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신조어 중 '케미 돋는다'는 말이 유행이다. 영어 '케미스트리(chemistry)' 앞 글자 두자에다 우리말 '돋는다'를 합성한 이 말이 요즘 자주 들리는 이유는 토요일 저녁 예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무한도전(이하 무도)' 때문이다.
케미라는 용어는 사실 예능에서 사용되기 전 야구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의 선수구성이 아기자기하게 잘 조합돼 최상으로 효과를 나타낼 경우 케미가 있다고 표현했었다. 그런데 어느덧 이 용어가 우리 예능에 침투해 자연스레 사용되고 있는 걸 보면 언어는 정말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사족 : 이렇게 언어가 국제결혼을 하게 될 경우 한글을 사랑하는 측에서는 한글의 참 맛을 잃어버린다고 애석해 하겠지만 글로벌 시대에 이러한 언어적 결합 현상을 무조건적으로 배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필자가 즐겁게 보는 '무도 : 자유로 가요제 편'에 나오는 개그맨 정형돈과 빅뱅의 리더 지 드래곤(GD)의 조합은 정말 케미가 돋는다. 이들의 조합은 정말 예상 밖이다. 무도가 표방해 온 슬로건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평범한 수준이거나 아니면 그 이하의 인물들이 극복할 수 없는 분야에 도전해 성공을 이룬다는 콘셉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형돈은 우리 사회에서 평범함 그 자체의 캐릭터라고 보아야 한다.
반면 GD가 누구인가? 왕자님 포스가 작렬하는 인물일 뿐 아니라 빅뱅이라는 우리나라 최고의 아이돌 그룹의 핵심 멤버다. 얼굴 잘 생기고 노래 잘하고 게다가 나무랄 데 없는 패션 감각까지 무도의 멤버들과는 차원이 다른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GD의 작곡 실력은 K-팝 작곡가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천재라고 해야 옳다.
이들의 케미가 엿보인 시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도 내에서도 패션 테러리스트에 가까운 정형돈이 패션 리더인 GD에게 '패션이 무언지 알려주겠다'고 도발한 것이다.
이번에도 슬리퍼에 무릎까지 튀어 나온 추리닝을 입고 빅뱅의 소속사인 YG를 방문해 왕자풍의 옷을 입은 GD를 만나 패션을 가르치는 형돈의 허세 장면은 백미 중 하나였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형돈의 허세를 돋보이게 하는 건 GD의 마냥 새색시 같은 태도다. '뭐든지 형이 하는 대로 따라 하겠다'며 철저히 자신을 낮추는 자세야 말로 형돈의 허세를 돋보이게 하는 GD표 케미의 근원이라고 할 것이다.
경제지에서 칼럼을 쓰면서 예능을 구구절절 얘기하느냐고 묻겠지만 필자는 바로 이들의 케미에서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방향을 보았기에 어쩔 수 없이 서두를 늘여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경제가 지금 비틀거리고 있는 것은 경제 주체들이 케미를 돋는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방향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분배'의 문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이후 복지공약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도 바로 분배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최근 발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국내 10대 재벌들의 지난 10년간 자산이 지난 2003년 371조 2900억 원에서 2012년 1070조 50억 원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액도 2003년 388조 6200억 원에서 2012년 1070조 9300억 원으로 증가했다.
이에 따라 재벌의 자산과 매출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10년간 48.4%에서 84%로, 50.6%에서 84.1%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민생경제’살리기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하면서 강도 높은 재벌개혁을 약속한 바 있다. 국가경제의 재벌쏠림현상에 대해 짐작컨대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이러한 태도는 크게 수정된 듯 보인다. 지난 8월28일 10대 그룹 총수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재계 현안과 경제 활성화 방안을 강구하는 자리를 만들었다고 보도됐지만 사실 이 자리는 재벌 개혁을 멈추겠다고 선언한 자리나 다름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6500만년 전 지구상에 번성하던 공룡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공룡멸종에 대해 여러 가지 가설이 있지만 가장 그럴 듯한 것이 너무 비대해져 신체 일부가 치명적 상처를 입어도 뇌로 전달되는 과정이 너무 느려졌다는 가설이다. 즉, 급변하는 상황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상실해 멸종했다는 얘기다.
최근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3선에 성공했다. 메르켈의 정치적 성공은 강력한 독일경제에 있다. 유로 존 재정위기에도 독일경제는 흔들림이 없었다. 6.8%의 실업률은 동서독 통일 이후 최저 수준이며 내년부터는 GDP 성장률도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메르켈의 정치적 지도력이 밑바탕이 됐다는 것이 독일 국민들의 믿음이었다.
실제 독일은 현재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내년도 국가 재정도 77억유로(11조6000억 원)의 흑자를 달성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켈의 3선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독일경제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독일 기업 300만개 가운데 우리나라 재벌에 해당하는 대기업은 1%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9%는 500명 이하의 근로자를 거느린 중소기업이다.
독일의 중소기업은 경제 환경의 급격한 파도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즉, 유럽 재정위기의 쓰나미급 파도에도 견실하게 독일경제를 지탱하는 디딤돌이 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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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