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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절반 이상 '전세시대 종말' 예고

집값-전셋값 격차 줄고 결국 전세 상당부분 보증부월세 전환

박지영 기자 기자  2013.10.04 14: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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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전세(傳貰)'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임대차 제도다. 심지어 영어로 쓸 때도 '김치'나 '태권도'처럼 '전세'를 발음 나는 대로 쓴다. 집 없는 사람이 집주인에 보증금을 맡기고 일정기간 사용한 뒤 만기가 되면 돈을 되돌려 받는 전세. 그 역사와 미래에 대해 알아봤다.

전세 계약방식은 중국 고유의 '전(典)'에서 유래됐다. 타인에게 일정금액을 받고 이에 상응하는 부동산을 사용하도록 한 뒤 계약종료 시 이를 되돌려 줬던 게 지금의 전세가 된 것이다.

현대식 전셋집은 개화기 때 처음 등장해 1870년대에 정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1876년 고종 13년 병자수호조약(강화도조약) 체결로 지방인구가 당시 수도인 한성, 그리고 이름이 바뀐 경성으로 몰리자 주택수요도 급증했는데, 이런 이유로 주택 임차관계가 형성됐고 전세제도 발달로 이어졌다. 

조선말기 전세 기탁금액은 보통 가옥가격의 반액 내지는 7~8할이었고, 이때 계약기간은 1년 또는 기간을 정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기간갱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기간이 경과된 후에는 언제라도 해약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통상적 유예기간은 기와집 15일, 초가집 10일이었으며 가옥 수선의무는 임대인이 부담하되 간단한 수선은 임차인이 하는 관례도 생겨났다.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임대문화

이런 제도는 일제강점 초반까지 이어지다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1912년 조선민사령 제 10조 내지 12조서 우리나라 민간관습에 의한 법률행위를 인정했던 특별규정이 개정되자 전세권자 권리가 대폭 삭감, 브레이크가 걸렸다.

하지만 전세권 약화에도 불구하고 전세제도는 더욱 확산됐다. 1944년 전세관행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전세를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주택거래 유형이라고 봤다. 이런 전세제도가 탄력을 받기 시작한 건 광복 후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택이 턱없이 부족하자 자연스레 전세제도가 전국적으로 퍼진 것이다. 

현재 전세제도가 자리를 잡은 건 산업화과정에서 빠른 속도로 도시화되면서다. 부동산 가격 상승폭도 컸던 데다 고금리 정책이 이어지면서 빚을 내서라도 집과 땅을 사는 게 당시 유일한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됐다. 

   서울 구별 전셋집 가격이 3.3㎡당 최고 1400만원가량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 프라임경제  
서울 구별 전셋집 가격이 3.3㎡당 최고 1400만원가량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 프라임경제
그러나 이러한 역할을 하는 전세를 합리적 제도로 보지 않은 전문가들도 있다. 박신영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주택전세제도의 기원과 전세시장 전망' 리포트를 통해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연구원은 "집값의 40~70%를 맡기고 주택을 이용토록 하는 전세는 전세권자 입장에선 손해"라며 "오히려 그 보다 적은 돈을 투자한 가옥주가 누리는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을 전세권자는 누리지 못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박 연구원은 "더욱이 주택가격 상승에 따라 전세가격도 지속적으로 올라감으로써 전세권자가 계속 해당주택에 거주하기 위해 전세금을 계속 올려줘야 한다는 점도 매우 불합리하다"고 덧붙였다. 

◆임차인과 임대인 이해관계 모두 충족했지만 이제는…

그럼에도 전세제도가 정착할 수 있었던 데는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의 이해관계를 만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쪽은 돈 떼일 걱정 없이 살 집을 구할 수 있고, 다른 한쪽은 전세보증금을 활용해 돈을 굴릴 수 있었으니 별 다른 불만이 없었다.  

산업화 이후 전체 주거형태 대비 전세비율은 △1975년 17.3% △1980년 23.9% △1990년 27.8%까지 높아졌다.
 
문제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부터다. 상류층이 더 넓고 비싼 집으로 옮겨가지 않자 고만고만한 전월세시장만 '박 터지는' 꼴이 됐다. 최근 5년 사이 서울 아파트 매매 값은 평균 9.1% 떨어진데 반해 전세금은 거꾸로 38% 올랐다. 실제 서울의 경우 5년새 10가구 중 2가구 이상이 전세가가 1억원 이상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주상복합을 포함한 서울 아파트 총 108만9652가구 가운데 19만2413가구는 2008년 이후 5년간 전세가가 1억원 이상 증가했다. 서울 전체로는 2008년 8월 셋째 주 기준 평균 전세가가 2억234만원이었던 게 2013년 같은 기간 2억6885만원으로 약 6651만원 비싸졌다.
 
김미선 부동산써브 부동산연구팀 선임연구원은 "최근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도 늘고 있고 하반기 입주 물량도 지난해 보다 줄어들 예정이어서 전세물량은 더욱 부족해질 것"이라며 "전세가 상승이 이어지면서 전세가가 1억원 이상 상승한 가구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07년 3.3㎡당 600만원에 불과하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추이가 2013년 들어 평균 900만원까지 치솟았다. ⓒ프라임경제  
2007년 3.3㎡당 600만원에 불과하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추이가 2013년 들어 평균 900만원까지 치솟았다. ⓒ프라임경제
그렇다면 전세난이 두드러진 이유는 뭘까? 일단 집을 사는 사람보다 전세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까닭이다. 집값이 오른다면야 빚을 내서라도 사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권 이자비용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세값이 뛴 것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 주택매매를 통한 차익실현이 어려워지자 집주인이 이자비용 감당을 전세금에서 뽑으려 하는 것이다.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받는 '반전세'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세제도가 아예 사라지고 월세나 렌트방식만 남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여기에 있다.

2011년 한국부동산연구원에서 감정평가사, 공무원, 교수, 연구원 등 부동산 관련 전문가 1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부동산시장 전망 설문조사'서도 10명 중 6명은 '전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국부동산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전세제도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56.1%가 단기적으로는 유지되나 장기적으로는 사라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최근 주택가격이 안정되고 저금리기조가 지속되면서 반전세·월세계약이 급증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전문가들은 또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이 공급되면서 대출을 받아 집을 구할 필요성이 적어진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대란과 한국 부동산 시장의 미래'라는 CFE 리포트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주택가격 안정과 임대차시장서 전세시장 위축이 예상된다"고 예견했다.

아울러 조 교수는 "시장이자율이 정책적으로 낮게 상당기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주택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월세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것"이라며 "결국 전세시장은 IMF 외환위기 이후처럼 보증부 월세로 상당부분 전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