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효성그룹의 탈세와 동양그룹의 부실 기업어음판매 등 최근 기업들의 부정행위로 불거진 일련의 사건은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또 한번 확인 시켰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는 천민자본주의적 기업관, 탈법 해외자본도피, 분식회계, 기업과 정관계 유착, 금융 사기와 금융당국의 감시소홀 등 입이 닳도록 지적된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문제 해결 없이는 이번 사건이 광범위한 부실기업문제로 확대되고 금융위기로 연결되면서 경제기반의 와해로 이어지는 수순을 예고한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 등 을 통해 상세히 밝혀지겠지만 동양그룹의 부실금융판매와 그룹부도 사건으로 우리 경제는 흡사 1997년 IMF 구제금융위기의 전야를 방불케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은 기업주의 자금 빼돌리기와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 주가조작, 계열사 간 자금지원, 불법금융조달, 세금탈루, 분식회계 등으로 과거 부실기업들이 걸었던 행태를 그대로 재연한다. 지난 9월30일 (주)동양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촉발된 동양그룹사태는 사주일가의 알짜 자회사 빼돌리기에 기인한다. 사주인 현재현 회장은 지난 2010년 개인회사인 '디와이머니'를 차린 뒤 이 회사에 그룹차원의 지원을 퍼부어 알짜회사로 만들고 방계회사는 빈껍데기로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분식회계와 사기성 CP발행, 계열사 간 불법지원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된다. 사주 소유의 다른 그룹 경영이 어려워지고 자본잠식이 진행되자 개인회사를 내세워 새로운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전형적인 '먹튀경영'이다. 기업은 망해도 좋지만 나는 살아남아 호의호식하겠다는 천민자본주의적 발상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근로자들의 미래는 현회장의 안중에도 없었다. 물론 금융감독기관의 협력도 당연히(?) 있었다. 최근 조사결과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8월 동양그룹의 부당 기업어음(CP)·회사채 발행 혐의를 잡고도 1년 넘게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쉬쉬해 왔다.
금감원은 혐의 사실 적발 이후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제재 조처는 커녕 제재를 위한 중간 단계인 제재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도 상정하지 않았다. 금감원 측은 법적근거 미비를 이유로 들지만 공공기관의 의무를 저버린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금융감독원이 2009년 5월 동양증권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4년 전부터 동양증권 CP(기업어음) 문제를 이미 인지했으나, 2011년 동양증권이 MOU를 위반하고 1년이 지난 2012년 7월에야 뒤늦게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을 금융위에 건의했다"며 '늑장 대처'도 비판했다.
김 의원은 "동양증권이 계속 약속을 어겼고 상황이 점차 악화됐는데도 금감원은 동양증권에 MOU 이행을 두 차례 촉구하는 것 외에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서 "금감원은 금투업 규정 개정 건의도 1년 넘게 지연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금감원이 잘 한일은 지난 7일 뒤늦게 검찰에 수사의뢰한 것 정도이다. 이쯤 되면 국가기관인 금감원이 동양사태를 키운 배후세력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정경유착 특혜 의혹도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22일 확정한 제6차 전력수급계획에서 동양그룹 계열사인 동양파워에 1000MW급 석탄화력발전소 2기를 건설의향에 반영했다. 삼청화력발전소 사업을 맡은 동양파워의 대주주인 동양시멘트는 3년 연속 수 백억원씩 적자를 냈고 지난 2010년에는 광물자원공사가 내부 규정까지 바꿔가면서 1500억원을 융자해줘 감사원의 지적까지 받은 회사이다.
"부도위기에 몰린 동양그룹이 어떻게 3조원의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석탄화력 발전사업자로 선정된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동양이 화력발전소 사업자로 선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1월 한달 동안 ㈜동양의 주식이 무려 2.5배나 폭등했고, 2월 21일 회사채 청약률도 3.3배 급등했다.
정부가 국가기간시설인 삼척화력발전소 사업을 동양그룹에 맡겨 특혜를 제공하고, 결국 투자자 피해만 더 키웠다. 이번 사태의 표면적인 피해자는 해당기업의 근로자들과 애꿎은 개인 투자자들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양증권이 판매한 동양과 동양인터내셔널, 동양레저의 회사채와 CP 규모는 모두 1조3000억원에 달한다. 투자자수 만해도 5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최근 '동양그룹 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가칭)를 결성한데 이어 사단법인을 만들 계획이다. 금융사건의 피해자들이 사단법인화 하려는 시도는 극히 드문 사례이다. 그만큼 개미 투자자들의 피해는 절실하다는 것이다.
