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관음증 (voyeurism, 觀淫症)은 사람의 성행위를 엿보거나 다른 사람이 옷을 벗는 것을 보고 성적 흥분을 느끼는 인간의 성적인 행동이다.”
위 글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정의된 관음증의 의미이다. 즉“어느 정도까지는 거의 모든 사람이 관음증을 지니고 있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은 엿보는 사람을 더욱 흥분시키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엿보기가 지나치면 관음증은 비정상적인 행위로 여겨진다”고 브리태니커는 적고 있다.
그런데 이 관음증이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확대되면 사회문제 혹은 사회병리 현상이 된다.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된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은 우리사회의 집단관음증 현상의 단면을 보여준다. 본인이 물의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공직을 사퇴한 상황에서 일부 국회의원이 채총장이 여성정치인과의 부적절한 관계설을 제기하고 가사도우미의 증언이 크게 다뤄지는 등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이 공직자 자격 논란에서 성 스캔들로 옮겨간 느낌이다. 당초 모 언론의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로 촉발된 이 사건은 본질은 혼외관계 등 공직자의 부도덕한 행위와 이에 따른 처신 문제이다. 우리사회의 일반적인 여론은 공직자는 상식적인 윤리도적을 준수해야 하면 이를 어기면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타당하다.
이 논리대로 라면 사실관계에 따라 당사자가 적절한 처신을 하면 된다. 사실과 다르다면 증거를 대면서 적극해명하거나 사실이라면 공직을 내놓는 게 마땅하다.
채 총장은 전자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사퇴의 길을 선택했다. 사상 처음이라는 법무부의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도 한 요인이지만 본인의 결단에 의한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문제는 사퇴 이후에도 혼외자를 둘러싼 논란이 폭로전 양상으로 확대되는 점이다.
과거 이만의 환경부장관의 혼외자 논란 때 관대한 태도를 보여준 과거 언론보도와는 판이하다. 여당 등 권력층의 눈에 어긋난 고위공직자에 대한 본보기 처벌이나 야당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한 사전적 집단 이지메라는 일부의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이유가 어떠하든 최근 채동욱 총장의 혼외자 보도는 법무부의 감찰에다 잇따른 폭로전으로 한편의 성 스캔들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언론의 과도한 한탕주의와 선정주의도 가세한다.
여기에서 당초 보도의 목적인 공직자 윤리를 벗어나 언론의 확대보도를 부추기는 요인의 하나는 사회적 관음증이다. 관음증은 개인간 관계에서도 지나치면 병적인 현상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관음증이 다자간 관계와 사회관계로 연결되면 그 부작용과 영향력은 크게 증폭된다. 그것이 명예와 평판 등으로 연결돼 윤리문제를 벗어난 개인의 파멸 등으로 이어진다.
과거 인터넷 댓글로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은 연예인들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입증한다. 연예인, 공직자를 비롯한 공인들의 행위는 명예와 평판으로 직결된다. 나쁜 평판과 명예실추를 겪는 공인은 사회로부터 퇴출되는 비극을 맞는다. 평판은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대중의 의견이나 사회적 평가를 의미한다. 평판은 학문, 예술,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공직과 사회관계 영역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며, 개인의 사회적 지위에도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노력이 전개된다. 문제는 이 평판과 명예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인 평판의 주체와 대중간의 역학관계에서 오류가 개입될 경우 당사자인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손실이 초래된다는 점이다.
만약 평판을 획득하는 주체가 본의와는 다른 의도적인 목적으로 선행 등을 한다면 큰 잘못이 생긴다. 과거 미국에서 악명을 떨친 갱 알카포네가 무료급식소 운영등 사회적 자선으로 착한사업가로 알려진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한편 주체의 진실은 변함이 없는데 ‘대중들의 판단 잘못’으로 나쁜 명예와 평판이 초래될 경우 당사자와 가족 등 관계인들은 돌이킬 수 없는 큰 피해를 입는다.
바로 이 ‘대중들의 판단 잘못’에 ‘관음증’이라는 해괴한 변수가 끼어들면 ‘진실’은 사라진 채 흥밋거리만 양산된다. 집단관음증이 빚어내는 사회병리 현상인 것이다.
수 년전 청와대 모 국장과 모 대학 여교수와의 관계에서도 정작 문제의 핵심인 불법 부정은 간데없이 둘 사이 성 스캔들만 언론에 널리 조명됐다. 당사자의 나체사진과 주고받은 편지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부정행위에 대한 진실규명은 아예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먼 후일 당사자의 한 여성가족이 “왜 피해자인 내가 조용히 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흥분하고 관심을 가지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털어 놓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혼외자에 대해 관대한 태도를 보였던 프랑스의 사례를 들어 우리사회의 보수성 등을 이번 논란의 한 요인으로 거론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지나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상대인 여성이 언론을 통해 자기 아들은 채 총장의 혼외자가 아니며 더 이상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언론이 가사도우미의 증언을 보도하고 모 국회의원은 채 총장이 여성정치인과도 스캔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논설위원이 방송에 나와 채 총장의 변호사와 설전을 벌인 것은 대중의 흥미에 부응하거나 조장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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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와 평판은 그 신뢰도의 면에서 편차가 있을 수 있다. 어떤 평판은 사실에 근거한 반면, 어떤 평판은 의도적으로 부풀려지거나 악의적인 비방을 목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채동욱 사태가 집단관음증에 편승한 악의적인 비방이 아니길 바라며 앞으로도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소정선 논설위원(前 코리아헤럴드·헤럴드경제 기자, 디저털 ‘말’편집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