이 서울출마를 선언한터라 이번엔 신택호 후배가 국회의원이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반면 서갑원후보는 대통령 최측근으로 활동하면서 쌓아둔 정.관계 인맥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들의 지원사격이 장난 아니었다. 하루가 다르게 지지율이 변화됐다. 그래서 신택호후보에게 마지막으로 조언을 했다. "2월말에 경선에 나가면 너가 이기고, 3월로 넘어가면 서갑원이 이기니 빨리 매듭지어라"라고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신택호 측 협상창구였던 사람이 3월경선에 합의하는 바람에 경선에서 서갑원 후보가 열린우리당 공천을 거머쥐었다. 이즈음 조보훈 후보가 찾아왔다. 모든 것을 의거할테니 갈길을 알려달라 했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고 매산고 선후배 사이이니 후배(서갑원)를 돕는 것이 모양새가 낫다고 했고, 서갑원 후보에는 조보훈을 끌어안으라고 말했고 이후 조보훈 전 정무부지사는 서갑원캠프 선대본부장을 맡았다.(중략)
얼마 후(2004년) 박태영 도지사가 갑자기 자살을 하는 바람에 치러진 도지사 보궐에 조보훈 전 부지사가 나와 상의없이 나갔다가 경선에 떨어진뒤 미안하다며 전화가 왔다. 나는 서갑원 의원에 부탁해 자리를 하나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조보훈 부지사가) 경선에 나간 것으로 끝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잘 모르니 은혜를 갚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심으려면 조보훈 부지사를 도와달라"고 했다. 정작 조보훈 부지사는 산업단지공단 부(副)이사장으로 내정되더니 왕래를 끊었다.
▲"노관규 시장 노조탄압에 발끈...열받아서 노 시장에 막말"(158쪽)
전임 조충훈 시장이 뇌물수수로 구속 수감된 터라 민선4기 시장선거는 판사출신의 구희승 변호사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희승을 (서갑원)모임에 끌어들여 집권여당(열린우리당) 순천시장 공천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그는 미적거렸다.
당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나뉘어 있을 때였기 때문에 고민도 있을 법했다.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 서갑원 의원과 상의해 시간을 더 줬으나 구희승은 못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본인은 국회의원을 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정이 임박해 출향인사인 이은 후보(전 해양수산부 차관)을 찾게 되었다. 결과는 민주당 노관규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중략)
노 시장 당선 이후 6개월간 순천시민의신문사에서 공격적인 기사를 자제했으나, 공무원노조 간부들을 7명이나 파면 해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명색이 노동운동을 했던 사람으로서 해고는 사형선고와 같다는 생각에 두고 볼 수만은 없어 그 때부터 십자포화를 날렸다.
어느날 노 시장한테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원직복직시킴변 오히려 도와주겠다고 했다. 노 시장은 대뜸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노 시장이 얼마후 복직약속을 뒤집었다. 정말 열이 받아서 막말을 했다.
그랬더니 비서실장(이종춘)을 보내서 정황을 이야기했다. 그들을 복직시키면 시청이 복잡해질거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책임진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7명)을 복직시키면, 나를 얻는 것이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 시장이 빙긋이 웃으며 "허 대표 몸값이 정말 비싼거야!"했다. 이후 노 시장과 내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서갑원, 노관규에 감정이 무척 상한 듯"(160쪽)
서거원 순천문화원장이 그만두고 새 원장 자리를 놓고 경선이 벌어졌다. 순천대 모 교수와 유길수 변호사와 팽팽한 경합을 벌였다. 노관규 시장측에서는 순천대 교수를 지원한다는 이야기가 돌자, 서갑원 의원 측에서는 반대로 유길수 변호사를 지원하는 모양새가 됐다. 먼저 노 시장을 보자고 해서 문화원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 3자회동도 주선하겠다고 했다. (당시 노 시장과는 나름 분위기가 좋았다.) 노 시장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이야기라면 다 듣는 편이던 서갑원 의원은 완강하게 거부했다. 노 시장에게 감정이 무척 상한듯 싶었다. 두사람에 화해를 권유했으나 말이 통하지 않았다.