동양의 이 같은 행태는 기업이 근로자의 정당한 근로대가를 지불하기는커녕, 이들을 대상으로 사기쳐 돈을 빼앗는 행위에 다름없다.
개인투자자의 피해도 절실하지만 동양그룹사태가 우리 경제 전체에 미친 영향은 더욱 심각하다. 사건이 터지면서 기업금융에 대한 불신 증폭으로 회사채금리가 폭등하고 회사채발행이 취소되는 등 다른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증권가에 따르면, 신용등급이 낮은 편인 BBB급은 물론이고 A급 회사채도 발행이 취소되거나 금리가 폭등(채권값 폭락)하는 일이 속출했다. 신용등급 A-인 국내의 한 중견철강회사는 지난달 하순부터 600억원어치의 회사채 발행을 추진하다 발행주관 증권사를 찾지 못해 결국 포기했으며 A~A+등급의 건설회사 2~3곳도 회사채 만기가 돌아왔지만 차환 발행에 실패하고 자체자금으로 상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우량 회사채 금리도 폭등, 두산건설, 코오롱글로벌 등 일부 건설사는 동양사태 이전 연 7~8%에 머물던 유통수익률이 연 13~16%로 치솟기도 했다. 연초 정권교체기 이후 부실 건설사들의 연쇄 도산에 이은 동양그룹사태는 가뜩이나 힘든 불황경제에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금융위기의 전조로 보고 있다. 그만큼 사안이 심각하다. 경제의 견인차인 기업 활동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자료에 따르면 국내 30대 재벌의 부채 총액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배 가까이 급증해 600조원에 육박하고 이중 8개 재벌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내는 것으로 밝혀져, 제2, 제3의 동양그룹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자산 순위 30대 재벌그룹의 작년 말 부채 총액은 574조9000억원 규모로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 말 313조8000억원 보다 83.2%, 261조1000억원이나 급증했다.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28개 그룹의 경우 부채비율은 113.7%에서 115.4%로 높아졌다. 특히 동양(1,231.7%), 한진(437.3%), 현대(404.1%), 금호아시아나(265.0%), 동부(259.4%), STX(256.9%) 등 6곳은 부채비율이 위험수위인 200%를 넘어섰다.
일부 기업의 경우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해, 빚을 내 금융이자를 갚아야 하는 ‘빚 돌려막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위기 상황은 2년 전에도 예측됐다. 지난 2011년 8월 모건스탠리는 "국제금융위기 다시 오면 한국이 가장 위험한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아시아신용전략보고서에서 은행들을 중심으로 자금 조달 리스크에 따른 충격흡수 정도를 가늠한 순위에서 아시아 8개국 중 한국이 중 최하위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자금시장이 악화되면 자금 조달측면에서 한국이 가장 열악하다는 것이다. 지난 5년 MB 정권은 그러나 어설픈 규제만 남발하면서 정작 기업과 금융부문의 절실한 치유를 외면했다.
지난 1997년 IMF 사태 발생 원인으로 IMF는 △외환정책실패 △금융기관의 부실 및 외화자금 운용 미숙 △정부 위기관리 정책의 실패 △기업투자의 부실화 △구조적인 요인(누적 경상 수지 적자) 등 5개 요인을 꼽았다.
세계적인 석학 Paul Krugman은 당시 상황을 '룰을 무시한 졸속 성장 전략의 업보'라고 보았으며, 세계은행은 '정부 내 갈등, 미숙한 위기관리, 금융감독 및 부실금융사 정리 실패, 기업부문 관리 잘못' 등 4개 분야에서 위기관리에 총체적으로 실패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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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가지 요인이 겹쳐 "위험성 대출자산 증가를 내부통제하지 못해 기업의 연쇄도산이 금융위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부 기업의 경영내용이 이 상황의 언저리에 와 있다고 하면 지나친 기우일까.
1997년과 같은 금융위기를 원하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최근의 동양그룹사태를 보면 과거를 잊은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새삼 뼈저리게 느낀다. 이를 계기로 우리경제에 대한 총제적인 점검과 올바른 정책 방향 정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저털 '말' 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