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방준비제도(FRB) 차기 의장으로 재넛 옐런이 여성으로는 최초로 지명돼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미국이 세계 경제 패권을 거머쥔 시기는 세계 2차 대전 이후로 보아야 타당하다. 미국이 패권을 쥐기 이전에는 해가 지지 않는 왕국인 영국이었다.
아직 옐런의 시대가 개막한 것은 아니다. 현 FRB 의장인 벤 버냉키의 임기가 내년 1월에 종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옐런이 현재 FRB 부의장 역할을 맡고 있는 인물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옐런의 시대가 열린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FRB를 두고 있다. 자국의 화폐를 국가가 찍어내지 않고 FRB가 발행하는 묘한 구조이다. 미국은 이에 따라 달러를 찍어내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고 이를 통해 달러를 시중에 유통시키는 국가이다.
연방준비제도(FRB: Federal Reserve System)는 정확히 100년 전인 지난 1913년 창설됐다. FRB는 시장 경제의 바로 미터가 되는 금리를 결정하는 사실상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 기관인 셈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기관의 주체가 미 정부에 있지 않고 민간 기관이라는 것이다. 자넷 옐런 의장이 지명되기 전 이 기관의 의장을 거쳐 간 인물은 모두 14명. 따라서 옐런은 15대 의장이다.
역대 의장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윌리엄 마틴(1951~70년), 폴 볼커(79~87년), 그린스펀(87~2006년), 벤 버냉키(2006~) 등이다. 이들 대표 인물들은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제 부국으로 올라 선 2차 세계 대전 이후 각종 경제 악재를 슬기롭게 이겨내고 오늘날 미국 경제를 지켜낸 인물들로 평가 받는 인물들이다.
사실 FRB가 민간 기관이지만 의장 임명권은 미국 대통령에게 있다. 따라서 이번 옐런 의장 지명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했다. FRB는 모든 결정을 FOMC(Federal Open Market Committee)라고 하는 공개시장위원회에서 하게 된다.
위원회는 의장과 미 상원이 승인한 7명의 이사진과 추가적으로 지역연방은행 총재들이 5명을 선임해 모두 12명으로 이사진을 꾸리게 된다. 이들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다.
FRB가 펼치는 주요 권한을 보면 재할인율(중앙은행과 시중은행 간 여신금리) 등 금리 결정, 재무부 채권 매입과 발행(공개시장 활동), 지급준비율 결정 등이다. FRB는 각 지역 은행장들이 주요 기업가, 경제학자, 시장전문가 등의 경제 상황 의견을 종합해 작성하는, 이른바 베이지 북(Beige Book)을 1년에 여덟 차례 발행하기도 한다.
옐런은 FRB 내에서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사실 오바마가 옐런을 지명한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전 재무장관이던 서머스가 유력했기 때문이다. 서머스가 차지 의장으로 부상하면서 미국 내에서 엄청난 힘겨루기가 있었을 것이 자명하다. 서머스의 낙마는 그의 경제관이 고용보다는 물가에 초점을 두는 매파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제 호황 뒷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가득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경제적 힘의 원동력은 FRB가 달러를 시장에 천문학적으로 유통시킨 측면이 강하다.
미 연방 정부 기능이 정지된 셧다운 가운데 10일 오바마와 야당인 공화당 브래들리 의장이 부채한도 증액 에 합의했다는 뉴스의 배면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FRB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통화량을 늘리는데 있어 국가가 국채를 발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국채를 발행하기 위해 부채한도 조정이 불가피하고 만일 이를 올리지 못하면 국가 부도에 처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맞은 이후 경색된 시장에 달러를 유통시키기 위해 올 들어 매달 850억 달러를 시중에 뿌려대고 있다. 매달 미 정부는 자신들이 발행해 시중에 유통시킨 국채를 450억 달러씩 매입하고 여기다 주택저당증권(MBS: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400억 달러씩 사들이는 방식으로 달러를 시중에 풀고 있다.
미국은 사실상 가마솥에 들어 있는 개구리인 셈이다. 가마솥 불의 온도가 아직은 개구리에게 치명상을 안겨줄 정도가 아니지만 언젠가 그 온도에 도달하게 되면 국가 부도로 이어지는 과정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인 셈이다.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을 동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 정부는 이 같은 달러의 무차별적 살포를 멈추는 시기를 정해 놓고 있기는 하다. 현재 시행중인 제로금리 정책의 시기를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지거나 인플레이션이 2.5% 이상 오르면 그만 두겠다는 것이다.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바마 행정부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올 들어 자주 나온 얘기가 바로 출구 전략이었다. 치명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기 전 시중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나돌고 있는 달러 유통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바마가 의중에 둔 인물이 서머스였다. 그는 고용창출보다는 물가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서머스를 낙마시키고 현재 벤 버냉키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해 나갈 인물이 필요해졌고 따라서 대안으로 등장한 인물인 옐런을 선택한 것이다. 오바마는 자신의 임기 중에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출구전략 카드를 사용하기 보다는 인플레이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국민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는 양적완화 유지 전략을 통해 국민적 인기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썼다고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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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지금 반드시 직시해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미국의 양적완화가 미국을 위한 정책이지 한국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적완화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원자재 가격 급등은 불가피하다. 이로 인해 물가상승도 자명한 사실이다. 이에 따라 국내 수출기업의 경쟁력도 악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이 내년 경제성장률을 대폭 낮춰 잡은 것도 이러한 이유인 셈이다.
조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