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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강원도 A사찰의 어처구니없는 몽니

이보배 기자 기자  2013.09.27 16: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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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주말 지인들과 강원도 양양군에 위치한 조그만 사찰을 찾았습니다. 제가 찾은 A사찰은 역사가 그리 오래된 사찰은 아니지만 바닷가와 인접해 있어 수려한 경치를 자랑합니다.

또 바다에 누워있는 관세음보살 형상의 바위가 발견되면서 전국 각지의 스님과 불교신자들이 참배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사찰이죠. 저 또한 소문을 듣고 사찰을 찾았습니다. 제가 찾은 날은 날씨도 좋아서 사찰을 둘러보기에 안성맞춤이었지요.

법당 앞에서 바닷가 쪽을 바라보면 '학문이 부족한 이에게 학문을 통달하게 하고, 어리석은 이에게 지혜를 준다'는 지혜관세음보살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이름답게 수험생 부모들이 사찰을 많이 찾는다고 합니다.

   D그룹은 2011년 이미 해당 부지를 모 영농조합애 매매했지만 A사찰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D그룹과 회장 실명이 거론된 현수막을 여전히 걸어놓고 있다. = 이보배 기자  
D그룹은 2011년 이미 해당 부지를 모 영농조합애 매매했지만 A사찰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D그룹과 회장 실명이 거론된 현수막을 여전히 걸어놓고 있다. = 이보배 기자

사찰의 아름다움을 채 다 느끼기도 전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사진 속 펜스인데요. 법당과 지혜관세음보살 사이 넓은 공터를 따라 둘러쳐놓은 펜스 바깥쪽에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켰던 듯 색이 바래버린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국내 D대기업의 회장이 사찰을 매입하려고 수작을 부리다 사찰 매입이 어려워지자 측량을 해 소유하고 있는 땅의 모양대로 펜스를 둘러 막아놨다는 것입니다. 사찰 측은 불편을 주고 애를 먹이다 보면 사찰 전체를 D그룹이 사들일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는데 아무리 애를 먹여도 사찰은 사고 팔 수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D그룹이 사찰을 매입해 이곳을 개발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야심 때문에 사찰 심장부를 둘러막아 악랄한 짓을 한다는 주장입니다. 특히 사찰 측은 D그룹 회장의 실명 앞에 '장로'라는 호칭을 붙여 D그룹 회장이 기독교인임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자칫 기독교와 불교의 종교분쟁으로 보여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현수막 내용만 놓고 보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찰의 종교적 의미와 이곳을 찾는 불교신자 관광객 입장에서는 현수막 속 D그룹의 행동은 '갑의 횡포'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D그룹과 A사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봤습니다. 예상대로 양 측의 마찰은 오래전 시작됐더군요. 그러던 중 2011년 D그룹에서 해당 펜스 지역에 50여그루의 나무를 심으면서 수면위로 드러났습니다.

2011년 8월 D그룹 측에서 인부 100여명을 동원해 50여 그루의 나무를 심을 당시 A사찰 경내에는 신도 200여명이 머물고 있었고, 이들이 인부들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레 심은 나무를 치우고, 원상복구하라"는 농성도 이어졌지요.

당시 A사찰 측은 "이 땅을 사용하는 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갑자기 나무를 심어 통행이 불편해 졌다"면서 "D그룹 측에 부지 매입의사를 밝혔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D그룹의 입장은 어떨까요? 당시 D그룹은 "A사찰이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땅은 '농지'로 반드시 경작을 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시멘트로 덮어 씌워진 채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 양양군으로부터 '땅이 불법으로 전용되고 있어 경작을 하지 않으면 토지소유자에게 강제이행금을 부과하겠다'는 통지를 2년째 받고 있어 '농지'로 사용을 위해 일단 나무부터 심은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지만 펜스와 현수막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내막을 알아봤습니다. D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부지는 강원도 출신인 그룹 회장이 1970년대에 매입한 땅이 맞습니다. 이후 A사찰이 부지 인근에 터를 잡았고, 점점 그 규모를 넓혔다는 것입니다. D그룹 입장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부지인지라 유휴지로 남겨놨고, 그 부지를 A사찰 쪽에서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설명입니다.

장기적으로 관광레저단지 조성을 구상하고 있던 D그룹은 농지로 사용하지 않으면 강제이행금을 부과하겠다는 양양군청의 잇따른 통지에 A사찰 측에 원상복귀를 수차례 요청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교인데 장로라니?" 특히 A사찰이 내건 현수막 중에는 무교인 D그룹 회장 실명 뒤에 '장로'라는 호칭을 붙여 마치 D그룹 회장이 기독교인처럼 보이게 한다. = 이보배 기자
D그룹 관계자는 2년 전 나무 식수 논란에 대해 말을 덧붙였습니다. 당시 논란을 겪으면서 대기업이라는 이유 때문에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고 이미지에 손상을 입어 2011년 한 영농조합에 해당 부지를 매매했다는 것입니다. 현재 A사찰의 펜스 부지는 D그룹의 소유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유자가 바뀌었음에도 A사찰은 D그룹과 회장 실명을 거론한 현수막을 2년간 철거하지 않은 것이죠.

해당 관계자는 또 D그룹 회장의 경우 기독교가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기독교가 아니니 장로일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그는 "회장은 무교"라고 못 박고, "10년 넘게 D그룹에 몸담았지만 회장이 기독교라거나 장로라는 소식을 보고 들을 적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A사찰 측에서 해당 부지 매입 의사를 밝힌 적도 없고, 우리가 A사찰을 매입하려 한 적도 없다"면서 "A사찰 측이 왜 이 같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여론몰이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갑이 횡포로 보이는 탓에 D그룹의 이미지만 실추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A사찰의 입장이 궁금했습니다. A사찰 측에 전화를 걸어 기자임을 밝혔습니다. 억울한 사연을 풀어놓을 것 같았던 A사찰 측 관계자는 "현수막에 적힌 그대로다. 이전과 현재 진전된 사항이 없다"면서 "혼자 있어 바쁘다"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기자의 전화에 당황했을 수도 있지만 의외의 반응에 당황스럽기는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양양군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D그룹에 농지 사용을 통지했던 양양군청이라면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양양군청 건축과에 따르면 현재 A사찰은 매년 4000만~5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2008년부터 적발된 불법 건축건만 3~4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인·허가를 받지 않고 건축물을 지은 건축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 수사가 검찰로 넘어가 벌금을 납부한 적도 있다고 하네요.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이행하지 않아 이행강제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008년 당시 2000만원대였던 이행강제금은 2011년 불법건축물 추가 적발로 두 배로 껑충 뛰었고 현재 5000만원에 이르는 이행강제금을 매년 납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시설이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인 만큼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원상복귀 강제집행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양양군청의 설명입니다. A사찰 스스로 원상복귀 시키는 등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웬만한 중소기업 연봉 수준의 이행강제금을 몇 년이고 계속 납부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매년 4000만~5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납부하는 것이 불법건축물 원상복귀보다 낫다는 판단인 것일까요? 대기업의 횡포에 억울함을 호소하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한편, 강원지역 시민단체 속초고성양양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현재 약 1만4850㎡ 규모의 부지를 사용하고 있는 A사찰의 실제 소유 부지는 330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유지, 군유지, 국유지라고 합니다. 게다가 대부분 토지는 개발이 금지된 임야나 농지임에도 불법으로 건물을 짓고 확장해 사찰 규모를 넓힌 것이라는 부연입니다.