▲"서갑원, 가장 깨끗한 사람...노 대통령 자살로 끈떨어진 연(鳶)"(162쪽)
2008년 총선 전부터 서갑원 비토가 파다하게 퍼졌다. 능력이 없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나는 여론주도층을 만날 때마다 서 의원이 재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대 국회의원 가운데 서 의원만큼 지역예산을 끌어온 사람 있었느냐, 내가 본 가장 깨끗한 사람이다 등이 요점이었다.
그는 무사히 재선에 성공했지만, 이명박 정권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노무현대통령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이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고 서 의원이 사법처리됐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 5월 노대통령이 자살함으로써 속칭 '끈 떨어진' 연이 되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노관규 단일화 조보훈 선출됐지만, 노 시장 현직 프리미엄 컸다"(163쪽)
2010 지방선거를 앞두고 복잡한 양상이 전개됐다. 서갑원 의원이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터러 여전히 공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앙숙지간인)노관규 당시 시장이 민주당 공천경합에 나설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국 그는 무소속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현직 노 시장이 무소속으로 재선도전을 함으로써 민주당에서는 구희승 변호사, 이은 전 차관, 조보훈 전 부지사가 경합을 벌였다.
세사람이 이전투구 양상을 벌여 세사람을 화해시키는 자리를 마련했으나 그 자리에서도 서로 얼굴을 붉혔다. 세사람이 '반노관규'단일화 협상을 벌여 조보훈 후보가 선출됐다. 세 사람이 손을 맞드는 순간 대부분의 시민들은 노관규 무소속 후보가 재선성공이 어려울거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은 후보가 불복과 고소까지 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재경선을 벌여 조보훈 후보가 또다시 선출됐지만 금전.체력적으로 소진상태여서 현직 프리미엄을 얻은 노관규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조규순옹 편지 신문에 실어...조충훈, 누나를 여성시장 만들자더니".(164쪽)
조충훈 전 시장이 뇌물수수죄로 3년 넘게 복역을 하고 가석방 되기까지는 내 역할도 적지 않았다. 어느날 조충훈 시장 부인(유금주여사)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다. 비록 현직 시장일 때는 언론인 신분으로 잘못된 점을 비판했지만, 옥중에 있는 상태에서는 약자이기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서 신문에 칼럼을 썼다. 내친 김에 조규순 옹(조시장 부친)이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글을 초안을 받아 신문에 실어주었다.(제목 '애끓는 아비의 노래') 역시 반응이 뜨거웠다...불행인지 다행인지 조규순 옹은 아들(조충훈)이 출소한지 얼마후에 타계했다. 그런 인연으로 조 시장과 관계가 회복됐다. 그런데 조 시장이 2010년 8.15특사로 사면복권을 받았다. 나는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축하하지 않았다. 문제는 얼마 안 있어 서갑원의원이 국회의원직 박탈이 됐다. 지역정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어느날 조시장이 만나자고 했다. 점심식사 자리에서 조충훈 전 시장은 "내가 (야권연대)김선동 후보 선대본부장 제안을 받았는데 허석 대표와 누나가 같이 가주면 좋겠다"고 제안해 왔다. 다시는 정치를 않겠다더니 욕심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또 누나(허강숙)를 여성시장으로 만들자더니 그것도 다 환심을 사기 위한 발언이었던 셈이다. 나와 누나를 끼워팔기로 생각했던 것 자체가 너무 불쾌했다. 김선동 후보가 직접 와서 부탁해도 될까말까인데 조충훈 전 시장 손을잡고 김선동 캠프로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김선동 의원은 보궐때 조충훈 시장이 자신을 도와주면 시장 보궐선거때 도와주기로 한 모양이었다.(중략) 선거 며칠 전에 민주당 노관규 국회의원 후보가 전화를 해서 파트너(시장후보 허정인)를 잘못 뽑아 애를 먹는다고 실토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만약 (시장후보로)나와 노관규 후보가 파트너가 됐다면 윈윈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